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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루가복음의 결론으로 요한21장을 짝으로 봅니다.

184620 김종업로마노 [rlawhddjq] 스크랩 2025-09-04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오늘 루가복음의 결론으로 요한21장을 짝으로 봅니다.

 

복음(루카5,1-11)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고군중은 그분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다.

= 하늘을 향해 서 계시고, 하늘나라 일을 시작하시려는 모습이다, *요한복음에서는, 그 하느님의 뜻, 말씀에 순명하셔서 죄인들의 대속으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모습이다.

 

그분께서는 호숫가에 대어 놓은 배 *두 척을 보셨다어부들은 거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다.

= 배 두(2)척- 선과 악의 둘, 그 법의 배(교회)를 뜻한다. * 요한복음에서는 배가 하나, 선(주님)이 악(죄)을 대속하시고 생명, 구원을 주는 진리의 배, 그 하나이다.

 

3ㄱ 예수님께서는 그 두 배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그에게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하신 다음,

= 배는 뭍이 아닌 바다에 있기 위함이다. 바다는 풍랑이 이는 세상을 뜻한다. 곧 하느님의 백성들을 그 세상에서 구원하시는 교회라는 것이며, 그 풍랑의 바다, 곧 세상의 힘 위를 걸으시는, 누르시는 모습을 보여주실 것을 예표하고 있다.(요한6,16-21)

 

3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

= 어제 묵상했듯이, 물(진리. 밀씀)이 없어 열병을 앓았던 시몬의 배에 오르신 것이다. 교회의 머리, 주인이신 주님으로 앉으신 것이다. 많은 시몬들에게 물(말씀)을 주어 진리를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다. 깨달음이 구원이다. *요한복음은 물이 나오는 반석 베드로이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 그물은 고기(사람)를 낚는 도구로 말씀을 뜻한다.  말씀으로 사람의 마음 깊은 곳, 그 마음속에 '어둠(죄성)을 보라' 하시는 것이다. 그 죄인들을 구하시겠다는 주님이시다. 

*요한복음에서는 말씀을 배(교회)의 오른쪽에 던져라 하신다. 오른쪽- 오른, 참, 그 진리의 하느님의 뜻으로, 곧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의 길로 받는 구원이라는 것이다.

 

5ㄱ 시몬이 스승님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 밤은 어둠- 저녁으로 구약을 뜻한다. 어둠(구약-율법)이 아닌 빛(신약-진리)으로 곧 율법을 열심히 지킨 인간의 노력, 열심히 아닌 하느님의 열심, 은총으로,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십자가로 얻는 구원이라는 가르침을 주신 것이다. 그래서 베타랑어부, 그들의 노력, 열심히 밤 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그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하느님께서 가르치시기 위해 하신 일이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그 주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그 주님의 말씀, 방법, 길을 잃어버리고 여전히 틀렸던 그 자신들의 뜻, 생각으로 고기(사람) 낚는 일(신앙생활)을 한다. 

자신, 그 육의 뜻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그 자기 버림, 부인을 못하고 고집하는 그 어리석음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세의 우리(교회)의 모습을 보라고 하신다.

 

5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6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

= 그물(말씀)이 찢어질 만큼이다. *요한복음은 153마리로 구체적으로 알려주신다. 100(충만)+ 50(모세오경)+ 하늘의 대속(3) 곧 모세오경(5) 그 율법의 죄로 죽어야 할 죄인들이 하늘(3=예수)의 대속, 그 진리의 죽음으로 하늘의 완성(100= 1)인 생명, 구원 받았음을 구체적으로 알려 주신다.

 

그래서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동료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 배(교회)가 가라앉을 지경과 6절, 그물(말씀)이 찢어질 만큼, 모두- 불완전, 불안,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곧 오늘 루가복음만을 보고 베드로의 엎드림(순종)을 배워야지 한다면, 말씀이 찢어지고 배(교회)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은 그물(말씀)이 찢어지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밝힌다. 그리고 사실은 배 한 척이라는 말도 없다. 예수님이 대속의 죽음과 부활로, 선악(2)의 배가 완전한(1)배가 되었다는 것이다.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주님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 발 앞이 아닌, 무릎 앞에 엎드렸다. 무릎(베라크)은 복(바라크)에서 파생된 말이다. 아직, 진리가 되지 못한 시몬이 능력의 예수님, 그 복(福)앞에 엎드린 것이다. 하늘의 복이 아닌, 땅의 복앞에 자신을 던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베드로가 된 후에도 예수님께서 당신의 대속(죽음)을 말씀하실 때, 화(禍)를 내며 반박했다.(마태16,22) 그 자신의 욕망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요한 복음에서는 베드로의 순교가 예고된다. 성령의 이끄심으로 되는 순교다.

 

사실 베드로도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자기들이 잡은 그 많은 고기를 보고 몹시 놀랐던 것이다. 10ㄱ 시몬의 동업자인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그러하였다.

= 많은 소출(고기)에 모두 감탄하며 놀란 것이다. 주님의 이끄심, 주님의 방법으로 잡은 것임을 잊고, 자기들의 수고(愁苦), 열심만을 챙긴다. 

모두 베드로와 같이 그러했다는 것이다. 병행 복음인 마태오와 마르코는 어부 네 사람으로 소개한다.

*요한복음은 제자 일곱(7- 안식)을 소개한다. 곧 완성된 하늘의 안식을 소개한다. 곧 완성된 하늘의 안식을 얻게 되었다는 예고인 것이다.

 

10ㄴ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11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 배만은 버리지 못하고, 안전한 곳, 뭍에 보관한 베드로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했던 그 하나는 버리지 못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그러나 버려야 할 그 하나를 버리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구약에서 전쟁이 끝난 후, 이방인의 모든 것을 다 불태워 없애 버리고 돌아오라고 말씀하셨는데, 다 태워 버린 척 하고, 가장 좋은 것은 태우지 않고 숨겨 가지고 돌아왔던 그 인간의 본성이다.

그런 베드로를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하셨다. 곧 십자가에서 그를 위해 죽으셨고, 부활 승천(昇天)후 성령을 보내시어 사람 낚는 어부로 완성해 내신다. 성령의 이끄심으로 자기 배(자신)를 버리고 주님의 뜻을 따르게 하신다.

 

독서(골로1,13-14) 13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14 이 아드님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곧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 나(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능력에 엎드려 있는지, 나를 위해 대속 하신 그 주님 사랑에 감사하며 엎드려 있는지...

 

☨보호자 성령님! 

말씀이 찢어지고 교회가 위험해 질 수 있는, 그 인간의 뜻을 위한 가장 아끼는 나를, 버릴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복음(루카5,1~11)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5)

 

'스승님'에 해당하는 '에피스타타'(epistata; master)는 신약 성경에서  루카  복음사가 만이 사용하는 독특한 단어이다(루카8,24.45; 9,33.49; 17,13).

루카 복음사가는 일반적으로 '선생'(teacher)에 대한 묘사로서 사용되는 '디다스칼로스'(didaskalos)나 율법 교사에 대한 존칭어인 '랍비' (rabbi)라는 단어보다는 '에피스타타'를 선호한다.

 

왜냐하면 '에피스타타'는 다른 사람보다 신분이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의 권위를 나타내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루카 복음 17장 13절의 나병 환자 열 사람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 제자들의 입으로 고백된 경우처럼, 이 용어는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개인적 인식과 관련되어 있다.

 

여기서도 베드로는 다만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권위를 느껴서 예수님을 '에피스타타'로 불렀다.

그러나 이 호칭은 기적의 체험 후에는 신앙 고백적 호칭인 '퀴리에'(kyrie) 즉 '주님'(Lord)으로 바뀐다(루카5,8).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이 구절은 베드로의 믿음과 순종의 태도를 잘 보여 주는 대목이다.

'그러나'로 번역된 접속사 '데'(de)는 여기서 'but' 혹은 'nevertheless'의 의미를 지닌다.

 

말하자면, 전문 어부로서 고기잡이와 관련된 갈릴래아 호수에 대한 사정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으며, 전날 밤 밤새도록 그물질을 해보았지만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했고, 또 날이 밝은 아침(오전)에 고기가 없는 깊은 데로 저어 가서 그물을 내린다는 것도 상식에 맞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의지가 베드로에게 있었음을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전폭적인 순종의 의지는 '제가 ~내리겠습니다'로 번역된 '칼라소'(chalaso; I will let down)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 단어는 미래 능동태 동사로서 자신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는데, 마지 못해서나 억지로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순종을 하겠다는 베드로 개인의 의지가  담겨져 있다.

 

그리고 '말씀대로'에 해당하는 '에피 ~ 토 레마티 수'(epi ~ to remati su; at your word; because you say so)는 '당신의 말씀에 의지하여'라는 뜻이다.

여기서 '스승님의 말씀'은 루카 복음 5장 4절의 명령 뿐만 아니라 5장 3절에 기록된 '가르침의 말씀'까지 다 포함되는 것이다.

 

즉 베드로는 자신의 배 위에서 가르쳐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들었고, 거기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권위가 있고 진실되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기에,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해야 하겠다는 모종의 결심을 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깊은 데로 저어 나아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5,4)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떄, 베드로는 그 명령이 비상식적으로 들렸으나 즉각적이고 능동적으로 순종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그럼에도 불구하고'(nevertheless; in spite of)의 믿음과 그 믿음은 바로 주님의 가르침에서 생겨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상황이 여의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말씀이기에 능동적으로 기쁘게 순종하는 믿음은, 평소 주님 말씀에 대한 깊은 묵상과 주님의 성품과 덕성을 체험하지 않고는 결코 생겨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성숙한 믿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의 말씀을 깊이 있게 듣고, 전폭적으로 믿고 따르겠다는 의지와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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