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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5년 10월 7일 (화)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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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간 목요일]

184783 박영희 [corenelia] 스크랩 2025-09-11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루카 6,27-38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형제도 아닌 ‘원수’를, 그저 용서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라고까지 하시니,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실천하기가 참으로 버겁게 느껴지지요. 그러나 원수는 처음부터 원수였던 게 아닙니다. 또한 누군가 일부러 나를 괴롭히고 상처주기 위해서 스스로의 의지로 ‘원수’라는 존재로 변화된 것도 아닙니다. 원수는 바로 나 자신이 만들지요. 내 기대와 바람대로 따라주지 않는 것에 대한 서운함이 가까운 사람을 원수로 만듭니다. 예상치 못한 일로 인해 스스로가 큰 피해와 상처를 입었다고 여기는 억울함과 분노가 그 일에 연관된 사람을 원수로 만듭니다. 오히려 나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라면 원수가 될 일도 없었겠지요.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라는 원망과 미움의 말이 자기 주변 사람들을 ‘악마화’하고, 스스로를 ‘지옥’ 속에 가두는 겁니다.

 

일단 원수를 만들어 버리고 나서 그를 사랑하려고 드는 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입니다. 그러니 아예 원수를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는게 중요하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원수를 만들지 않을 수 있을까요? 사람을 함부로 믿지 않으면 됩니다. 가족이라서, 가까운 친구라서, 덕망 있는 교우라서 덥썩 믿어버리면, 돈을 빌려주기도 하고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쓰게 되지요. 그러나 그 사람이 나를 생각하는 마음은 내가 그를 생각하는 마음과 다를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사람은 그러려고 한 게 아닌데 일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아서 본의 아니게 나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큰 실망과 상처로 인해 내가 믿었던 그를 ‘원수’로 만들지요. 하지만 내가 애초에 사람을 믿은 게 잘못입니다. 앞날에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고, 자기 머리카락 하나 제 뜻대로 할 수 없는 게 사람인데 뭘 보고 그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람을 믿은 건 내가 선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욕심이 많아서입니다. 혼자서는 내 욕심을 다 채울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이 내 욕심을 채워주리라 기대하고 바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런 자기 모습을 ‘신뢰’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 뒤에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이 내가 바라는 무언가를 해 주기만을 바라는 나의 욕심과 이기심이 그를 원수로 만드니, 그런 마음이 들 때 오히려 내가 먼저 그가 나에게 바라는 것을 해주고 자비를 베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를 원수가 아닌, 내가 사랑하고 보살펴야 할 ‘형제’로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저 내 욕심을 채우려고 했을 땐 느끼지 못했던 삶의 참된 행복과 보람을 누리게 되지요. 그러니 이제 ‘원수 탓’은 그만해야겠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들면 내 안에 가득 찬 욕심을 비워내고 사랑과 자비를 적극적으로 실천해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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