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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5.09.12)

184798 김중애 [ji5321] 스크랩 2025-09-12

 

2025년 9월 12일

연중 제23주간 금요일

재미있는 연구 결과를 보게

되었습니다. 간디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의 자녀 삶을

추적한 연구였습니다.

결론은 그 자녀들의 대부분이

불행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자식의 본능은 부모를 넘어서는

것인데,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부터 불행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평범한 아이의

가장 불행은 비범한 아버지를

두는 것이 아닐까요?

자녀는 부모와의 비교를 통해

자기가 잘났는지 못났는지를

판단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일부러라도

자녀에게 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도 있더군요.

따라서 자녀의 일에 감탄해 주고,

아이의 잘난 점을 키울 수 있도록

칭찬과 지지를 멈춰서는 안 됩니다.

자녀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부모는 계속해서

자녀를 이기려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계속 가르치려고만하고,

자극이 필요하다면서 혼을 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녀가 잘되길

정으로 원한다면 자녀에게

져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굳이

이기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잘못을 꾸짖고 벌을 주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낮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가장 겸손한 모습을 우리에게 다가

오시면서 기쁨과 희망을 주십니다.

우리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주님의 이 모범을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가족, 친구, 이웃들이

진정으로 잘되기를 바라는 겸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겸손의 삶을

잃어버릴 때, 제대로 인도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루카 6,39)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영적

분별력 없이 남을 이끌려 한다면,

자기도 또 자기를 따르는 사람 모두

멸망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을 꾸짖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보다 율법의 규정만을

내세우면서 꾸짖는 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 결과, 하느님의

따뜻한 사랑을 보기보다, 하느님께

대한 무서운 공포심만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티와 들보의

비유로, 남의 작은 허물(티)은

잘 보면서, 정작 자기의 큰 잘못(들보)

은 외면한다는 것을 지적하십니다.

남을 고치려 하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위선을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판단에 앞서서

반드시 따라야 할 것은 자기 성찰

이었습니다.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를

정화해야 형제들을 도울 수 있게 됩니다.

다른 이의 ‘티’만을 집요하게 보는
우리는 아닐까요? 그렇다면 내 안의

‘들보’는 무엇일까요? 주님의 겸손한 사랑을

기억하고, 그 사랑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내 안의 커다란

‘들보’를 빼낼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순간을 소중히 여기다 보면,

긴 세월은 저절로 흘러간다.

(마리아 에지워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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