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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5년 10월 10일 (금)연중 제27주간 금요일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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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4846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5-09-14

어제는 재속회 구역 모임을 갔습니다.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그러나 구역 모임에서 나눔 시간이 있었습니다. 고통에 대해서 나누던 중에 우리 구역에서 제일 나이 많으신 분이 나눔을 하셨습니다. 사실은 그분에게 얼마전에 재속회 모임에서 심하게 질책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공동체 사람들이 모여 있는 시간에 아주 심하게 말씀하셔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구역 모임 뿐만 아니라 본 월 모임에서도 그분이 아주 심하게 꾸지람 같은 것을 주셨어요. 나도 나이가 50대 중반인데 참 힘들었습니다. 제가 어머님 치매로 인해서 저녁에 술을 먹지 않고서는 잠을 잘 수 없어서 술먹고 나의 괴로움을 우리 재속회 분들에게 카톡으로 나누었습니다. 그 이후 나이 많으신 자매님으로 부터 많이 혼이 났고 그래서 여기 나가야 하나 아니면 괴로워도 계속 있어야 하나? 그 고민 하던 중 .. 어제 나눔의 시간이 왔습니다. 그 나이 많이 드신 분이 나눔을 주시는데 재소자 이야기를 하시더라구요. 어디서 본 다큐멘트인데 이 재소자가 남편과 같이 잘 살고 있는데 자신이 가장 친한 여자 친구가 남편을 강탈해 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혼까지 하게되었고 그 이혼 후 그 여자는 남편을 죽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수해서 교도소에 들어게되었고 무기 징역을 선고 받고 나서도 교도소에서 성실히 살아서 무기에서 단기로 변화되었고 그래서 교도소에서 나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편을 강탈한 그 자신의 친구를 죽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교도소로 들어갔다고 해요. 그런데 그 재소자가 남편과 친구를 죽이고 나서 눈의 촛점이 없어 졌고 삶의 의미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오직 그 여인에게 인생의 목표는 복수 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또다른 재소자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런데 그 재소자는 억울하게 누명을 써서 재소자 신분이 되었다고합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성실히 살았고 자신이 누명을 썻다는 것이 세상에서 드러나서 교도소를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누명 쓴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교도소에서 보내게 한 사람을 용서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누가 구원을 얻은 것인가? 질문을 던지시더니 자신의 상황도 말씀 주셨습니다. 자신도 지금은 혼자라는 것입니다. 자신도 가슴 아픈 일이 있었고 삶의 의미를 잃어 버릴 순간이 있었는데 그 순간 눈을 부릅뜨고 주님에게 매달렸다고 합니다. 자신도 삶의 무게로 인해서 죽음을 각오할 위기가 있었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분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고 나서 저가 그분에 대한 미운 감정이 누그러졌고 그분에게 반감을 가진것이 미안했고 그 자매님이 너무 불쌍한 것입니다. 어쩌나?? 남편과 친구로 부터의 배신의 상처 흔적이 깊이 파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음의 상처가 너무 깊게 파여서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 수 없는 그런 그분의 영적인 상태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도큐멘트에서 성실한 재소자로 살다가 남편과 친구를 죽인 그 여인과 억울하게 누명으로 감옥생활한 사람의 용서의 모습을 보인 재소자를 보면서 누구에게 구원? 용서한 사람입니다. 나를 내려 놓은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자신도 자신에게 가슴 아프게 한 친구와 남편에 대한 분노와 원망을 내려 놓게되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주님을 만나서 내 인생 30년 이상을 원망과 분노 복수에 사로 잡혀서 살아갈 나에게 주님은 그 억울한 마음을 내려 놓게 하신 것입니다. 억압과 분노의 마음에서 용서를 하므로서 자유를 주님이 주셨다고 합니다. 앞서 말한 억울하게 복역한 재소자가 용서를 한 것과 자신이 친구와 전 남편을 용서하고 나름 신앙 생활하는 것은 주님이 나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신 것이라고 고백하셨습니다. 그 순간 저도 그 나이드신 자매님에게 미안하고 불쌍하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인간의 죄로 인해서 고통스러워야 하고 죽이고 싶은 원망이 들겠지만 그 순간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도 억울하게 아무 죄도 없이 사람들에게 붙잡히시어서 갖은 고난을 받으시고 극심한 고통 중에 돌아가십니다. 그런데 부활하셔서 자신을 고통스럽게 한 사람들에게 아무런 보복 같은 것을 하지 않으시고 용서 하셨습니다. 그것이 나를 버리는 순간이라고 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보복하지 않으시고 온전히 용서하시는 모습이 결국 인류를 구원으로 이끄셨습니다. 저 넘어의 신비로 이끄신 것입니다. 오늘 십자가 현양 축일입니다. 이집트에서 구리 뱀을 본 사람은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주님의 십자가를 보고 믿는 사람은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십자가 현양 축일입니다. 그런데 그 앞에서 선행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나를 버리고 주님을 나의 모든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진정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이 자신에게 누명쓰게 한 사람을 용서한 것..나를 내려 놓고 용서한 사람..그것이 십자가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우리 신앙인에게 제일 요구되는 것이 있다면 매 순간 나를 포기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를 찾는 사람은 앞서 말한 두명의 사람을 죽인 살인자와 같은 사람이고 나를 포기한 사람은 예수님,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사람이지만 결국은 자신을 버림으로 인해서 그 자신을 주님이 구원으로 이끄신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나의 삶 안에서 나를 버리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걸어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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