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루카 9, 56
예루살렘을 향해 걸어가시는 예수님의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진다.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마음을 굳히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그분의 결단 뒤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것은 단순한 지리적 이동이 아니었다. 종교적, 정치적 권력의 중심지이자 동시에 구조적 불의가 집약된 곳으로 향하시는 예언자적 행보였다.
그런데 사마리아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는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복음서의 이 짧은 설명 속에 긴 역사의 아픔이 담겨 있다. 사마리아인들의 눈에 예수님은 그저 또 한 명의 유다인일 뿐이었다. 수세기 동안 쌓인 차별과 멸시, 종교적 배제의 상처가 그들로 하여금 방어적 거부의 벽을 쌓게 했을 것이다.
이 장면을 보며 우리 일상의 모습들이 겹쳐진다. 부서장이라는 직함 하나만으로 부서원들에게 거부당하는 상황들, 앞에서는 예 하면서도 뒤에서는 험담하는 모습들. 아무리 선의로 다가가도 좋게 보지 않는 시선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교회 이야기만 나와도 고개를 돌리는 모습들.
이 모든 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위계적이고 가부장적인 구조가 만들어낸 상처의 결과임을 깨닫게 된다.
야고보와 요한의 반응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거부당했을 때 느끼는 분노와 보복의 충동, "배은망덕하다", "저들이 몰라서 그래"라며 상대방을 단죄하고 싶은 마음. 그런데 예수님은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신다.
이 꾸짖음 속에 깊은 지혜가 담겨 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인들의 거부가 단순한 악의가 아니라 깊은 상처에서 비롯된 방어기제임을 아셨던 것이다. 그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그 거부 뒤에 숨은 아픔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계셨다. 그래서 폭력으로 응답하지 않으시고, 조용히 "다른 마을로" 향하신다.
예수님의 이런 모습은 나에게 깊은 가르침을 준다. 거부당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첫 번째는 현존의 영성을 실천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변화시키려는 의도를 내려놓고, 그들의 고통과 상처 앞에 온전히 머무르는 것. 판단하지 않고 그들의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는 무조건적 현존 말이다.
상처받은 치유자로서의 자세도 중요하다. 우리 자신의 상처와 연약함을 인정하고, "나도 거부당한 경험이 있고, 나도 상처받았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완벽한 치유자가 아닌, 함께 치유받아가는 동반자로서 존재하는 것. 때로는 말보다 침묵이, 설명보다 함께 있어줌이 더 큰 치유의 힘을 갖기도 한다.
기다림도 필요하다. 상대방의 마음이 열리는 하느님의 시간을 존중하고, 우리의 시간표가 아닌 그들의 내적 리듬을 인내롭게 기다리는 것. 이는 단순한 수동성이 아니라 적극적인 사랑의 행위다.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무력함에서 진정한 힘이 나온다. "내가 그들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하느님께서 일하실 공간을 만들어드리는 것이다.
일상의 작은 친절함들도 소중하다. 진심 어린 인사, 따뜻한 관심, 진정한 질문들이 조금씩 쌓여서 마침내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자기비움의 모습처럼, 내 입장과 명예, 내가 옳다는 주장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려 할 때 진정한 만남이 일어날 수 있다.
결국 무엇을 "하기 doing"보다는 "되기 being"에서 답을 찾게된다. 완벽한 답을 가진 사람이 되려 하지 말고, 함께 길을 찾아가는 순례자가 되는 것. 사마리아인들의 거부를 받으시고도 폭력으로 응답하지 않으시고 조용히 다른 길을 찾으신 예수님처럼, 거부당하는 아픔을 이해하고 그 상처를 껴안으며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것.
오늘 이 복음 말씀은 우리에게 묻는다. 거부당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분노하고 보복할 것인가, 아니면 그 거부 뒤에 숨은 상처를 이해하고 새로운 길을 찾을 것인가? 예수님의 발걸음을 따라 걸어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 이 짧은 문장 속에 담긴 깊은 지혜를 오늘도 묵상하며 살아간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