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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5년 10월 24일 (금)연중 제29주간 금요일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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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일 수원 교구청 신부님 묵상글

185245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5-10-02

조명연 신부님

 

신학교 1학년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처음으로 맞이하는 방학이었고, 바로 윗반 선배님들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어느 주점에서의 만남이었는데, 학교에서 보는 것과 다른 모습의 선배님들과 더욱더 가까워질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그때 한 선배에게 훗날 글 잘 쓰는 신부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선배님께서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한 달에 책은 몇 권이나 읽어?” “시간이 없어서 거의 읽지 않죠.”

 

“글은 매일 써?” “뭐 거의 쓰지 못하죠.”

 

저의 답에 선배는 이렇게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모습으로는 턱도 없다.”

 

괜히 말했다는 생각과 선배의 말이 사실이기에 말 한마디 못 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화가 좀 났습니다. ‘이 선배가 뭔데 나의 한계를 결정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저는 글 쓰는 신부가 되었고, 책도 11권이나 출판했습니다. 만약 당시의 모습대로 책도 전혀 읽지 않고, 글도 전혀 안 썼는데 저절로 되었을까요? 아닙니다. 선배의 말에 자극을 받았고, 그때부터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써왔기에 가능했습니다. 누군가의 말이 상처가 될 수는 있지만, 자기에게 무조건 나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즉,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 중요합니다.

 

지금 제게 ‘턱도 없다’라고 말해줬던 선배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당시에는 억울했고 못된 선배라고 생각했는데, 그 선배의 말에 제가 원했던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선배는 제게 한 명의 수호천사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오늘은 수호천사 기념일입니다. 수호천사는 우리가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도록 마음속으로 권고하며, 우리의 영적인 선택, 즉 주님을 향한 결심을 지키고 북돋아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지요. 그런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관점을 따지면서 수호천사의 이끎에 따르려 하지 않습니다. 제 멋대로 편하고 쉬운 길로만 가려고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의 가치 기준이 세상의 기준과 완전히 다름을 가르치십니다. 그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는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어린이는 순진함이나 천진난만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 전적인 의존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끄심에 굳은 믿음을 갖추고 겸손하게 따르는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를 지켜주는 주변의 많은 수호천사들, 그런데 나 자신도 그런 수호천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의 명언: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이다(빅토르 위고). 

 

한상우 신부님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10) 

 

수호천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사랑의 전달자요,

은총의 고마우신

선물입니다. 

 

수호천사는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영적존재입니다. 

 

오직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수호천사의

역할은 단순히

지켜주는 것을

넘어서,

하느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영적 안내자입니다. 

 

수호천사는

각 사람을 향한

하느님의 세심한

사랑을 드러냅니다. 

 

수호천사는

단순히

위험에서

보호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께

이르는 길과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길로

인도합니다. 

 

사람은 스스로

강해 보이지만,

유혹과 고통,

외로움 앞에서

쉽게 흔들립니다. 

 

수호천사는

이런 우리의

연약함을 보완하며,

하느님의 힘으로

우리를 지켜주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양심을

일깨워,

순간순간

하느님 뜻에 맞는

길을 선택하도록

돕습니다. 

 

우리 안의

양심과

밀접히

맞닿아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수호천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는

가장 따뜻한

표징입니다. 

 

하느님 사랑을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전하고,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 이끄는

사랑의 통로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베풀어주신

특별한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주어진

우리 삶의

동반자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결코 우리 삶을

떠나지 않음을

알려주시는

함께하는

사랑입니다. 

 

우리 또한

누군가의

수호천사가 되는

소중한 날

되십시오. 

 

오늘도

수호천사는

우리의 기도를

하느님께로

올려 드리는

고마운 천사입니다.  

 

전삼용 신부님

 

죄 지으면 자존감이 떨어지는 이유 

 

 

오늘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의 증표, 바로 ‘수호천사 기념일’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우리 곁에서 우리를 지키고 이끌어주는 수호천사의 존재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인지 묻는 제자들에게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이르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마태 18,3) 

 

여러분, 어린이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특히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아기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 아이들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험한지, 내일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지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엄마가, 아빠가, 바로 곁에서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는 절대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흔들리지 않는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바로 어린이들이 가진 높은 자존감의 뿌리입니다.  

 

우리의 자존감도 여기서 시작됩니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는, 내가 얼마나 귀하게 보호받고 있는지를 깨달을 때 싹틉니다. 우리는 귀중한 것을 잘 보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하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실까요?

그 증거가 바로 우리 각자에게 보내주신 수호천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마태 18,10)

우리 각자를 담당하는 천사가,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얼굴을 직접 뵙고 있다는 이 말씀보다 더 큰 우리의 존엄성에 대한 보증은 없을 것입니다. 

 

죄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는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동시에 가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죄는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는 어둠 속에서 싹틥니다. 나를 지켜보는 사랑의 시선이 없다고 느낄 때, 인간은 스스로를 함부로 대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죄를 짓고 나면, 그 결과는 참담합니다.

‘나는 결국 이런 죄나 짓는 보잘것없는 존재구나’, ‘나는 사랑받을 자격도, 보호받을 가치도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깊은 열등감과 자기혐오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1980년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도’ 조세형의 삶은, 보호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한 인간을 어떻게 죄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언론의 과장된 묘사와는 달리, 그의 삶의 본질은 깊은 고독과 상실감이었습니다.

그는 한국전쟁 직후 혼란기에 태어나, 부모의 얼굴도 모른 채 고아원을 전전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나는 버려진 존재다’,

‘나를 지켜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차가운 확신이 자리 잡았습니다.

이 깊은 어둠 속에서 그의 범죄는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부유층만을 노린 이유에 대해 훗날 법정에서 이렇게 진술한 기록이 있습니다. 

 

“가진 자들의 것을 훔쳐 그들이 당황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며,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꼈습니다.”

이는 그의 범죄가 단순히 돈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었던 처절한 몸부림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죄의 끝은 허무였습니다.

십수 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그가 한 말은 우리의 마음을 울립니다. 

 

“제가 훔친 수많은 보석과 현금은 단 한 순간도 제 마음의 공허함을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이 허무하고, 후회스럽습니다.

철창 안에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제가 정말로 훔치고 싶었던 것은 돈이나 보석이 아니라,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었다는 것을….” 

 

그의 삶은 비극적인 증거입니다.

자신을 지켜주는 사랑의 시선이 부재할 때, 인간의 존엄성이 얼마나 쉽게 무너져 내리는지, 그리고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저지른 죄가 결국 자신을 얼마나 더 깊은 열등감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지를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어떻게 일상에서 살아낼 수 있을까요?

인류 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순간에 피어난 한 여성의 실화를 통해 그 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네덜란드의 그리스도인이었던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 여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온 가족이 체포되어, 악명 높은 라벤스브뤼크 여성 강제수용소에 갇혔습니다.

그곳은 인간의 존엄성이란 찾아볼 수 없는 생지옥이었습니다.

굶주림과 질병, 혹독한 노동과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 사람들은 하루하루 죽어 나갔습니다.  

 

어느 날, 코리와 그녀의 언니 벳시는 자신들이 배정받은 막사에 지독할 정도로 벼룩이 들끓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 더해진 끔찍한 환경에 코리는 불평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나 언니 벳시는 조용히 기도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코리, 성경에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기록되어 있잖니. 우리 이 벼룩에 대해서도 하느님께 감사드리자.”

코리는 언니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끔찍한 벼룩에 대해 감사하라고? 말도 안 돼!” 하지만 그들은 순종하는 마음으로 벼룩을 두고 감사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리고 몇 주 뒤, 그들은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른 막사에서는 간수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수감자들을 폭행하고 물건을 빼앗아 갔지만, 유독 자신들의 막사에는 간수들이 얼씬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를 알고 보니, 간수들은 벼룩이 옮을까 두려워 그 끔찍한 막사에 들어오기를 꺼려했던 것입니다.

그 벼룩들 덕분에, 그들은 저녁마다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숨어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벼룩이 바로 그들을 지켜주는 ‘수호천사’였던 셈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코리 텐 붐 자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가르침을 줍니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 불평과 원망이라는 죄에 빠지기 가장 쉬운 순간에도, 우리가 원하고 노력하기만 하면 하느님의 보호하심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직장 상사, 속 썩이는 자녀, 나를 괴롭히는 병이나 경제적인 어려움일 수 있습니다. 그것들을 보며 원망과 죄에 빠지는 대신, 그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보호하심을 찾아봅시다.

믿음은 노력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조욱현 신부님

1. 복음의 핵심

제자들은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위대합니까?”(18,1)라고 묻는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를 세우시며,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지는 사람만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치신다. 또한,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말라. 그들의 천사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항상 뵙고 있다.”(18,10)라고 하신다. 겸손과 사랑, 그리고 ‘작은 이들’을 존중하는 삶이 곧 하늘나라의 길이다. 

 

2. 수호천사의 의미

교회 전통은 각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한 천사를 보내시어 보호와 인도를 맡기셨음을 믿는다(참조: 가톨릭 교회 교리서 336항). 수호천사는 우리를 악으로부터 지켜주고, 선으로 이끌어주며, 하느님께 우리의 삶을 봉헌하도록 돕는다.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뵙고 있다.”(마태 18,10)라는 말씀은 수호천사의 중재와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드러낸다. 

 

3. 교부들의 가르침

성 예로니모는 이렇게 말한다: “영혼의 존엄은 크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각 사람에게 수호천사가 붙여져 있기 때문이다: Magna dignitas animarum est, unaquaeque ab ortu suo angelum habet custodem.”(In Matthaeum 주석)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가르친다: “천사들은 우리의 수호자들이며, 언제나 하느님을 뵙고 우리를 위해 봉사한다: Angeli nostri custodes sunt, qui semper Deum vident et nobis serviunt.”(Enarrationes in Psalmos) 

 

4. 공의회의 가르침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50항은 이렇게 선언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성인들과 천사들의 도움으로 당신의 자비를 드러내신다.” 교회는 천사들을 하느님의 도우심의 표징으로 받아들이며, 신자들은 그들의 전구를 신뢰한다. 

 

5. 삶의 적용

겸손: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고,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격은 교만이 아니라 겸손에서 온다.

존중: ‘보잘것없는 이들’을 무시하지 말고, 그 안에 계신 하느님을 알아보아야 한다.

신뢰: 수호천사의 도움을 청하며, 유혹과 악에서 벗어나 선을 행하도록 늘 기도해야 한다. 

 

핵심 메시지: “너희는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업신여기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마태 18,10)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작은 이들을 존중하며, 수호천사의 인도를 신뢰하는 것이 하늘나라의 길이다.  

 

김건태 신부님

 

수호천사

 

 

오늘 기념하는 수호천사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 개념은성경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으나성경을 바탕으로 형성된 신심으로서 신학적으로 조금씩 발전을 거듭하여 정착된 개념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먼저구약성경은 위험 중에 있는 개인이나 공동체를 돕거나 보호하는 존재로 여러 곳에서 천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창세 19,10-14. 16; 24,7; 48,16; 탈출 23,20. 23; 다니 3,49-50; 시편 34,7-8; 91,11-12; 토빗 5). 특히 보라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탈출 23,20) 하는 말씀처럼천상의 교회를 향한 하느님 백성의 순례 여정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보호자와 안내자들의 현존과 역할이 있었음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천사가 하느님 백성의 협력자라는 오래된 관념이 발견됩니다(사도 5,19; 12,7-10; 히브 1,14; 갈라 1,8). 또한 이 수호천사가 인간 개개인과 지속적이며 개별적인 관계를 갖는다고 언급하기도 합니다이에 대한 전형적 표현이 오늘 복음 말씀인 마태오 복음에 나옵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내가 너희에게 말한다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하느님 사랑의 보편성을 강조한 예수님의 이 말씀은 수호천사에 대한 교리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로마의 성 헤르마스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오리게네스 같은 교부들도 모든 사람에게 그를 인도하는 수호천사가 하나씩 파견되었다고 확신하며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오와 성 예로니모와 성 대 바실리오 등도 수호천사 개념을 발전시켜 나가는 가운데특별히 인간들의 영혼을 지키는 존재로 설명하고 있습니다수호천사에 대한 교리는 중세 이후 더욱 발전을 거듭하여4차 라테라노 공의회(1215)에서 처음으로 교의적으로 확정되기에 이릅니다.

전통적으로 수호천사는, “육신에 대하여 온갖 불행을 막아 주며영혼 사정에 유효하다면 세속적인 일이라고 하더라도 도움을 주는 존재영혼에 대하여는 극복하기 어려운 마귀의 유혹을 물리쳐 주고선한 생각을 일으켜 선행을 권하며우리를 위하여 우리와 함께 기도하고특히 임종 때 우리를 도와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존재그러므로 영육 간의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도움을 청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사흘 전 대천사 축일에도 묵상해 보았듯이하느님은 세상과 인류 구원이라는 당신의 뜻을 이루시고자 독생 성자를 십자가상 희생 제물로 바치셨으며영적 존재인 당신의 천사들을 파견하여 구원 사업을 펼쳐 나가십니다.

오늘성경에서 명시적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하더라도전통적으로 발전되어 온 신심을 존중하고 성경을 폭넓게 해석한 교회의 권위로 제정된 수호천사 축일을 기념하면서세상과 인류의 구원을 간절히 바라시는 주님의 뜻을 다시금 새기며수호천사의 인도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주님의 뜻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하루나아가 비신자들에게 주님의 뜻을 알리고 그 길로 인도하는 수호천사로서의 모습을 자랑하는보람 있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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