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3일 수원 교구 묵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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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265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5-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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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회개 없는 삶은 불행!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구약시대 예언자들의 모습을 자주 떠올리게 됩니다. 예언자 하면 흔히 ‘미래를 말하는 사람’ 또는 ‘미래에 관심을 쏟는 사람’ 정도로 인식할 때가 많으나, 사실 예언자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사람’ 곧 ‘하느님의 대변자’와 같은 사람입니다. 더욱이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신 분이니, 예언자들 가운데 예언자이신 분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취하시는 모습, 더 정확하게 말해서 복음 저자들이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묘사하기 위해서 구약시대 예언자들의 모습을 자주 인용하는 경우를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백성답지 못한 왜곡된 삶을 지적하고 비난하고 고발할 때의 예언자들, 저주 또는 불행을 주제로 말씀을 선포하면서 결국 회개의 길로 이끄는 사명에 충실한 예언자들의 모습이, 오늘 복음의 예수님 모습에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오늘 예수님은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 곧 코라진과 벳사이다와 가파르나움을 대상으로 불행을 선언하십니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이다.” 이 고을들 모두, 지금은 폐허의 상태로 성지순례객들이 즐겨 찾아드는 곳이기는 하지만, 예수님 시대에는 꽤 이름이 알려져 있던, 예수님도 자주 찾으셨던 장소들로서 모두 갈릴래아 호수 북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코라진은 가파르나움과 매우 가까이 있으며, 회당 터가 있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크기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어부의 집’을 의미하는 벳사이다는 문자 그대로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들이 많이 살고 있었으며, 베드로와 안드레아 등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한편, 이 두 고을과 비교해볼 때, 가파르나움은 더 심하게 비난받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가파르나움에서 베드로 장모의 열병 치유, 중풍 병자 치유, 회당장 야이로의 딸 소생, 백인대장의 종 치유 등 정말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티로나 시돈 수준이 아니라,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하는 저주의 말씀으로 미루어 비난의 정도는 높기만 합니다.
당신의 고향 이상으로 자주 찾아와 그 많은 가르침과 기적을 행하신 목적은 오로지 하나, 회개에 있었음에도, 곧 회개를 통한 구원에 있었음에도, 이 세 고을은 회개를 거부했기에, 이제는 존속할 가치가 없는 공간으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이교도 지역을 잡신들이 득실거리는 지역, 따라서 구원이 도저히 불가능한 지역으로 단죄해 온 유다인들이 그 지역의 사람들만도 못한 처지로 격하되어 버리니, 불행 또는 저주의 강도는 결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회개를 위해 정성을 다하신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거부는, 곧 회개 없는 삶의 끝은 불행임을 다시금 확인합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오직 회개의 삶, 주님께 등을 보인 삶을 정리하고 다시 그분을 향해 마주하는 삶임을 가슴에 새기며,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그분의 뜻에 걸맞은 것인지 조심스럽게 살피며 신앙인다운 길을 밟아가는 하루, 할 수 있다면 이웃을 도와 함께 걸어가는, 거룩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연중 제26주간 금요일
복음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3-16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3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
14 그러니 심판 때에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15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16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조욱현 토마스 신부의 오늘 복음묵상
복음: 루카 10,13-16: 띠로와 시돈에게 기적을 보였더라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코라진과 베싸이다, 가파르나움과 같은 마을들을 꾸짖으신다. 그 마을들은 수많은 기적을 목격했지만 회개하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티로와 시돈에서 같은 기적을 보았다면,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했을 것” 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단순한 저주가 아니라, 은총에 응답하지 않는 무관심에 대한 탄식이다. 하느님의 능력과 사랑이 드러났는데도 마음을 닫아버린 태도에 대한 슬픔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은총이 주어졌음에도 회개하지 않는 것은, 단순한 무지보다 더 큰 죄이다.”(Sermones 98,7)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물음을 하신다. 내가 받은 은총은 얼마나 많은가 그 은총에 나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가
복음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특별한 권위를 주신다.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다.”(루카 10,16) 사도들과 그 뒤를 잇는 교회의 가르침은 단순히 인간의 말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 이레네오도 강조한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떠난 자는 그리스도를 떠난 자이며, 그리스도를 떠난 자는 아버지 하느님을 떠난 자이다.”(Adversus Haereses III,1,1)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은총의 책임을 일깨운다. 받은 은총이 많을수록, 회개의 열매와 복음 실천이 더욱 요구된다. 또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주는 교회의 가르침을 단순한 ‘사람의 말’로 여기지 않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당연하게 주어진 것’으로 여기며 무뎌질 때가 있다. 그러나 은총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선물이며, 선물에는 응답이 요구된다. 감사와 회개, 그리고 삶의 변화를 통해 우리는 그 선물을 살아내야 한다.
오늘 우리는 은총에 감사드리며, 그 은총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제자가 되도록 결심하여야 한다.
말씀을 단순히 듣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삶으로 살아내기; 교회의 가르침을 겸손히 받아들이기; 매일 주어진 작은 기적과 은총에 눈을 뜨고, 그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주님께서 바라시는 참된 회개의 열매가 되기를 기도하여야 한다. 아멘.
출처: 저는 주님의 종 입니다 원문보기 글쓴이: 如山 신부
조명현 신부님_2025년 10월 3일 연중 제26주간 금요일
점점 신문을 보지 않는 사람이 줄어들자, 한 유명 경제신문은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묘안을 냈습니다. 광고에 3가지 구독 옵션을 제시한 것입니다.
1) 온라인신문만 구독하면 월 5달러.
2) 종이신문만 구독하면 월 10달러.
3) 온라인신문과 종이신문 모두 구독하면 월 10달러.
구독 희망자들의 90% 이상이 무엇을 선택했을까요? 3번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온라인신문과 종이신문 모두 볼 수 있으면서, 종이신문 가격으로 주니 3번이 이득’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실 신문사에서는 애초 3번을 선택하도록 유도했던 것입니다. 이를 위해 가짜 선택지인 2번을 미끼로 둔 것이었지요. 이 전략은 대성공이었고, 신문사는 큰 이득을 볼 수 있었습니다.
구독자는 스스로 선택한 것 같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신문사의 선택에 유도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삶 안에서 이런 경우는 참으로 많습니다. 죄의 유혹도 그렇지요.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유혹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더 이득인 것 같지만, 실상은 커다란 손해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잠시 이 선택에서 벗어나서 바라볼 수 있어야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이는 죄에서 벗어나 하느님과 기쁨의 시간을 함께할 수 있도록 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의 자유를 제대로 쓰지 못하게 합니다. 오히려 우리 자유를 교묘하게 억압하면서 죄의 굴레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이를 위해 좀 더 성찰할 수 있는 시간, 주님과 만날 수 있는 묵상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소중한 선물인 자유를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의 여러 도시에서 많은 기적을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회개하지 않은 것에 대해 탄식하며 경고하십니다.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 이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고 가르침을 베푸셨습니다. 즉, 누구보다 하느님의 현존을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던 곳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이런 은총을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하느님의 뜻보다는 자기의 뜻, 세상의 뜻만을 따르면서도 은총의 수혜자 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세상의 물질적 풍요는 우리를 그런 착각 속에 빠져들게 합니다. 자기가 누리는 것을 마땅히 받아야 할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나아가는 삶, 회개의 삶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 말씀처럼 더 큰 심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참된 신앙은 세상 안에 살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삶을 바꾸는 ‘회개’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를 가지고, 이 세상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기쁨의 시간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남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향수를 뿌리는 것과 같다. 뿌릴 때 자기에게도 몇 방울 정도는 묻기 때문이다(탈무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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