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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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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1일 수원 교구청 묵상글

185438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5-10-11

조욱현 신부님_복음: 루카 11,27-28: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찬미하는 한 여인의 외침으로 시작한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27절) 이는 예수님께 대한 존경과 감탄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이렇게 응답하신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28절) 

 

세상의 행복은 대개 소유나 명예, 혹은 육신의 만족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은 다른 차원에 속한다. 참된 행복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삶 안에서 실천하는 데 있다. 말씀은 하느님 생명의 씨앗이며, 그 씨앗을 마음에 품고 살아낼 때, 하느님 나라의 기쁨이 우리 안에서 시작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어머니 마리아를 부정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차원에서 마리아의 복됨을 드러내신다. 마리아께서는 단순히 예수님을 육신으로 잉태하셨기에 복된 것이 아니라, 먼저 말씀을 믿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복되신 분이다. 가브리엘 천사의 말에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응답하심으로써, 믿음으로 말씀을 지니셨고, 사랑으로 그 말씀을 실천하셨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마리아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시기 전, 먼저 마음 안에서 예수님을 잉태하셨다.”(Sermo 215,4) 즉, 마리아의 참된 행복은 육신의 모성보다 믿음과 말씀의 순종 안에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행복은 단발적인 체험이 아니라, 삶 전체에 걸쳐 이어지는 여정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할 때마다, 이미 지금, 이 순간 구원을 맛보게 된다. 구원은 종말에 완성되지만, 그 씨앗은 이미 우리 일상에서 싹트고 자라난다. 중요한 것은 말씀의 감동이 순간으로 끝나지 않고, 꾸준히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나는 말씀을 단순히 듣는 데 그치고 있지는 않은가? 말씀을 삶의 구체적 자리에서 실천하고 있는가? 

 

성모님께서 그러하셨듯, 우리도 매일 말씀을 품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 참된 행복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러한 삶을 통해 우리 자신이 작은 그리스도가 되어 세상 안에 예수님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28절) 

 

오늘 우리도 성모 마리아처럼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갈 때, 세상 그 어떤 행복보다 더 깊고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전삼용 신부님_되는 행복이 있고 갖는 행복이 있다 

 

    

류현진 선수가 뛰고 있는 LA 다저스는 7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습니다.

포스트 시즌은 한 해 동안에 성적이 좋은 팀들만 나와서 최고를 가리는 경기입니다.

그러나 다저스는 7년 동안 한 번도 트로피는 들어 올리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도 또 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괴로운 사람은 투수 클레이튼 커쇼입니다.

미국 최고의 투수이고 많은 명성을 얻는 선수이지만 가을야구에서만은 혹독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작년에 이어 이번에도 두 방의 홈런을 연속으로 맞으며 팀 전체가 희망을 버려야 했습니다.

야구는 다른 스포츠와는 달리 투수의 역할이 정말 큰 것 같습니다. 

그만큼 지면 투수의 부담도 큽니다.

돈도 많고 인기도 많은 커쇼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참하고 끔찍하다.”  사람이 살다보면 가진 것을 잃고 쌓은 것이 허물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때마다 비참하고 끔찍해야할까요?

그런 상황에서도 의연하려면 가지고 쌓는 행복보다는 되는 행복에 집중해야합니다.

훌륭한 투수가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크게 둘로 나뉩니다. 

되는 행복과 갖는 행복입니다.

되는 행복이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애인이 되는 행복과 같습니다.

그러나 애인을 갖는 행복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애인을 더 갖고 싶어서 애인이 있어도 다른 애인을 또 찾습니다. 

그렇게 되면 참된 배우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갖는 행복은 되는 행복을 잃게 하고 되는 행복은 갖는 행복을 잃게 합니다.

되는 행복을 추구하면 가난해지고 갖는 행복을 추구하면 외로워집니다. 

 

그런데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되는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갖는 행복을 추구합니다.

돈과 쾌락과 권력을 갖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서 주위의 사람을 잃습니다.

물론 돈과 명예가 있는 사람들 주위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돈과 명예가 좋아 붙어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도 세속적인 행복을 말합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자신도 어머니이기 때문에 예수님과 같은 아들을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아들로 두더라도 그런 마음으로는 행복할 수 없음을 일러주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하느님의 말씀은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그 계명을 지킴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이웃의 형제가 ‘됩니다’.

예수님은 갖는 행복보다 되는 행복이 더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당신 같은 아들을 ‘가지려 하지 말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폐륜아들은 보험금을 타내려고 부모를 다치게 하고 죽게도 합니다.

만약 안 들키고 보험금을 타내면 행복할까요?

돈을 위해 부모를 죽인 자식이라는 양심의 가책이 계속 괴롭힐 것입니다.

양심의 가책이 없더라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돈은 육체만을 행복하게 하고 영혼은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실 되는 행복으로 행복 하고 싶은 것은 영혼이고 갖는 행복으로 행복 하고 싶은 것은 육체입니다.

내가 무엇을 행복하게 하려는 지에 따라 모기가 되기도 하고 예수가 되기도 합니다.

갖는 행복을 추구하면 지옥에 가고 되는 행복을 추구하면 천국에 갑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행복을 누릴 것인지, 그 행복을 버리고 고아로 살며 갖는 행복을 추구할 것인지 결정해야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는 이들이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행복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임금은 거지가 되어도 임금의 행복을 유지합니다. 

그러나 갖는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가난하면 가난해서 불행하고 부자가 되면 그것을 잃을까봐 불안해합니다. 

 

절대 빼앗기지 않는 행복을 추구합시다.

그것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행복뿐입니다. 

 

이병우 신부님_"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11,28) 

 

'참 행복 추구하기!' 

 

오늘 복음(루카11,27-28)은 '참 행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군중 속에서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말합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루카11,27)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11,28) 

 

어떤 여자가 예수님께서 마귀들을 쫓아내시는 것을 보고, 이런 아들을 둔 어머니는 행복하겠다면서 부러워하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더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들이고, 여기에 참 행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육적인 관계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영적인 관계가 더 중요하고, 여기에 참 행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고 있듯이,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진짜 행복, 참 행복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져서, 교회와 세상이 참으로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정과 교회와 세상이 평화롭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 근본 이유는 내가 평화롭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한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 행복을 바라보고, 참 행복이 있는 곳에 마음을 두고,

참 행복을 누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행복한 그리스도인들이 됩시다! 

 

오늘은 '착하신 교황'으로 알려져 있는 '성 요한 23세 교황을 기억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요한 23세 교황은 1962. 10. 11.에 '일치와 화해의 공의회인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를 소집했습니다. 그리고 공의회 회기 중인 1963. 6. 3. 81세의 나이로 돌아가셨고, 2014. 4. 27에 시성 되셨습니다 

 

(~ 2사무14,33)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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