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참된 믿음의 삶 “기도하라, 섬겨라, 찬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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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51 선우경 [forgod] 스크랩 202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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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2.연중 제28주일(군인주일)
2열왕5,14-17 2티모2,8-13 루카17,11-19
참된 믿음의 삶
“기도하라, 섬겨라, 찬양하라”
요즘처럼 불암산 계곡물 힘차게 소래내며 흐른 적이 없습니다. 불암산 기슭 수도원에 정주하기 37년만에 처음입니다. 그토록 가을비가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강론쓰는 이 시간에도 우렁차게 흐르는 계곡물 소리입니다. 흡사 물결소리가 엊저녁 열여덟 형제들이, 우리 수도형제 13명, 상주손님4명, 주방봉사 형제1명이 함께 저녁 시편성무일도 바칠 때 찬양 노래 소리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전 언젠가 나눴던 <소원>이란 시가 생각났습니다.
“꼭
하늘비 내려야
맑게 흐르는 시냇물인가
하늘비 없어도
늘 맑에 노래하며 흐르는 시냇물일 수는 없나
살아 있는 그날까지
세상 떠나는 그날까지
하늘비 없어도
한결같이
끊임없이
찬미노래 부르며
흰모래 백사장 일상위
늘 맑게 흐느는 시냇물이고 싶다”<2025.8.23.>
더불어 생각나는 오래전 타계한 동시작가 <흰모래>라는 호를 지닌 이희철 친척 형님도 그립게 떠올랐습니다. 한결같이, 끊임없이, 제가 수행원칙으로 삼고 있는 참 좋아하는 말마디이고 제 삶의 모토이기도 합니다. 오늘 옛 현자 다산의 말씀도 새롭게 마음에 와닿습니다.
“아이는 세상에 나와 말을 익히고, 노인은 세상을 겪으며 침묵을 배운다.”
삶은 배움의 여정입니다. 침묵뿐 아니라 기도도 사랑도 믿음도 희망도 배우고 공부해야 합니다. 모두가 배워야 하는 것들이요 배움에는 영원한 초보자인 우리들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갈망과 배움에 대한 사랑은 하느님의 사람인 수도승의 필수적 기본자질입니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한결같이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남는 것은 믿음뿐인데 믿음이 없다면 그 삶 얼마나 공허하고 허무할런지요? 오늘 우리는 참으로 멋진 믿음의 모범인, 복음에서 온전히 치유받은 <사마리아 사람>과, 열왕기 하권의 <엘리사>, <나아만>을 셋을 만납니다. 오늘 말씀을 바탕으로 참된 믿음의 삶을 위한 구체적 처방을 나눕니다.
첫째, “기도하라!”입니다.
기도하는 사람, 인간의 정의입니다. 기도와 믿음은 함께 갑니다. 기도해서 사람입니다. 기도하라고 직립인간에 눈들면 하늘입니다. 오늘 복음 나병환자 열 사람들은 절망적 상황중에도 주님을 찾았습니다. 혼자가 아닌 더불어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나병환자들의 현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보자 멀찍이 서서 소리를 높여 말하니 그대로 우리가 바치는 자비송 기도입니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우리가 평생 겸손한 마음으로 끊임없이 바칠 기도는 이 자비송 하나뿐입니다. 나병환자들의 기도가 참으로 간절하고 절박합니다. 그러니 이들은 제대로 주님을 찾았고 만났습니다. 바로 바오로 사도가 이 예수님에 대해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 나셨습니다. 이것은 나의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나는 죄인처럼 감옥에 갇히는 고통까지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있지 않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를 치유하고 구원하고 자유롭게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인 예수님을 향한 나병환자들의 기도는 참으로 정확했고 간절했습니다.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의 말씀은 위력을 발휘했고 그들은 가는 동안에 깨끗이 치유되었습니다. 그대로 온갖 형태의 영적 나병을 치유받는 이 거룩한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둘째, “섬겨라!”입니다.
기도와 함께 가는 믿음이듯, 겸손한 섬김으로 표현되는 믿음입니다. 바로 그 섬김의 빛나는 모범이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 예언자입니다. 나병 환자를 당신 말씀으로 깨끗이 치유해 주신 예수님처럼, 엘리사도 나병환자 나아만을 말씀으로 깨끗이 치유해 주십니다. 겸손히 엘리사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깨끗이 치유된 나아만입니다.
치유받은 나아만의 선물을 끝내 물리치는 순수와 겸손의 사람 엘리사, 그가 얼마나 하느님을 충실히 섬긴 하느님의 사람인지 감동하게 됩니다. 엘리사의 처신이 참 멋집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참 “쿨(cool)”합니다. 참사람 하나 만나는 것처럼 기분이 참 좋습니다.
“내가 모시는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결코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엘리사의 단호한 거절이 그대로 그가 하느님을 잘 섬긴 결백하고 청렴한, 욕심없는 하느님의 사람임을 입증합니다. 엘리사의 이런 모습을 보고 배웠을 나아만입니다. 엘리사의 거절이 전화위복, 나아만을 하느님의 사람이 되게 하니, 바로 다음 나아만의 멋지고 감동적인 처신이 이를 입증합니다.
“그러시다면, 나귀 두 마리에 실을 만큼의 흙을 이 종에게 주십시오. 이 종은 이제부터 주님 말고는 다른 어떤 신에게도 번제물이나 희생제물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겸손한 섬김의 절정이 종이라는 표현입니다. 종(servant)과 섬김(srvice)은 어원이 같습니다. 겸손한 섬김의 종이, 하느님의 사람이 된 나아만 장군은 모든 군인들의 모범입니다. 오늘은 군인주일입니다. <나라의 종>에 앞서 하느님을 겸손히 섬기는 <하느님의 종>인 군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영국의 토마스 모어의 마지막 죽음의 대한 평가도 잊혀지지 않는 감동입니다.
“그는 왕의 좋은 종에 앞서 하느님의 종으로 죽었다(He died the King's good servant but God's first)”
셋째, “찬양하라!” 입니다.
찬양하는 믿음입니다. 감사와 찬양은 함께 갑니다. 찬양과 감사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때 온전한 전인적 치유의 구원입니다. 오늘 복음의 치유받은 나병환자 열명중 온전한 치유의 구원을 받은 이는 단 하나, 나병의 치유에 하느님을 찬양하고 예수님의 발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린 사마리아 사람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자신을 들여다 보게합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오지 않았단 말이냐?”
과연 나는 아홉에, 또는 하나에 속하는지 묻습니다. 더불어 “하느님은 모든 일에 찬미받으소서”라는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임종어도, “하느님은 모든 일에 영광받으소서”라는 성 베네딕도의 좌우명도 생각납니다. 사마리아 사람처럼, 나병이 치유된 시리아 장군 나아만의 다음 고백 역시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영광을 드리는 참 멋진 모습입니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예수님을 통해 온 세상, 온 인류의 하느님이심이 환히 계시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 치유받은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주님의 복음 말씀입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17,19).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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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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