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28주일 다해, 군인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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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55 박영희 [corenelia] 스크랩 202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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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8주일 다해, 군인주일] 루카 17,11-19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다른 사람에게 입은 은혜를 져버리고 배신하는 이들을 가리켜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 파렴치한 사람이 되는 이유는 감사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고 고집이 세질수록 점점 하기 어려워지는 말 중 하나가 ‘감사합니다’지요. 일이 잘 되면 내가 잘한 덕분이고, 결과가 안좋으면 다른 사람이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나에게 호의나 친절을 베풀어도 그것이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서운한 감정이 들고 그 정도 밖에 못해주는 그 사람이 원망스러워집니다. 사는 동안 수도 없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도움과 은혜를 받으면서도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받았다 여기고, 더 받지 못했다고 불평합니다.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잘 해주고 싶을까요? 아무리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하지만, 그런 사람은 잘 해줘봐야 나에게 득 될 게 없어 보이기에, 오히려 불평과 원망만 듣게 될 게 뻔하기에 거리를 두고 싶어지겠지요. 많은 은혜를 입고도 감사할 줄 모르고 자신은 가진 것이 없다며 볼멘 소리를 하는 사람은 자신이 받은 것들의 소중함과 가치를 깨닫지 못하기에 그것이 주는 유익을 누릴 기회마저 잃는 법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매사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감사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던 예수님 앞에 나병 환자 열 사람이 나타납니다. 치료가 불가능한 악성 피부병에 걸려 부정한 상태가 된 그들은 정결법을 어기게 될까 두려워 예수님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하고, 멀찍이 서서 큰 목소리로 자기들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부르짖지요.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살 수만 있다면 지푸라기라도 붙들고 매달리고 싶은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자기들이 살던 지역 부근을 지나가신다는 소식이 그 자체로 ‘복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압도적인 권위와 놀라운 능력으로 수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도 그분의 권능에 힘입어 나병이라는 천형(天刑)에서 벗어나 구원받으리라고 희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돌에 맞아 죽을 위험까지 무릅쓰고 예수님을 찾아가 제발 자기들을 이 지옥에서, 죽음보다 더 큰 고통에서 구해달라고 읍소했던 것이지요.
아버지를 닮아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예수님이셨기에 그들의 간절한 청원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즉시 치유의 은총을 베풀지는 않으십니다. 대신 당신께서 원하시는 ‘때’가 되면 그들의 병이 나으리라 약속하시며, 그들을 자기들이 속해있던 공동체로 돌려보내십니다. 가서 깨끗해진 자기 몸을 사제에게 보여 나병에서 완전히 나았음을 공적으로 확인받음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삶을 회복할 수 있도록 배려하신 것이지요.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길을 떠났고 그 말씀대로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습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과 순명 덕분에 치유라는 큰 은총을 입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반응이 상반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먼저 아홉 명의 ‘유다인’들은 그대로 길을 재촉하여 자기들이 살던 마을로 돌아가버렸습니다.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유다인으로써의 ‘선민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은 하느님께 선택받은 특별한 민족이기에, 그분께서 베푸시는 은총의 선물들을 받아 누리는 걸 당연한 ‘권리’로 여긴 것이지요. 그 교만과 배은망덕함 때문에 수도 없이 하느님 뜻을 거스르고 불충을 저질러 벌을 받았음에도, 나병에 걸려 남들로부터 ‘천벌을 받았다’고 손가락질 당했음에도, 잘못된 마음가짐은 바뀌지 않았던 겁니다. 어쩌면 예수님으로부터 치유의 은총을 입은 것도 위험을 무릅쓰고 그분을 찾아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던 자기들 노력 덕분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릅니다.
반면, 유다인들이 ‘이방인’ 취급하며 무시했던 한 사람의 사마리아인은 발길을 돌려 예수님께로 돌아옵니다. 돌아오는 길 내내 그의 입에서는 예수님을 통해 자신에게 놀라운 은총을 베푸신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가 흘러나왔지요. 그가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예수님께 감사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사제로부터 정결한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것보다, 병에 걸리기 전의 지위와 삶을 회복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일이 더 중요하고 급한 일이었던 겁니다. 그런 마음으로 예수님께 돌아온 그는 자기도 모르게 그분 가까이 다가가 그분 발 앞에 엎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은총을 베풀어주시기 전에는 나병이라는 물리적, 사회적 장벽에 가로막혀 그분을 멀리서 바라볼 수 밖에 없었지만, 이제 그와 예수님 사이는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을 뿐 아니라 그 어떤 것도 그분과의 사이를 가로막을 수 없게 되었지요. 은총을 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그 마음을 즉시 실행에 옮긴 그의 결단이 주님과의 관계를 깊고 친밀하게 만든 겁니다. 감사는 상대방과 나 사이의 거리를 좁혀 줍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베푼 호의 덕분에 내가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를 말과 행동으로 드러냄으로써, 축복과 사랑의 마음을 가득 담아 ‘이 모든 게 당신 덕분’이라고 진심으로 고백함으로써 그와 나 사이의 유대가 깊어지고 단단해지는 것이지요. 주님께 감사를 드린 한 명의 사마리아인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주님께서 그에게 베푸신 은총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로부터 나온 것임이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나을 수 없는 병이 치유된 것은 분명 큰 은총이지만, 그것이 곧 구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 받은 은총이 구원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주님께 받은 은총으로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감사’라는 다리를 지나야 하지요. 간절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청한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은 정말 기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 기쁨과 감격에만 머물러 있으면, 게다가 그 기쁨과 감격을 내가 당연히 누려야 할 특혜로 여기며 교만해진다면,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이 주는 참된 기쁨과 행복을 온전히 누릴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 속 아홉 명의 유다인 나병환자들이 그랬지요. 그들은 자기들이 받은 은총만 생각하며 감사로 나아가지 못했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구원자가 아니라 특별한 치유의 힘을 지닌 능력자로만 만났기에, 육체의 병이 낫는 것에, 이전의 삶을 회복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그들 말고 한 사람의 사마리아인을 닮아야겠습니다. 내가 받은 은총 하나 하나를 소중히 여기며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사랑과 자비가 넘치시는 주님을 찬미하는 기도를 삶으로 드러내야겠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는 더 많은 은총을 누릴 것이고, 저 세상에서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이라는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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