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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5년 11월 5일 (수)연중 제31주간 수요일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가톨릭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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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에서 1만 여 개 개신교 교파가 생겨서 교회 일치 문제에 심각한 상황을 불러오는가

185467 우홍기 [justice24] 스크랩 2025-10-13

결론은 전두환 정권이 문제였다

그 당시의 교육이 문제로서 지목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용어 개념 정의 부실,

공리 체계 등의 사전 합의 된 전제들에 대해

명확히하고 진행하는 토론이나 글쓰기 교육의 부재 또는 부실

 

그 원인을 사실은 오래 오래 생각은 했지만

직접 원인을 따져 보기 시작한 것은

그 오랜 글쓰기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던진

물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개신교가 최초로 가톨릭에서 갈려 나갈 때

교리 상의 문제를 본다면

고해성사를 부정할 수 밖에 없는

마르틴 루터의 심리 상태가 병적인 세심증이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께서도 신학생 때 세심증을 겪으셨다고 나오는데

그것을 잘 극복하신 경우가 되는 반면

마르틴 루터는 그것에 결국 실패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고해성사 요한 20,21-23을 보면 형제들이 잘못하면 몇 번 용서해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복음서 안에서의 논의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 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여라였나

그 표현이 나와서 완전을 상징하는 7이 반복되어 늘 용서하라

그런데 요한 20,23은 인간인 11사도에게 용서의 권한이 내려지고 그 권한에서 거부하면

심지어 죄를 용서받지 못한 채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라는 표현은

분명히 늘 용서하라는 당부이셨다면 전에 내가 말했듯이

그렇게 그런 표현이 같이 성서 본문에 있다든지

그래야 하는데 아니면 왜 사족이 되는 마지막 구절을 남기셨나

그런 물음을 던질 수 밖에는 없습니다.

 

개신교에서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대속

그런 것이어서 자동으로 교회 나가 오직 예수

그러면 구원되는가

 

그런데 요한 20,21-23에 보면 벌써 부정되고 있습ㄴ다.

사람인 신부님들께 그 11사도께

고해성사를 해야 하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 받지 못한 채로남아 있을 것이다

이것은 개신교가 주장하는 예수 그리스도님의 대속에서

11사도가 예수님의 대속을 제한을 둘 수 있다

그런 권한이어서 개신교에서 말하는 그 대속은

성경 본문들 간을 이동하고 다니면

여기 저기에서 걸리게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어떤 중력장의 공간에서 전기적으로 중성인 물체가 이동하는데 있어서

2차원 공간만 골라 보면

그러니까 땅바닥에서 굴러가는 공은

위로 띄우지 않으면

그대로 평면 위에서 운동하는데 있어서

매끈한 테니스 장 같다면

굴러갈 때 걸림돌이나 그런 것들이 없고

혹은 구멍으로 빠져들지도 않고

평면 위를 옮겨 다니겠죠.

그리고 3차원 공간으로 확장해도

던져지면 포물선 운동이고

그런 식으로 일반 역학에서 발생하는 운동을 보일 것으로 설명이 되는데

그런데 전자기장으로 그 공간이 전하에 미치는 영향은

울퉁불퉁 하게 되어 중력장에 비해 상당히 왜곡된 공간을 돌아다니게 됩니다.

그러면 테니스공과 그 전하의 운동을 비교해서 관찰하면

그 공과 전하가 지나는 공간에서

공이 지나던 3차원의 중력장 공간이 전하는 그 3차원 공간이 중력장 외에 다시 전자기장으로 왜곡되어 있는

그 장을 돌아다니면서 좌표들을  기록으로 남기면

공이라면 돌아다니는 좌표의 발생과

전하라면 돌아디니며 남기는 좌표의 발생은

공이었다면 절대로 옮겨 가지 않을 공간을

전하는 옮겨 다녔다.

 

고해성사 하나를 빼는 것은

요한 20,21-23을 부정하는 것은

즉 그냥 용서하라 그 말씀이다라고 하면

그 마지막 표현이 사실 걸리는 것이

11사도가 예수 그리스도님의 대속을 부정할 수 있게 되는 

권한이 발생하니까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공로를

교회가 뒤집을 수 있다는 말이냐

그런 논의가 생겨나게 되는데

개신교가 옳다고 본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되는데

예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시고 가신게 되니까

가톨릭과 개신교 둘 중의  한 쪽은 누군가 오류 속에 있는 것이죠

 

누군가는 중력장이 아니라 왜곡된 공간이다

옷감 천으로 보면

고해성사가 원래 써 있는대로 인식되어야 하는데

그 부분을 구멍을 내서 없애 버렸다

그 천감 천을 써본다며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천감을 모으면 주변에 주름이 생기겠죠?

그러면 그것은 울퉁불퉁 왜곡된 공간이 됩니다.

그러면 그것을 펴보겠다며

이건 잘못이니

천감을 그 주름 잡힌 부분을 다시 잘라내서 평평하게 한다면

다시 천감은 구멍이 나고

그 구멍을 다시 메우기 위해 주변 천감을 모아 채우면

다시 그 다음이 주름이 잡힙니다.

 

즉 주름 잡힌 천감의 부분들은 정보를 갑자기 어느 부분만 크게 확대해서

나머지 주변 정보들을 버리면서 그것만 골라내서 보고

그것은 잘못 읽은 상태라고 이해한다면

평평한 천감이 구멍 없이 유지 되었다면

그 위로 따라가면 그건 제대로 읽은 것이라고 할 때

주름 잡힌 부분들이 연쇄적으로 나오면서는

이것이 우리가 읽어보니 잘못 읽었는데 여러분들이..

그러면서 자꾸 그것을 평평하게 본다며 오려내면

천감이 예를 들어 바구니를 지을 천감으로서 유지되기 위하여서는

그런 천감으로는 바구니를 만들면 다 샌다 바구니가..

혹은 그러다가 여기 평평해야 하는데 왜 주름 잡혀있나

그러면서는 이제 서로 찢어지는 수 밖에 없다

 

고해성사 요한 20,21-23을 부정하고 나니까

나머지 구절들이 여기에 맞춰지려면

개신교 식으로..

맞춰지려면

다른 성경 본문들이 개신교의 믿음에 의한 구 대해서

부정하는 구절들이 나오고

그 구절들의 공격을 받게 되니

그 구절들의 본래 성경 본문 해석들을 변경할 수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라고

추정하는 것 옳지 않겠나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 다음 글에서는 그러면 왜 그런 분열이 오는가에 대해서

1차적으로는 고해성사 요한 20,21-23을 성경 본문에서처럼 권한이 주어지는 것으로 비조 않고

만인 제사장이 어떠쿵 이러쿵 저러쿵 해서

천주교는 왜 신부님을 중간에 계시게 하나

하나님과 1:1로 해야지..

그런데 그 당시 추기경님들 교황님까지

그 분들이 전부 사람이시잖아요

그게 무슨 예수님 부활하신 다음에

무슨 초대 교회판

전설의 고향 특집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우리 나라에서 각별히 거의 모든 교파가 나오게 되나..

그 이유를 다음 글에서 살펴 보기로 해보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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