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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5년 11월 5일 (수)연중 제31주간 수요일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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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위선은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입니다.>

185564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5-10-15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루카 11,42-44).”

“율법 교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루카 11,45-46)”

1) ‘위선’이란, ‘눈에 보이는’ 겉모습과 ‘보이지 않는’

속마음이 다른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위선’을 ‘말과 행동이 다른 것’으로 표현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위선자인지 아닌지는,

그의 행동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위선자들도 겉으로는 겸손하게 행동합니다.

진심으로 자기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서, 또 마음속으로는

자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났다고 우쭐거리면서,

속마음을 감추고 겉으로만 겸손하게 행동하는 경우,

바로 그것이 ‘거짓 겸손’이고 ‘위선’입니다.

그런 경우에 대부분, 자신은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겉으로만 보면, 그 사람은 말과 행동이

일치되어 있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위선자인지, 아니면 진실한

사람인지, 겉으로 보이는 행동만으로는 구분하지 못합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라는

속담 그대로입니다.>

그렇게 위선자들은 거짓된 말과 거짓된 행동으로 사람들을

속이는 자들인데, 사람들을 속일 수는 있어도

하느님을 속이지는 못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은 사람의 속마음을

꿰뚫어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마태 6,4).

2) 위선자들도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잘 내고,

그리고 그들이 낸 돈으로 누군가가 실제로 도움을 받게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위선자들의 거짓 자선을 꾸짖으십니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마태 6,1-2).”

위선자들도 이웃 사랑 실천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실제로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잘 내기 때문에

말과 행동이 일치된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진심으로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자비심을

과시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그들의 말은 거짓말이고,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잘 내는 것은 거짓 사랑입니다.

위선자들도 기도는 열심히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연기’일

뿐이라고 꾸짖으십니다(마태 6,5).

위선자들도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그 말은 거짓말이고, 그들이 실제로 열심히 기도하는 것으로

보이더라도 그것은 기도하는 척 하는 연기입니다.

위선자들도 단식할 때에는 실제로 굶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단식은 거짓 단식이라고 꾸짖으십니다(마태 6,16).

신심을 과시하기 위해서 억지로 하는 단식이기 때문입니다.

3) 42절의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는,

“십일조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들에 대해서도 십일조를

내면서”이고, “겉으로 보기에는 엄격하고 철저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이라는 뜻입니다.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는,

“정의와 사랑의 실천 같은, 정말로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일들은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다.”입니다.

<이 말씀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일은 잘하는데,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을 꾸짖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43절의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은,

위선자들의 교만과 허영심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44절의 ‘드러나지 않는 무덤’이라는 말은,

‘남을 죄짓게 하는 죄를 짓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위선자들이 자기 혼자 죄짓고 자기 혼자 멸망의 길로 가면

그 자신의 일로 끝나지만, 다른 사람들을 물들여서

죄짓게 만들고 멸망의 길로 가게 만들기 때문에

‘위선’은 결코 작은 죄가 아닙니다.

특히 성직자들의 위선은 더욱 ‘큰 죄’가 됩니다.

46절의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계명들과 율법들을

잘 지키라고 가르치면서 자신은 지키지 않는 성직자들의

위선을 꾸짖으시는 말씀이기도 하고, 계명들과 율법들을

지키라는 말만 하고, 잘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지는 않는

성직자들의 직무 태만을 꾸짖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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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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