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 한창이던 시절, 가까운 곳에 사는 아이들을 점심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식사 후에는 한 형제가 산타복을 입고 나와 아이들을 위해 캐롤송도 불러주고, 작은 성탄 선물도 나눠주고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아이들 가운데에는 한 살도 채 안 된 갓난아기도 있었는데, 따뜻하신 어머니 원장님께서 집중 마크를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포대기 위에 누워있었는데, 우리 형제의 재롱 잔치를 보고서는, 누워서 깔깔 웃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성탄절을 맞아서 다시 한번 하느님의 크신 자기 낮춤, 육화강생의 신비를 묵상합니다. 하느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땅에 오셨는데, 백마를 탄 왕의 모습이라든지, 전지전능한 해결사의 모습이 아니라, 스스로 머리도 돌릴 힘도 없는 나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의 왕권은 힘이나 권력, 총이나 칼이 아니라 작음과 겸손, 희생과 헌신으로 완성될 것임을 아기 예수님의 성탄은 우리에게 명명백백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성탄 미사를 드리러 온 아이들을 보면서 제 어린 시절 추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아마도 대여섯 살 무렵이었을 것입니다. 그때 저는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서울 근교 산 중턱 판자촌에 살았었는데, 함박눈을 맞으며, 어머니 손을 잡고 십리 길을 조심조심 걸어 성탄 밤미사를 드리러 가곤 했습니다.
성당은 제대로 된 건물이 아니라 군용 천막이었습니다. 미사 시간 내내 너무나도 추워 코끝까지 다 시렸지만, 선교사 신부님의 미소와 넓은 품은 참으로 따뜻했습니다. 한국말이 서툴렀지만, 엄청 재미있었습니다. 끝나고 나면 선진국에서 보내준 구호품 나눔이 이어졌습니다.
꼬마입장에서는 꽤 벅찬 성탄 미사를 다녀오는 조건으로, 직장 일이 끝난 아버지는 양손 가득 성탄 선물로, 당시로서는 어린이들에게 최상의 선물이었던, 큼지막한 ‘오리온 종합선물세트’를 들고 오셨습니다. 가족끼리 둘러앉아 밤새 이 과자 저 과자 맛보면서 그렇게 성탄절을 만끽했습니다.
은총과 축복의 성탄 전야에 성탄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성탄은 이런 의미가 아닐까요?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 각자에게 건네시는 종합선물세트!’
완성을 추구하지만 언제나 미완성인 우리들, 완벽을 추구하지만 늘 결핍된 존재인 우리들, 충족함과 충만함을 갈구하지만 늘 뭔가 허전하고 허탈한 우리들의 그 부족함과 한계를 가득 채워주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시는 값지고 정성스런 선물이 아기 예수님의 성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 세상 가장 작고 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신 하느님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육화강생에 담긴 그 큰 은혜와 감동, 우리를 향한 큰 사랑과 깊은 의미를 침묵 속에 천천히 되새기는 이번 성탄절이 되면 좋겠습니다.
성탄절은 오늘 이 시대 우리에게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 마음 안에 하느님을 담으면 성탄은 우리의 것이 됩니다. 우리 내면에 자비와 측은지심으로 가득한 주님 사랑의 기운이 있다면, 우리 안에 주님께서 탄생하신 것입니다.
세상만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정화될 때 성탄의 참모습이 우리 앞에 드러납니다. 매일의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우리가 환하고 해맑게 웃으면, 우리 안에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것입니다.
한없이 겸손하신 하느님을 따라 심연의 바닥으로 내려갈 때, 우리는 거기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만나뵙게 될 것입니다. 겸손의 극치를 보여주신 아기 예수님을 따라 우리 매일의 삶 속에서 겸손의 향기가 풍겨날 때, 우리의 얼굴은 성탄의 은총으로 빛날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