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근 신부님_“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루카 2,12)
-
187038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5-12-25
-
* 오늘의 말씀(12/24) :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 제1독서: 이사 9, 1-6
* 제2독서 : 티토 2, 11-14
* 복음 : 루카 2, 1-14
1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서 칙령이 내려, 온 세상이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다. 2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실시되었다. 3 그래서 모두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본향으로 갔다. 4 요셉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을 떠나 유다 지방,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다윗 고을로 올라갔다. 그가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5 그는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등록을 하러 갔는데,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6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7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8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 9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10 그러자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11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12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13 그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 <오늘의 강론>
축하합니다. 성탄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왜 성탄인가? 다른 탄생과는 어째서 다른가?
이를 오늘 <제1독서>에서 예언자 이사야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이사 9,5)
그렇습니다. 모든 존재는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태어난 존재’와 ‘태어나지 않고 있는 존재’입니다. 곧 ‘온갖 피조물’과 ‘스스로 있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두 존재 차원을 함께 갖고 계신 유일한 분이 오늘 탄생하신 것입니다. 스스로 있는 하느님이시면서 건네 오시어 인간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성탄’이라 부르며, 동시에 ‘강생’이라 부릅니다.
그렇습니다. 이는 ‘탄생’일뿐만 아니라 ‘강생’이라는 ‘내려오심’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무참한 ‘내려오심’입니다. 그것은 전능하고 무한함에서 무능하고 허약함으로 내려옴이요, 높고 존귀함에서 낮고 비천함으로 내려옴이요, 온전함에서 결핍과 의존함으로 내려옴이요, 자유와 다스림에서 예속과 지배로의 내려옴입니다. 바로 이 내려오심 안에 ‘구원의 신비’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에 사는 가난한 부부 요셉과 마리아에게서 탄생된 ‘아기’에 대한 이야기로 드러내줍니다.
‘나자렛’은 올리브나무 뿌리에서 나온 ‘네째르’에서 온 말로, ‘볼품없고 형편없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곧 보통의 가지는 줄기로부터 나오는데 비정상적으로 뿌리에서 삐져나온 볼품없는 가지라서 발로 밟아 꺾어버리거나 칼로 쳐서 제거해버리는 가지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의 경외함이다.”(이사 11,1-2)
그리고 흔히 메시아 장으로 일컬어지는 53장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는 주님 앞에서 가까스로 돋아난 새순처럼 메마른 땅의 뿌리처럼 자라났다. 그에게는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라만한 모습도 없었다.”(이사 53,2)
이렇게 아기 ‘예수님의 탄생’, 곧 ‘강생’은 참으로 무참합니다. 여느 인간들에게도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밀려나 마구간에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루카 2,12)로 세상에 옵니다.
그리고 이 ‘탄생’, 이 ‘오심’은 꼭 필요한 한 분이 없이는 결코 벌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곧 그분이 함께 있으니, 바로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마리아 없이는 탄생할 수도, 올 수도 없는 것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무력한 아기로 오는 까닭입니다. 곧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기로 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분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방식이요 또 세상에 접근하는 방식입니다. 곧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존재로 다가옵니다.
그렇습니다. “타인을 필요로 하는 존재, 타인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존재!” 바로 이것이 하느님께서 ‘아기’의 약한 존재로 탄생하셔야 했어야 할 이유가 아닐까요?
동시에, “자신의 약함을 받아들여야 사는 존재!” 이것이 바로 인간이 무력하고 약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약하기에 타인과 함께 살아야 하고 타인의 약함을 받아들여 사는 존재”, 바로 여기에 우리가 살아야 할 참인간의 모습이 아닐까요?
하오니, 주님!
내려가고 낮아지고 약해지는 것이 다가가는 길임을 알게 하소서.
사랑으로 약해져, 이기기보다 질 줄을/약하기에, 받아들일 줄을 알게 하소서. 신뢰에 내맡겨져 부서지게 하소서.
이처럼, ‘성탄’은 “우리가 타인의 약함을 받아들여야만 살 수 있는 존재요”, “타인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로 사는 것이 참된 인간의 길임을 가르쳐줍니다. 동시에 우리가 하느님 되는 길을 열어줍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취약함을 거부하고 자력으로 자신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하고자 높아지려고 했던 ‘옛 아담’이 범한 죄를, 이제 ‘새 아담’이 취약함을 받아들여 낮아지고 약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 소식은 밤 내내 야간철야 근무를 하고 있던 가난한 목자들에게 전해집니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루카 2,11)
이 사실을 두고,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가 이렇게 선포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티도 2,11)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이 복된 날, 축하에 축하를 드립니다. 아멘.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루카 2,12)
구유의 아기 예수여!
높은 곳에서
지고한 사랑으로 찾아오시어
밀리고 밀려 떠밀려난 마구간 구유에
진리의 자리를 깔고 누운 빛, 아기 예수여!
비추신 당신의 신비, 강생의 도를 가르치소서.
무능해지고
무력해지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당신과 함께 밀려날 줄을 알게 하소서.
제 몸을 누인 그 어디든 밥이 되는 자리가 되게 하소서.
먹힐 줄을 알게 하소서.
내어줄 줄을 알게 하소서.
약해짐이 내어주는 길임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생명을 내어주고,
생명이 되어주기를 배우게 하소서.
어둠을 뚫고 광야를 건너
죄를 부수고 장벽을 넘어
멀고 먼 길을 달려온 빛, 아기 예수여!
다가가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내려가고 낮아지고 약해지는 것이
다가가는 길임을 알게 하소서.
사랑으로 약해져, 이기기보다 질 줄을
약하기에, 받아들일 줄을 알게 하소서.
신뢰에 내맡겨져 부서지게 하소서.
그 무엇을 하지 않아도, 그 무엇이 되지 않아도,
부서져 사라지는 그 아름다움을 지니게 하소서.
진리의 빛, 아기 예수여!
자신의 구원만이 아니라 상대의 구원을 돌볼 줄을 알게 하시고
사랑으로 벌어지는 보살피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
187053
박영희
09:49
-
반대 0신고 0
-
- 12월 26일 수원 교구 묵상
-
187052
최원석
09:24
-
반대 0신고 0
-
- 이영근 신부님_“내 이름 때문에~”(마태 10,22)
-
187051
최원석
09:05
-
반대 0신고 0
-
- 양승국 신부님-우리도 스테파노처럼 죽음을 통해 하느님을 증거하며 그분과 일치할 수 있기를!
-
187050
최원석
09:01
-
반대 0신고 0
-
-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
187049
최원석
08:58
-
반대 0신고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