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근 신부님_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마태 2,20)
-
187085 최원석 [wsjesus] 스크랩 08:25
-
* 오늘의 말씀(12/28) :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 제1독서 :집회 3, 2-6. 12-14
* 제2독서 : 콜로 3,12-21
* 복음 : 마태 2, 13-15, 19-23
13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14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15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9 헤로데가 죽자, 꿈에 주님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20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다.” 21 요셉은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갔다. 22 그러나 아르켈라오스가 아버지 헤로데를 이어 유다를 다스린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러다가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래아 지방으로 떠나, 23 나자렛이라고 하는 고을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이로써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 <오늘의 강론>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 성가정 축일입니다.
그런데 성가정이란 대체 어떤 가정을 말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바오로 사도는 <제2독서>를 통해 이렇게 들려줍니다.
그는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은 사람으로 사는 것’이며,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주고 용서해주고, 그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는 것’이다(콜로 3,12-14 참조). 또한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으로서 평화가 마음을 다스리게 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며(콜로 3,15 참조),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머무르게 하며,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이고(콜로 3,16-17 참조), 서로 ‘순종하고 사랑하는 것’이다(콜로 3,18-20 참조).
한편, 이를 구체적으로 오늘 <복음>에서 찾는다면, ‘성가정’이란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가정이요, ‘말씀’에 순명하는 가정이요, ‘말씀’이 성취되는 가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말씀이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이 주인 되게 하는 가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두 가지 말씀의 성취를 전해줍니다. 곧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마태 2,15) “그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 2,23)라는 말씀의 성취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들의 성취 안에는 모진 고통들이 함께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곧 이 가정은 이집트에서 불려나오기까지, 또 나자렛 사람으로 불리기까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쫓겨다녀야했고, 변방의 거류민으로 살아야 했고, 숨어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니 고통이 없는 가정이 ‘성가정’이라는 말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아니 어쩌면, ‘성가정’에는 고통이 필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의 성취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성가정’이란 고통이 없고 편안하고 안정된 단란한 가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함께 나누고 고통 속에서도 말씀이 이루어지는 장소요 자리가 되는 가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을 이루는 사람이기에 앞서, ‘말씀이 이루어지는 장소요 공간’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말씀이 활동하고 성취되는 모습은 참으로 신기합니다. 무엇보다도 신비로운 것은 ‘말씀이신 분’께서 말을 하지도 못하는 ‘아기’ 모습으로 우리 가정과 우리 공동체 안에 들어와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아기’는 말을 할 줄 모르면서도 우리를 이끄십니다.
참으로 묘한 신비입니다. ‘말씀이시면서 말을 못하는’ 이 아기는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고통으로, 때로는 무력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때로는 보이지도 않는 빈자리가 되어 우리네 가정, 우리네 공동체를 이끄십니다.
이렇게 ‘아기 예수님’은 우리 가정과 공동체의 주인이면서도 우리 모두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빈자리’로 계십니다. 마치 ‘가나안의 혼인잔치’에서 주인공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빈자리’로 있는 신부처럼, 우리 가정 안에서도 ‘빈자리’로 계시면서 우리 모두를 품으시고 끌어안으십니다. 그러면서도 성취를 이루십니다. 그러니, ‘공동체의 빈자리’, 그곳이 바로 중심임을 보아야 할 일입니다. 곧 ‘자기 자신이 중심이 아님’을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가정, 우리의 공동체 안에 말씀이 살아있는지 들여다보아야 할 일입니다. 곧 ‘말씀이신 분’이 우리 안에 작고 낮고 무력하게 말 못하는 아기의 모습으로 살아계심을 볼 일입니다. ‘말씀’은 사랑하는 이 앞에서 항상 작고 낮은 이로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 앞에서는 결코 자신을 높이거나 교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관상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보다 작고 나약한 예수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보다 작고 무력한 예수님을 만났는가? 나를 사랑하기에 언제나 나보다 작은 모습으로 내 앞에 무력하게 낮아져 있는 그분을 말입니다. 심지어는 ‘없는 자’, ‘빈자리’가 되어 있는 그분을 말입니다. 아멘.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마태 2,20)
주님!
말씀에 귀 기울이며
들은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말씀이 주인이요 중심이 되는
순명하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말씀이 살아있고 존중되는
활기 찬 가정이 되게 하소서.
우리 가정이 서로의 고통을 끌어안고 십자가를 함께 지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 12월 28일 수원 교구 묵상글
-
187087
최원석
15:02
-
반대 0신고 0
-
- 12월 28일 주일 / 카톡 신부
-
187086
강칠등
10:16
-
반대 0신고 0
-
- 이영근 신부님_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마태 2,20)
-
187085
최원석
08:25
-
반대 0신고 0
-
- 양승국 신부님_ 하루 0.01 밀리미터씩 성장하는 그대!
-
187084
최원석
08:24
-
반대 0신고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