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1일 수원교구 묵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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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47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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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_마음에 새겨 실천하는 어머니
[말씀]
■ 제1독서(민수 6,22-27)
구약시대에 축복은 하나의 주문처럼 기도를 통하여 전달되었으며, 어떤 사람이나 백성에게 내려진 축복의 내용들은 그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후손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축복을 통하여 자신을 낳아 준 사람의 기대에 부응할 능력을 선사 받게 되며, 이 능력은 축복을 통하여 후손대대로 계승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축복의 출처가 하느님이시니, 그 효과에 대하여 이제는 의심을 품을 이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 제2독서(갈라 4,4-7)
초대교회 신자들에게 마리아는 다소 어둠에 싸여 있던 인물로 인식되었으나, 마리아만큼 신앙적으로 완벽하고 성숙한 인물은 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바오로는 마리아에게서 신앙인의 참모습을 찾습니다. 사람은 순명을 거역하는 종의 모습으로 하느님께 더 이상 순종하지 않게 되었으나, 신앙인은 마리아처럼 성령의 도우심으로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하며, 그분을 “아빠, 아버지!”하고 부를 수 있는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 복음(루카 2,16-21)
가난한 사람들, 정확하게 말해서 마음이 온전히 열려 있는 사람들만이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일 수 있음을 되풀이해서 강조하고 있는 복음저자 루카는, 마리아의 모습 가운데 하느님의 부르심에 끊임없이 귀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강조합니다. 이 부르심이 놀라운 사건 속에서 펼쳐지는 경우, 그 모습은 더욱 인상적입니다. 복음 속에서 목자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접한 마리아의 반응,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길” 뿐인 모습은 그 대표적인 예에 속합니다.
[새김]
성탄축일과 성탄시기를, 사람들이 흔히 기대하는 세속적인 화려함을 뛰어넘어 신앙인의 참 축제로 지내도록 권할 때, 상당수의 사람은 부정적 반응을 일으키곤 합니다. 세속적인 측면을 지워버릴 때, 감동적인 아름다운 역사, 그러나 실은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리게 하는, 역사에서 비롯되는 기쁨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최소한 성탄이 이미 내포하고 있는 예수님의 신비, 고통의 길을 마다할 수 없는 신비, 부활의 영광을 내다보는 신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명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앙인의 모범을 마리아에게서 찾습니다. 성탄에 관한 이야기 속에서 마리아가 보여주는 모습들 하나하나가 신앙인의 본보기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신앙 안에서 처녀의 몸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며, 평범한 어머니의 기대를 뒤흔들어 놓는, 초라한 구유에서의 출산을 수용합니다. 이 모든 고난의 길이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펼쳐지는 것이라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마리아가 모범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십자가를 넘어 부활을 향한 길로 예수님을 뒤따를 마음의 준비를 하며 올 한 해를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새해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엽니다. 성모 마리아와 함께,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성모 마리아에게 한 해를 맡겨드리며 시작합니다. 사실, 성모님과 함께하는 것보다 더 좋은 시작은 없을 것입니다. 성모님은 우리가 하루하루를 거룩하게 살도록 도와주실 것이고, 나약해서 넘어질 때 또는 너무나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다시 일어나 걸어가도록 손을 잡아주실 것이며, 이웃을 위한 봉사의 길에서 늘 지혜와 용기를 불어넣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모 어머님께 이 한 해를 맡겨드리며, 어머님이 걸어가신 길 따라 열심히 걸어가는 가운데, 복이 덩굴째 들어오는 한 해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1월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복음: 루카 2,16-21: “그 이름을 예수라 하였다.”
오늘은 새해의 첫날이자,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며, 동시에 교회가 정한 세계 평화의 날이다. 전례의 중심은 늘 주 예수 그리스도이지만, 아들을 기억할 때 어머니를 함께 기억하는 것이 교회의 신앙이다. 교회는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분이 주시는 평화와 축복을 새해의 은총으로 청한다.
1. 성모 마리아와 평화의 신비
마리아와 평화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성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원수 된 것을 자기 몸으로 허무셨습니다.”(에페 2,14)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하느님 사이의 벽을 허무시어 평화의 주인이 되셨는데, 바로 그분이 마리아의 태중에서 인류를 위한 선물로 오셨다는 사실은 깊은 신비이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평화의 도구가 되셨고, 인류 구원과 평화를 잉태한 어머니로 기억된다.
성 암브로시오는 마리아를 묵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마리아 안에서 인류는 평화를 되찾았다. 그분은 하늘의 은총과 땅의 화해를 잉태하였다.”(De institutione virginis 14,88) 따라서 오늘 우리가 새해 첫날에 마리아를 기리는 것은 단순한 전통이 아니라, 평화의 근원 되신 그리스도께서 성모를 통하여 우리에게 오셨음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행위이다.
2. 복음: 목자들의 찬미와 평화
오늘 복음(루카 2,16-21)에서 목자들은 천사가 알려 준 대로 아기 예수를 보고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20절) 그들이 경험한 것은 단순한 아기의 탄생이 아니라, 구원과 평화의 현존이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리스도는 평화 자체이시다. 그분을 본 목자들은 평화를 본 것이며, 그 평화를 찬미하지 않을 수 없었다.”(Sermo 185, 1) 우리도 말씀을 믿고 따르는 목자들처럼,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날 때 찬미와 감사가 흘러나오며, 그 안에서 참된 평화를 맛볼 수 있다.
3. 할례와 이름: “예수, 야훼는 구원이시다.”
여드레째 되는 날, 아기 이름은 “예수”(히브리어 예슈아, “야훼는 구원이시다”)라 불렸다. 이는 그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이름이다. 또한 이날 아기 예수께서 할례를 받으심으로써 하느님 백성 공동체 안에 들어가셨다. “여인에게서 나셨다.”(갈라 4,4)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성자께서 인류와 온전히 하나가 되심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성 이레네오는 이를 묵상하며 이렇게 가르친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사람이 되셨고, 우리를 당신 안에서 새롭게 빚으셨다. 여인에게서 태어나심으로써 인간은 하느님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Adversus Haereses III, 18,1)
4. 평화와 생명: 성모의 모성에서 배우는 길
오늘은 세계 평화의 날이기도 하다. 성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1977년 평화의 날 메시지에서 이렇게 선언하였다. “진정 평화를 원한다면 생명을 보호하라. 인간 생명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신성하다.” 마리아의 모성은 생명과 평화를 위한 하느님의 선물이다. 따라서 생명을 거스르는 모든 행위, 낙태, 전쟁, 테러, 폭력은 평화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아들을 세상에 내어주심으로써 모든 모성이 본질적으로 타인을 위한 선물임을 보여주셨다.
5. 우리의 소명: “압바, 아버지!”
오늘 제2독서(갈라 4,4-7)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성령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압바,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말한다. 마리아가 말씀을 잉태하였듯, 우리도 삶 속에서 말씀을 잉태하고 낳는 소명을 받았다. 우리가 말씀을 실천할 때, 하늘나라는 우리 안에 현존하고, 우리를 통하여 이웃에게 흘러간다.
맺음말
오늘 새해 첫날을 맞아 우리는 성모 마리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한다. 그분이야말로 우리의 평화, 우리의 구원이시다. 마리아의 모성을 본받아 우리도 생명과 평화를 지키는 사람들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목자들처럼 찬미와 감사의 삶을 살고, 하느님의 말씀을 날마다 새롭게 잉태하며, 그분을 세상에 드러내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로써 올 한 해가 참된 평화와 기쁨, 구원의 은총으로 가득하기를 기도하자. 아멘.
전삼용 신부님_1월1일 [천주의 모친 성모 마리아 대축일]
루카 2, 16-21
세계 평화는 마음의 평화로부터
찬미 예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늘은 2026년의 첫날이자,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며, 교회는 이날을 '세계 평화의 날'로 지냅니다.
거창하게 세계 평화를 논하기 전에, 저는 오늘 한 사람을 살게 하는 힘, 그리고 그 힘이 어떻게 평화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제 어머니는 고아셨습니다.
키워준 가족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은 어머니를 식구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것이 얼마나 사무쳤던지, 어머니는 그들을 죽이고 당신도 죽으려 했다고 합니다.
바다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하려던 그 절체절명의 순간, 어머니를 붙잡은 것은 누군가의 손길이 아니라, 당신 내면에서 솟아오른 한마디 외침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죽으면, 고작 물고기 밥밖에 안 되지 않는가?' 어머니는 자신이 고작 물고기 먹이나 되려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심어주신 '자존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꿈을 꾸셨는데,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 나병 환자촌으로 가시는 모습을 보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답니다.
'저 사람들도 사는데, 너는 왜 못 사니?
너는 저들보다 귀하다.'
그 꿈이 어머니의 자존감을 끌어올려 주셨고, 어머니는 죽음 대신 삶을 선택 하셨습니다.
삶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돈도 명예도 아닌, 바로 '나는 가치 있는 존재'라는 자존감입니다.
그런데 형제자매 여러분, 이 자존감은 혼자 힘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존감(Self-esteem)은 스스로 높이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존재로부터 인정받을 때 생겨나는 선물입니다.
만약 사랑받지 못하고 스스로 자존감을 찾으려 하면 어떤 비극이 일어날까요?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에 나오는 괴물의 절규가 그 답을 줍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피조물은 태어나자마자 흉측하다는 이유로 창조주에게 버림받습니다.
그는 숲속을 헤매며 사람들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돌팔매질뿐이었습니다.
사랑받지 못한 괴물은 결국 잔혹한 살인귀가 되어 창조주에게 따집니다.
"나는 뼛속까지 외롭다.
나의 창조주여, 나를 행복하게 해 달라.
나를 사랑해 달라.
그러면 나는 다시 온순해질 것이다." 괴물이 악해서 평화가 깨진 것이 아닙니다.
사랑받지 못해 자존감이 바닥난 존재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파괴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자존감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그것을 자존감이 아니라 '자존심' 혹은 '교만'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나르키소스를 보십시오.
그는 타인의 사랑을 거부하고 연못에 비친 자기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에만 도취되었습니다.
"나는 너무 완벽해." 하지만 그 끝은 무엇입니까?
그는 물속의 자신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습니다. 타인, 특히 하느님이라는 거울 없이 스스로 만든
자존감은 결국 자기 파괴로 끝납니다.
인간은 철저하게 '받아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우크라이나의 '개 소녀' 옥사나 말라야의 실화는 이를 끔찍할 정도로 명확하게 증명합니다.
3살 때 알코올 중독 부모에게 버림받아 개집에서 5년 동안 개들과 함께 자란 소녀입니다.
발견 당시 그녀는 네 발로 뛰고 짖었으며 날고기를 먹었습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완벽한 인간이었지만, 자신을 '개'라고 여겼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나는 인간이다"라고 자존감을 세울 수 없습니다. 부모가 인간으로 대우해 주고 사랑해 줄 때만
인간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이 우리를 "너는 내 자녀다, 너는 신(神)을 닮았다"라고 대우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평생 흙으로 돌아갈 본능만 가진 동물처럼 살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모 마리아가 위대한 이유는, 하느님이 주시는 이 엄청난 자존감을
온전히 받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와서 "너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될 것이다"라고 했을 때, 마리아는 "감히 제가 어떻게..."라며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비천한 여종인 자신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신분
상승이었지만, 하느님이 주시는 것이기에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며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참된 겸손이자 최고의 자존감입니다.
교회 역사 속에 '네스토리우스'라는 총대주교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인간인 마리아가 하느님을 낳을 수 있느냐? 마리아는 그냥 인간 예수의 어머니일 뿐이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얼핏 보면 인간의 분수를 지키는 겸손한 말 같지만, 교회는 그를 에페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단죄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주장은 "하느님은 인간을 당신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없다"는 인본주의적 교만이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자신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다면,
그 인간을 향해서도 당신보다 높여주려는 마음, 당신과 같아지게 하려는 마음이 없으시겠습니까?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놀라운 말씀을 남겼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이유는, 인간이 하느님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다."(가톨릭 교리서 460항)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계획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요한 14,12)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 높은 자존감을 거부합니다. 마치 닭장에서 태어난 독수리 새끼가
"나는 하늘을 날 거야"라고 말하면, 닭들이 "감히 네가? 너는 닭이야! 주제를 알아라"며 쪼아대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도 "너희는 신이다"라는 시편 말씀을 인용하시며 인간의 존엄을 선포하셨지만, 사람들은 "네가 감히 하느님과 같아지려 하느냐"며 그분을 신성모독으로 죽였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세계 평화는 어디서 옵니까? 유엔의 회의장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려는 사람들, 즉 내가 내 힘으로 하느님처럼 높아지려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남을 깎아내리고, 더 많이 가지려 하고, 전쟁을 일으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하지만 성모님처럼 "하느님이 나를 당신의 어머니로, 당신의 자녀로 높여주셨다"는 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세상 것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이미 나는 하느님을 소유했기에, 땅의 것을 두고 다투지 않습니다.
오늘 1월 1일, 새해 첫날.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물고기 밥이나 짐승의 사료를 먹으며 낮은 자존감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 마리아처럼 하느님이 주시는 최상의 자존감을 입을 것인가.
"나는 하느님의 자녀다.
나는 하느님처럼 될 운명이다."
이 거룩한 자존감을 회복하십시오.
그때 비로소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고 우리 가정과 세상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아멘.
이병우 신부님_<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1.1.목) -세계 평화의 날-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2,19)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늘 복음(루카2,16-21)은 '천사가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말씀'과 '목자들이 아기 예수님을 뵙는 말씀'입니다.
'붉은 말'의 해인 '병오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인사 드립니다. 새해에는 주님 은총 안에서 그리고 성모님의 전구와 보호 아래에서 영과 육이 더 건강하시고, 소망하는 것들을 이루시기를 기원하면서 기도드립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주시리라."(민수6,24-26/ 아론의 축복)
새해 첫날인 오늘은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이심을 기념하는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의무 대축일'입니다.
'거룩한 미사'로 새해를 시작합시다!
새해에는 하느님의 어머니, 순명의 어머니, 우리 신앙의 모범이신 어머니를 더 본받아,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됩시다!
오늘은 또한 '세계 평화의 날'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Evangelli Gaudium)'에서 '평화'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평화는 힘의 불안한 균형으로 전쟁만 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질서, 더욱 완전한 정의를 인간 사이에 꽃피게 하는 질서를 따라 하루하루 노력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입니다."(219항)
이 지구에, 우리나라에, 우리 본당에, 우리 가정에,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가 넘쳐나기를...
어제 마산교구에 인사발령이 있었습니다.
새해에는 합천본당을 떠나 새로운 사목지에서 사목을 하게 되었습니다. '농어촌 사목과 가톨릭 우리농 사목'입니다. 관심이 많았던 사목입니다. 기쁘게 사목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 유딧8,10)
송영진 신부님_<“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
“천사들이 하늘로 떠나가자 목자들은 서로 말하였다.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그 일,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봅시다.’ 그리고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이름이었다(루카2,15-21).”
1) ‘천주의 성모’ 라는 호칭은, 원래 ‘예수님은 하느님’이라는
신앙고백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한 호칭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니, 어머니 마리아를 ‘하느님의(천주의)
어머니’ 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따라서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은 표현으로는
마리아의 축일이지만, 뜻으로는 예수님의 축일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라는 신앙을 고백하고
경축하는 축일입니다.>
2) 복음서 저자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서 하느님을 찬미했다고
전합니다(루카 2,13-14).
그런데 그 군대는 예수님을 경호하는 군대가 아니었습니다.
천사 군대는 ‘메시아 강생’에 대해서 하느님을 찬미했을
뿐이고, 예수님을 보호하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만일에 천사 군대가 아기 예수님을 호위하고 있었다면,
헤로데가 감히 예수님을 죽일 생각은 못했을 것입니다.>
구유에 누워 계시는 아기 예수님의 모습은,
하느님의 평화가 어떤 평화인지를 잘 나타냅니다.
권력도 없고 군대도 없고 재산도 없는, 글자 그대로
아무런 힘이 없는 갓난아기, 그러나 엄마의 사랑과 보호
속에서 두려움, 근심, 걱정, 슬픔 같은 것은 하나도 없이,
편안하고 고요하게 잠들어 있는 갓난아기의 모습은,
그 자체가 ‘하느님의 평화(천국의 평화)’입니다.
3) ‘수많은 하늘의 군대’ 라는 말에서,
‘겟세마니에서 있었던 일’이 연상됩니다.
“그때에 그들이 다가와 예수님께 손을 대어 그분을
붙잡았다. 그러자 예수님과 함께 있던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들고, 대사제의 종을 쳐서
그의 귀를 잘라 버렸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청할 수
없다고 생각하느냐? 청하기만 하면 당장에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을 내 곁에 세워 주실 것이다.
그러면 일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성경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마태 26,50ㄴ-54)”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군대가 없어서’(힘이 없어서)
당하신 일이 아니라, 당신이 스스로 당신의
목숨을 내주신 일입니다.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은 인간의 군대가 절대로
대적할 수 없는 ‘하느님의 군대’입니다.
천사 군대는 예수님의 수난 때에는 뒤로 물러서 있었지만,
종말의 심판 때에는 마귀들의 세력을
쳐부수게 됩니다(묵시 19,19-21).>
여기서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 라는 말씀을,
“십자가를 지는 이는 모두 십자가로 승리한다.”로,
또 “참 평화는 칼로 이룰 수 없고, 십자가로만
이루어진다.”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인류 역사에서,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던
제국들이 모두 어떻게 멸망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 라는 예수님 말씀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4) 예수님의 복음은 ‘평화의 복음’입니다(사도 10,36).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을(가르침을) 그대로 실행함으로써
‘참 평화’를 얻게 됩니다.
평화와 관련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요약하면,
“회개하여라. 용서하여라. 사랑하여라.”입니다.
진실한 회개와, 진심으로 실천하는 용서와 사랑은,
‘참 평화’를 얻어 누리는 방법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라도 없으면, ‘참 평화’도 없습니다.
이 말에 대해서, “정말로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냥 참고
용서해야 하는가? 힘이 없어서 당하기만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정의의 실현’은 왜 말하지 않는가?”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정의의 실현’에 대해서 바오로 사도는,
“스스로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 라고 권고합니다(로마 12,19.21).
‘선’과 ‘정의’가 없는 평화는 ‘거짓 평화’입니다.
참 평화는 ‘선’과 ‘정의’가 온전히
실현될 때에만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우리는 악을 물리쳐야 하고, 선과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데, 그 방법이 ‘사적인 복수’나 ‘악’이어서는 안 됩니다.
악으로 악을 물리칠 수는 없습니다.
‘회개, 용서, 사랑’은 우선 먼저
‘내 안에 있는 악’을 없애는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물론 실제 현실에서는 무척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이 많이 있고,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도 많이 생깁니다.
그래서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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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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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복많이 받으십시요 대구대교구 나기정다니엘신부의 이주일의 복음묵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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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완수
202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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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직 하느님 영광만을 드러내는 삶을 / 주님 공현 대축일 전 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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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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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분 말씀을 실천하는 믿음의 삶을 /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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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202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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