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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자) 2026년 3월 5일 (목)사순 제2주간 목요일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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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묵상 : 고통과 시련이 축복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이 있다면...... 2

187308 강만연 [fisherpeter] 스크랩 2026-01-10

 

모든 사람은 한평생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고통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보기엔 행복할 것 같은 사람 같지만 그 사람 속속 내막을 들여다보면 자기만의 고통이 다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이 행복해 보이는 이유는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그런 사람의 고통은 보지 않고 자기에겐 없고 그 사람에게만 있는 행복만 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럴 수도 있습니다. 가령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대단한 갑부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생활 자체가 일반인이 보기엔 모두가 다 행복한 삶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근데 실제 그들은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소박한 일반 시민이 누릴 수 있는 삶을 동경할 경우도 있습니다. 마치 이런 것입니다. 아주 맛있는 냄비우동이 있습니다. 일반 서민도 먹을 수 있고 또 갑부도 먹을 수 있습니다. 가난해서 냄비우동을 먹을 수도 있지만 충분히 아주 비싼 음식을 먹을 수도 있지만 옛날 추억이나 또 옛날 잊을 수 없는 맛 때문에 냄비우동이 생각나 먹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돈이 없어서 냄비우동을 먹어야 한다면 약간 비참한 느낌이 들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그냥 추억 때문에 먹는다면 그때도 과연 비참할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고통도 이런 관점에서 한번 달리 바라보면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 어떤 사람도 고통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힘든 고통의 시간 속에서 묵상한 게 있습니다. 지금의 고통의 시간이 그냥 고통의 시간만으로 흘러간다면 너무나도 애썩한 시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의 고통의 시간이 하느님의 축복으로 바꿀 수 있는 시간이 되기 위한 게 있다면 그게 과연 무엇일까 하는 묵상을 많이 해봤습니다. 나름 내린 결론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고통을 주신 것은 아니지만 만약 하느님께서 고통을 허락하셨다면 그 사람에게 말입니다. 만약 이런 경우라면 경우가 다를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기엔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고통을 통해 '겸손'을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통과 겸손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건 저의 작은 체험이라기보다는 어느날 막연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실제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직감으로 얻은 체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모습도 다양합니다. 

 

우리는 신앙인이기에 신앙인의 관점에서 고통을 재해석해보고자 합니다. 고통이 있게 되면 그 고통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또 자신에게서 실제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내부에서 찾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 후자보다는 전자가 더 많습니다. 외부에서 원인을 찾는 사람은 고통은 그저 고통으로 끝날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진지하게 생각했을 때 자신 내부에서 그 원인을 찾고 그 원인을 찾아서 해결책을 강구하려고 애써는 사람은 그 고통의 시간이 자신을 성화시키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전제조건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고통을 바라보는 마음 자세입니다. 그저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자신을 단련시키고 성화시키기 위한 거라는 사실을 먼저 깨닫는 것입니다. 그걸 알게 됐을 땐 그땐 그게 고통이 고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놀랍게도 고통스럽지만 그게 고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성적으로 인식을 하게 되면 그때 느끼는 그 고통은 인식을 하기 전에 느낀 고통과 인식 후에 느낀 고통과는 전혀 다르게 작용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걸 체험하게 되면 이 말씀이 확실히 와 닿을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고통과 시련이 축복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이 있다면 그건 고통을 바라보며 그 고통이 나를 단련시키는 단련제처럼 단순히 고통을 고통으로만 해석하지 않으려고 하는 자세를 가지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일어나는 고통도 쉽지만은 않지만 이렇게만 해석을 한다면 우리가 가는 신앙의 길에서 고통을 만난다고 해도 쉽게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면역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생각하려고 노력을 하게 되면 고통과 시련의 시간을 자신을 성화시키는 데 필요한 하느님의 축복이 서려 있는 시간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위인에게도 이와 같은 시간이 있었다는 건 성경이 또한 증명을 해 주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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