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게시판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자) 2026년 3월 5일 (목)사순 제2주간 목요일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가톨릭마당

sub_menu

나이만 먹어가는 무명의 노인네라는 말씀이 제 가슴을 먹먹하게 울립니다.

187544 강만연 [fisherpeter] 스크랩 2026-01-21

 

 

이틀 전에 쪽지 하나를 받았습니다. 굿뉴스를 통해서입니다. 이분은 1년쯤에 서로 한 번 쪽지를 주고받은 적이 있었고 이번에 또 한 번 있었습니다. 쪽지를 어떻게 무슨 사연으로 주고받았는지는 개인 프라이버시라 말씀을 드릴 수 없음을 양해바랍니다. 자매님이시다는 것만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번에 받은 쪽지는 1년 전에 받은 쪽지도 감동이었지만 이번에 받은 쪽지는 감동과 함께 제 가슴을 울립니다. 가슴을 울린다는 게 뭔가 아픔을 주고 해서 일어나는 그런 울음이 아니라 그 감동이 찐해서 그 감동에 취해 주체를 할 수 없을 만큼 떨렸기 때문입니다. 제 가슴에 아직도 그 여진이 계속 다가오고 있습니다. 당분간 계속 될 것 같습니다. 

 

만약 그분이 이 글을 보시면 약간은 당황스러워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1년 전 쪽지도 굿뉴스에서 활동하면서 받은 쪽지 중 가장 긴 글이었는데 이번에는 더 길었습니다. 저는 이분의 나이를 정확하게 잘 몰랐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상상을 한 나이는 평범한 주부 정도의 분으로 상상만 했습니다. 이번에는 숫자로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무명인 노인네라고 하는 표현을 쪽지에서 언급을 하신 것입니다. 조금 전에는 이 쪽지를 복사해서 제 개인 카톡으로 보내 애플워치에서도 볼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아이폰에서도 볼 수도 있지만 생각나면 언제 어디서든 보고 싶을 때 보려고요. 그 내용은 공개를 할 수 없지만 그 내용을 통해 제가 받은 감동의 물결은 나누고 싶습니다. 

 

그분이 이걸 보시면 왜 이게 감동이지 하고 의문이 드실 겁니다. 저는 먼저 이분이 아주 겸손하시다는 걸 글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억지로 가식으로 겸손하는 척하는 그런 위선적인 겸손이 전혀 없는 순수한 마음입니다. 문장에서 묻어나는 고결함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단어도 이쁜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걸 들어주시지 않으셨는데 그렇게 하신 것도 겸손 때문에 그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마지막 글을 마무리하시면서 사용하시는 표현은 마치 문학소녀와 같은 감성으로 절대자이신 하느님을 달리 표현하셨습니다. 

 

문학적으로 표현을 하셨던 것입니다. 단 한 줄로 표현하면 글에서 겸손과 영혼이 순결하신 것 같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런 느낌에다가 '나이만 먹어가는 무명의 노인네'라는 그 표현이 제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울컥합니다. 저는 지금부터 왜 이게 제 가슴을 울리는지 그 이유를 나누고 싶습니다. 사실 여기서 노인네라고 하는 표현만 놓고 보면 자매님의 연세를 정확하게 가늠하기 힘들긴 합니다. 요즘은 옛날과 달리 많이 젊으시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단순히 노인이라고 하는 표현에서 연세만 들어간다고 해 쓸쓸한 느낌이라 제 마음이 먹먹한 게 아닙니다. 무명이라는 단어를 통해 본인을 드러내시려고 하는 것 없이 이 자체로 자매님을 낮추신 것이고 여기다가 나이만 먹어간다고 하신 표현에서도 저는 이분의 마음이 무척 겸손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왤까요? 이분은 글에서 이렇게 표현하긴 했지만 제가 느끼는 감성은 이렇습니다. 

 

자신을 더더욱 낮추어 겸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마저도 겸손으로 낮추신 것입니다. 제가 왜 이걸 겸손이고 겸양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짐작이 되시는지요? 쪽지에서 나타난 전체 글 맥락과 표현을 보면 단순히 나이만 먹어가는 무명의 노인네의 글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표현이 담백하면서 격조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표현했다는 게 감동이었습니다. 저도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한없이 겸손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어떤 경우에는 겸손하지 못할 때도 있음을 고백합니다. 교만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고 단순한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할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저는 아직도 앞으로 더더욱 낮아지려고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이분의 쪽지를 여러 번 생각날 때마다 보면서 저도 이분처럼 겸손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마음에 간절한 소망을 품었습니다. 저는 오늘도 하느님께 기도를 이렇게 하고 싶습니다. 

 

"하느님, 쪽지를 통해 존함만 알고 있습니다. 세례명은 잘 모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름도 아시고 세례명도 아시지만 제가 자매님을 기도 중에 세례명 없이 기도를 올려드려도 그 자매님이 이 자매님이신 줄 꼭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요 하느님, 이름이 동명이인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가 지금 마음속에 생각하는 자매님이 이 자매님이라는 걸 꼭 기억해 주세요. 하느님." 국어적으로는 압존법 때문에 자매라고 해야 하는데 이 경우는 그 대상이 하느님이시고 또 특수한 경우라 이렇게 표현함도 양해바랍니다. 

 

하느님, 저도 이 자매님처럼 겸손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은총과 지혜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에게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오늘 오전에 올린 글이 있습니다. 그 글을 올리고 그 자매님의 영혼을 위해 연도를 하고 왔고 내일은 장례미사를 참례하고 올 생각입니다. 오늘 글에서도 유사한 표현을 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단순히 신앙생활이 종교생활이 되면 안 될 것입니다. 종교생활을 해서는 절대 영혼이 깨끗해질 수 없습니다. 종교생활이 아닌 신앙생활이 되어야 영혼을 깨끗하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앙생활은 단순한 신앙생활이 아니고 온전한 신앙으로 생활한 그런 신앙생활이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가기 위해 수도 없이 넘어지면서도 가곤 합니다. 넘어진다고 해서 좌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일어나 달려갑시다. 또 넘어지면 또 일어나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의 영혼은 아름다운 영혼으로 변화가 될 것입니다. 이걸 희망하고 같이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에 하늘나라에서 아름다운 영혼으로 만나 행복하게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복락을 함께 누렸으면 하는 희망 간절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나, 추가하겠습니다. 전하고자 하는 내용 중 빠진 내용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분은 제가 뵙지는 않았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습니다. 고결한 영혼을 가지신 분 같습니다. 근데 자매님은 아마도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큰 교만이라고 생각하셔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이건 어떤 사실 팩트를 근거로 해서 말씀을 드리는 건 아니지만 쪽지로 주고받은 내용에 나타난 정황과 표현을 유추해 짐작해봤을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 생활묵상글을 작성하면서 문득 묵상이 된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겸손이라는 건 경건한 신앙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기 쉽고 이게 고결하다고 표현하는 건 어색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사례를 통해 보면 사람이 겸손하면 그것도 그냥 겸손이 아니고 가장된 겸손은 더더욱 아니고 진정으로 지극히 겸손이 우러나는 사람은 그 영혼이 수정처럼 맑고 고결한 영혼으로 보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 308 1

추천  1 반대  0 신고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