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게시판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자) 2026년 3월 5일 (목)사순 제2주간 목요일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가톨릭마당

sub_menu

[연중 제3주간 수요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학자 기념]

187684 박영희 [corenelia] 스크랩 2026-01-28

[연중 제3주간 수요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학자 기념] 마르 4,1-20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어떤 이는 서른 배, 어떤 이는 예순 배, 어떤 이는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오늘 복음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각각의 구절이 어떤 의미인지는 예수님께서 이미 성경 본문 안에서 충분히 설명해주셨으니, 오늘은 ‘하느님과 나 사이의 거리’라는 관점으로 전체적인 맥락에서 살펴봅니다. 오늘의 제1독서는 다윗 임금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에 머무르시도록 그분의 집인 ‘성전’을 짓겠다고 하자, 하느님께서 그를 축복하시는 장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윗 임금에게 큰 은총과 복을 베푸시는 한편, 그에게서 한 집안을 즉 그의 이름이 대대로 전해지는 위대한 가문을 세워주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더 나아가 다윗의 자손들이 부족하여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그들에게서 당신 자애를 거두지 않으시겠다고, 그들을 ‘사랑의 매’로 훈육하시어 올바른 길로 이끄시며 끝까지 보살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 점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지요.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내 안에 받아들이고 따르고자 노력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축복하시고 올바른 길로 이끄십니다. 우리가 부족하여 실수나 잘못을 저질러도 우리에게서 당신 자비를 거두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주려고 오신 분이 사람들이 용서받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비유로 말씀하신다니, 그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렇게 말씀하신 건 예수님이 무섭고 차가운 분이어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그분 말씀을 ‘들을 귀’가 있는지를,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 말씀을 소중히 여기며 귀기울여 들을 마음이 있는지,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될 때까지 마음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길 인내가 있는지, 어떤 어려움과 고통이 따르더라도 그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할 의지가 있는지를 보시려는 것이지요. 그래야만 말씀의 씨앗이 내 마음에서 싹을 틔우고 자라 열매를 맺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는 예수님의 이 말씀이 우리를 갸웃거리게 만듭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어떤 이는 서른 배, 어떤 이는 예순 배, 어떤 이는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똑같이 하느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데 왜 사람마다 맺는 열매의 양이 다를까요? 하느님께서 우리를 차별대우 하시는 걸까요? 아니면 타고 난 능력의 차이는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태양계에 있는 행성들의 온도가 서로 다른 것은 태양이 각 행성을 차별하여 빛과 열을 다르게 내주어서가 아닙니다. 태양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만큼 에너지를 덜 받아서 그런 것이지요. 우리와 하느님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 말씀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신앙생활을 한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같지만, 하느님께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는가, 그분과 얼마나 깊은 친교를 맺고 있는가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요. 그 정도를 결정하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와의 거리를 점점 좁혀 완전히 일치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느님 말씀이 내 안에서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고 싶다면, 말씀을 머리로만 이해하려 들지 말고 이웃 형제 자매들에게 최선을 다해 사랑을 실천해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4 274 1

추천  4 반대  0 신고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