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묵상 : 성모님을 많이 많이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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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10 강만연 [fisherpeter] 스크랩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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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올린 글에서 어떤 분을 흠모해보신 적이 있는가 하는 내용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그 글에서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내용을 더 연결하면 너무 길어질 수 있어서 다시 글을 올려 내용을 전개하려고 했습니다. 그 글만 보시면 조금 이상한 점도 있을 겁니다. 왜 굳이 사람을 흠모하는 걸 마치 자랑이라도 하는 듯 이야기를 할까 하고 의아해하실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이렇게 설명을 드리고 싶습니다. 성모님을 많이 사랑하고 그냥 사랑하는 정도가 아니라 남자가 여자에게 순정을 바치듯이 그렇게 성모님을 사랑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눈치가 빠른 분은 이게 무슨 뜻인지 감이 오실 것입니다. 그냥 성모님을 직접 대상으로 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되지 왜 굳이 그렇게 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 겁니다. 그 이유를 지금부터 설명해드리겠습니다.
20년 전에 읽은 책에서 저는 힌트를 얻었습니다. 심리학 이론입니다.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 친자식처럼 과연 될 수 있을까 하는 논점에서 연구한 자료였던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결과가 있습니다. 쉽지 않은데 어떻게 하면 그게 가능한지 일단 먼저 결과를 전제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게 가능하려면 일단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 먼저 실제로 낳은 자식보다도 더 애정을 쏟으면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없으면 가슴으로 낳은 자식은 그냥 가슴으로 낳은 자식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 말은 결코 친자식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걸 이론이 아니라 현실에서 실제 간접 체험을 했습니다.
몇 년 전에 친구 어머니 부고가 왔습니다. 고등학교 친구이고 전체 동창회에서 온 것입니다. 이걸 관리하는 친구가 중학교 동창이기도 합니다. 제가 부고장을 문자로 본 후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전에 분명히 친구 모친상에 제가 갔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큰엄마였던 것입니다. 낳아준 어머니 말고 키워준 어머니였던 것입니다. 저도 친구 가정사이고 해서 자세하게 물어볼 수 없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친구가 언급한 내용을 보고 대략 짐작을 할 뿐이었습니다. 생모는 친구 돌 지나고 나서 그만 재가를 했던 모양입니다. 이런 사정을 보고 너무 딱한 나머지 어떻게 이분이 친구 엄마 노릇을 해 줬던 것입니다. 사실 친구는 중3 때 이분이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친구 집안에서는 친구의 정서를 위해서 거짓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친엄마는 친구 돌 지나서 그만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말입니다. 친엄마가 친구를 버렸다고 하면 심한 충격이 될 수 있어서 그랬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어느듯 친구가 스물여덟 됐을 때 우연히 생모가 친구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근 27년 만에 친구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때 친구 아버지는 이미 벌써 돌아가신 지 오래됐습니다. 자신이 친구 생모라는 것입니다. 친구는 이게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길러준 엄마 큰엄마에게 여쭤보고 실제 어떻게 된 것인지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돌아가신 게 아니고 재가를 해서 큰엄마가 자신을 길러줬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처음엔 친구가 혼란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생모를 받아들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고민을 했던 것입니다. 재가했으면 그냥 끝까지 친구에게 나타나지 않아야 친구를 위해서도 좋은 일인데 그렇게 하지 못할 일이 있었습니다. 생모는 그당시 이혼을 한 상태였고 재가한 곳에서는 딸만 둘인데 자신이 병이 있고 딸이 거둘 처지가 안 돼 친구한테 나타난 것입니다.
친구는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였지만 그래도 엄마가 불쌍했는지 그런 엄마를 돌봐드렸습니다. 그렇게 돌봐주면서 친구는 선을 확실히 그엇습니다. 핏줄로는 내 친엄마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 보살펴주는 건 그래도 낳아준 부모라 외면할 수 없어서 받아주는 거지 엄마로 인정할 수 없다고 확실히 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길러준 어머니께도 확실히 말했습니다. 자기 엄마는 길러준 엄마가 진짜 자기 엄마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사실 길러준 엄마는 친구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사실 생모가 나타났을 때 조금 불안해했습니다. 혹시 친구가 생모에게로 가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근데 자신을 진짜 엄마라고 생각한다고 하니 마음 한켠에는 감동이었을 겁니다. 그 말을 듣고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주체를 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걸 보면서 친구가 이분을 친모로 생각할 정도로 각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친엄마가 재가를 하고 안 하고가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길러준 엄마가 얼마나 친아들처럼 키웠는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친아들 이상으로 키웠다는 걸 알기 때문에 친구가 그런 결정을 했을 겁니다. 그래도 친구는 길러준 엄마를 생각해서 친엄마를 외면하려고 했는데 길러준 엄마가 생모를 받아들여 보살펴준 것입니다. 마음씨가 참 고운 분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연을 제가 천주교로 개종을 한 후 몇 년이 지난 시점에서 알게 된 친구의 가정사였던 것입니다. 저는 이때 모정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친구가 대단한 것은 자신이 길러준 엄마가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 후에 처음엔 방황 같은 걸 했지만 오히려 알기 전보다도 더 잘 어머니처럼 생각하고 지냈다는 사실입니다. 근 15년 가까이 길러줬고 또 한 번도 친엄마가 아니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잘 키워주셨다는 사실 때문에 누가 친아들도 아닌데 그렇게 해 줄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해보면 친구에게는 정말 감사한 분이기 때문에 친엄마로 여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제가 두 분의 발인 때 함께했는데 제 기억으로는 친모 발인 때는 그냥 슬픈 표정 정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근데 길러준 어머니 발인 때는 폭포수 같은 눈물을 흘리는 걸 봤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모정이라는 걸 생각해볼 때 길러준 모정이 정말 대단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렇습니다.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 사실을 안 후에도 오히려 친엄마처럼 생각했던 친구의 일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땐 제가 천주교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친구가 친엄마보다도 더 슬픈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길러준 엄마에 대한 사랑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때 당시 어떻게 하면 나도 내 영혼을 낳아주신 성모님을 이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을 해봤습니다. 방법이 있다면 그럼 어떤 방법이 있을까도 고민을 했습니다. 제가 나름 생각한 방법은 성모님을 아주 많이 항상 흠모하는 것입니다. 그냥 흠모를 한다고 해서 흠모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모님은 우리가 실제로 뵙고 해서 아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인지 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심리학의 이론을 적용한 것입니다. 실제 대상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어떤 간접적인 대상을 통해서 마치 성모님처럼은 아니지만 성모님이 여성의 이미지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어떤 여성분의 이미지를 통해 흠모를 하기만 한다면 그 열정, 에너지를 성모님을 향한 에너지로 방향만 바꾸면 성모님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저는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비록 세상의 여인이지만 제가 신앙 안에서도 흠모하면 그게 나중에 성모님을 사랑하는 데에 좋은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흠모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건 저만의 방법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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