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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자) 2026년 3월 1일 (일)사순 제2주일예수님의 얼굴은 해처럼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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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2 주일

188212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26-02-28

사순 시기는 단순히 나쁜 습관을 하나 끊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길을 반복해서 살아왔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오르십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모하십니다. 제자들은 그 장면을 보고 놀라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경험을 붙잡아 두지 말고, 다시 내려가 일상의 길을 걸으라고 하십니다. 변화는 산 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려온 뒤의 삶에서 증명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김유신 장군의 이야기를 떠올려 봅니다. 어느 날 김유신 장군의 말이 주인의 뜻과 달리 기생집으로 가 버립니다. 말이 나쁜 의도를 품어서가 아니라, 이전에 여러 번 다녔던 길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말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복된 길은 말의 몸에 새겨져 자동으로 작동합니다. 김유신은 그 모습을 보고 깨닫습니다. 문제는 말의 의지가 아니라, 이미 길든 경로였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는 말보다 훨씬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말보다 더 쉽게 길드는 걸 봅니다. 우리가 반복해서 접하는 말, 영상, 정보, 분노와 두려움의 언어들은 어느 순간 우리 안에서 자동으로 작동합니다. 요즘의 컴퓨터 알고리즘이 그렇습니다. 내가 무엇을 자주 클릭했는지, 무엇에 오래 머물렀는지에 따라 다음에 보여 줄 것이 결정됩니다. 알고리즘은 판단하지 않지만, 반복을 기억합니다. 김유신의 말이 길을 기억했듯, 알고리즘은 우리의 선택을 기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좋은 나무에서는 좋은 열매가 맺히고, 나쁜 나무에서는 나쁜 열매가 맺힌다.” 이 말씀은 도덕적인 훈계라기보다 삶의 구조에 대한 통찰입니다. 열매만 바꾸려고 애쓰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나무가 바뀌지 않으면 열매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갑니다. 입력이 바뀌지 않으면 출력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순 시기는 바로 이 나무를 바라보는 시간, 이 삶의 구조를 다시 묻는 시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셨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대화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천막 3개를 만들어서 함께 지내자고 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해석을 잘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한 것은 구약의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된 대로 수난을 통해서만 영광스러운 부활이 있음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베드로를 꾸짖으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 종교는 삶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종교는 삶의 길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삶을 해석하고, 삶의 길을 충실하게 따라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우리는 하느님한테서 왔으니, 하느님께로 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하느님께 가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오늘 제2독서는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다 함께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이 우리를 본보기로 삼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다른 이들도 눈여겨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키실 수도 있는 그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꿈은 해몽이 중요하듯이, 신앙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거룩한 변모는 제자들에게 한 번의 감동적인 체험을 주기 위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눈을 바꾸고, 생각의 틀을 바꾸고, 앞으로 걸어갈 길을 다시 설정해 주십니다. 십자가의 길을 앞두고 제자들이 낙심하지 않도록, 그분의 참된 모습을 미리 보여 주신 것입니다. 변모는 외형의 변화가 아니라, 방향의 변화입니다.

 

이 지점에서 성서를 읽는 세 가지 길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는 문자 그대로 읽는 방법입니다. 대부분의 성서 말씀은 문자 그대로 읽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성경 본문을 아무 비판 없이 문자 그대로만 적용할 때, 오히려 반인간적이고 반인륜적인 결론에 이를 위험도 있습니다. 둘째는 문학적 의미로 읽는 방법입니다. 역사비평을 통해 성경 저자의 집필 동기와 신학 사상, 그리고 그 시대의 문화적 한계와 약점을 함께 살펴볼 때, 우리는 근본주의적인 해석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셋째는 영적인 의미로 읽는 방법입니다. 거룩한 독서를 통해,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 말씀이 오늘 나의 삶, 오늘 우리의 공동체에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묻게 됩니다.

 

이 세 가지 길이 함께 갈 때, 성경은 과거의 문헌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오늘의 독자 또한 말씀이 가리키는 길을 살아가는 증인이 됩니다. 그렇게 할 때 성경 말씀은 개인과 공동체 안에서 살아 있는 말씀이 되고, 어둠을 밝히는 구원의 말씀이 됩니다. 사순 시기, 우리는 어떤 열매를 맺기를 바라기보다는, 어떤 나무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도록 초대받고 있습니다. “주님, 저희가 익숙해서 따라가던 길을 멈추고 말씀 안에서 새로운 길을 선택할 용기를 주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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