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 제2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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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46 박영희 [corenelia] 스크랩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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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2주일 가해] 마태 17,1-9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좋은 것을 보면 갖고 싶고, 아름다운 장소를 보면 거기에 오래도록 머무르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에게는 ‘하느님 나라’가, ‘구원’이 바로 그런 대상이지요. 그러나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어버리기 마련입니다. 노력과 희생 없이 너무 쉽게 얻으려고 들면 그 ‘본질’을 보지 못하고 겉으로 보이는 피상적인 부분에만 집착하다 길을 잃게 되는 겁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당신의 뒤를 따라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라야 한다’고… 그러니 하느님 나라에 영원히 머무르며 참된 행복을 누리고 싶다면 탐욕과 재물로 세상에 부실하게 지은 초막을 헐어버리고 하느님 나라를 향해 길을 떠나야 합니다. 수고와 땀, 희생과 정성이라는 단단한 반석 위에 참된 믿음의 집을 지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참으로 구원받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봉독되는 성경 말씀은 우리가 걷는 신앙의 길이 ‘어떤’ 길이며, ‘어떻게’ 가야 하는 길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먼저 제1독서인 창세기에서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납’니다. ‘우르’라는 번성한 도시에 자리를 잡고 친족들과 함께 부유하고 안정된 삶을 누리던 그에게 하느님은 ‘아버지의 집을 떠나 당신이 보여주실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시지요. 아브람은 모든 것이 넉넉하게 갖춰진 편안하고 안정된 상황에서 벗어나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어떤 위험과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야 하는 너무나 어려운 도전에 직면하게 된 겁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하느님의 명령에 매우 단순하도도 명확하게 반응합니다. 준비할 시간을 달라고 지체하거나, 왜 거기로 가야 하느냐고 이유를 묻지 않고 즉시 하느님께서 이르신 대로 따른 것이지요. 그런 그의 순명을 통해 아브람을 큰 민족이 되게 하고 그에게 복을 내리며 그의 이름을 널리 떨치게 하시려는, 그렇게 당신 영광을 온 세상에 드러내시려는 하느님의 구원 의지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한편,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만 따로 데리고 길을 떠나 높은 산에 오르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 모습이 거룩하게 변하신 채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시지요. 모세는 하느님의 명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선구자입니다. 엘리야는 ‘바알’이라는 우상숭배에 빠져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께 대한 참된 믿음으로 돌아가게 한 예언자입니다. 이 두 인물의 공통점은 하느님의 백성을 올바른 길로, 참된 행복의 길로 인도했다는 점과 그 과정에서 많은 고초를 겪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신다는 것은 예수님도 비슷한 길을 걷게 된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영광스럽게 변모한 모습을 보여주심으로써 그분께서 겪으시게 될 십자가 수난과 죽음이 결국 부활이라는 영광으로 이어진다는 희망을 보여주시지요. 우리가 당신의 뒤를 따르는 과정에서 고통과 시련을 겪게 되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힘을 주시려는 예수님의 사랑이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런 예수님의 진심을 헤아리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거룩함에만 집착합니다. 그는 그전에도 이미 예수님께서 많은 고난을 겪고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셔야 한다는 말씀을 거부했던 적이 있지요. 좋은 결과는 얻으려고 하면서 과정은 생략하려고, 주님을 등에 업고 영광은 누리려고 하면서 그분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지는 않으려고 했던 겁니다. 그랬기에 그는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상황에 안주하려고 듭니다. 예수님께서 왜 자기들만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셔서 거룩하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셨는지,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는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당장 자기 눈에 ‘좋아 보이는’ 것만 취하려고 드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주님과 온전히 일치될 수도, 그분의 뒤를 따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을 데리고 ‘산 아래’로 내려가십니다. 애초에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오르신 이유가 그들을 힘들고 괴로운 현실에서 ‘도피’시키신 게 아니라, 그 현실 속에서도 구원에 대한 ‘희망’을 갖고 당신께 대한 굳건한 ‘믿음’을 지키기를 바라셔서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같은 것을 바라십니다. 전례가 주는 거룩하고 좋은 느낌에만 머무르려고 하지 말고, 내가 주님을 만나 느낀 그 기쁨을, 내가 신앙생활을 하며 발견한 그 희망을 행동과 삶으로 온 세상에 드러내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삶으로 하느님을 닮은 거룩한 자녀로 변화해가는 ‘변모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 그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빛나는 구름 속에서 들려왔던 이 가르침을 통해서 말이지요. “이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이 말씀을 통해 하느님은 ‘당신으로부터 사랑받는 아들’이라는 예수님의 신원을 분명히 확인해주시면서,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통해 드러나는 당신 뜻에 순명하면 우리 또한 당신으로부터 사랑받는 자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십니다. 단,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건 그저 귀로 듣는 것을 가리키는 게 아니지요. 자녀가 부모의 말을 행동으로 따라야 비로소 부모님 말씀을 제대로 들었다고 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해야 그 말씀을 제대로 들었다고 할 수 있으며, 우리가 제대로 들은 그 말씀이 우리를 하느님 자녀다운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는 겁니다. 그러니 주님 말씀에 담긴 힘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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