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6.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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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51 김중애 [ji5321] 스크랩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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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2일
사순 제2주간 월요일
누군가의 행동에 화가 날 때는
한시라도 빠르게 생각을 정화해서
상대를 용서해야 합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해서 말입니다. 단순히
마음이나 기분 때문이 아닙니다.
미국의 어느 연구에 따르면,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상대의
불행을 바라는 사람은 몸에
스트레스 물질이 늘어나서
면역력이 떨어지고, 인지 기능에문제가 생겼다고 합니다.
분노와 적대감을 느끼면 심장병에
걸릴 위험이 크게 올라간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미움과 원한을
품으면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온다는
옛말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셈입니다.
그에 반해 상대의 안녕을 바라는
사람은 행복감을 얻을 수 있는
물질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때로는 용서하기 힘든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용서하기 위해
노력할수록 더 자신이 힘들어집니다.
‘그 사람은 절대 용서 못 해’라는
마음을 지우지 못하는 자기가
미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미워해서는 안 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하면 될까요? 오히려 더 부정적
기억만 남으면서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집중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불충에도 불구하고, 해를 비춰
주시고 비를 내려주시는 자비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마음에 담고
그 마음에 머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라고 말씀하십니다. 착하게만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또 세상의 정의만
따르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하느님 방식으로 사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남을 심판하지
마라.”, “남을 단죄하지 마라.”
라고 하십니다. 이는 나의 이웃을
규정하고 날인 찍어서 관계를 닫아
버리는 태도로,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교만에서 나오는 행동
이기에 강하게 금지하시는 것입니다.
대신 “용서하여라.”, “주어라.”라고
하십니다. 용서하고 주는 행동은
사람과의 관계를 다시 열고 생명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남만을 위한 것이 될까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루카 6,38) 우리가 세상을 어떤
기준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자기
삶의 그릇을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를 본받아서
자비를 베풀면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가 쏟아진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주는 그 어떤 선물보다
큰 선물을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 받게 됩니다.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에 있을까요?
♡오늘의 명언♡
문제를 직면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지는 않는다.그러나 직면하지
않고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
(제임스 볼드윈)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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