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명우 신부님_송영진 신부님_3월 2일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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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58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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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자비로운 사람
마태오 복음의 ‘산상설교’와(마태 5-7장) 유사한 내용이 루카 복음에서도 확인되는데(루카 6,17-49), 예수님께서 이를 평지에서 설파하셨다는(루카 6,17) 점을 강조하여 ‘평지설교’라고 부릅니다. 이 두 설교는 구조나 내용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으나, 차이점도 적지 않습니다. 아마도 두 복음서 저자는 같은 자료를 근거로 이 두 설교를 구성했을 것이며, 같은 자료를 사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러저러한 차이점을 보이는 것은, 두 저자의 독자성이나 그들이 속해 있던 공동체의 환경과 상황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두 설교를 비교해보면, 산상설교가 영적이며 내면적인 면을 치중한 반면, 평지설교는 외부적이고 사회적인 현실을 중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두 복음저자가 속해 있던 공동체는 당대의 현실 속에서 정체성의 위기를 느꼈을 것이며, 이러한 위기를 주님의 말씀으로 헤쳐나가고자 했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마태오는 유다계 그리스도인으로서 율법에 대한 지대한 관심 등 유다 색채가 짙을 수밖에 없었고, 루카는 그리스계 그리스도인으로서 (구약)성경을 모르고 있던 이방인들을 위해 보다 폭넓은 복음의 메시지, 그 가운데서도 ‘자비와 용서의 삶’을 전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하는 말씀으로 열립니다. 루카 복음에서만 발견되는 이 문구는, 마치 마태오 복음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하는 구절처럼, 복음서는 물론 성경 전체에 꼭 한 번 언급되며, 동시에 루카 복음의 메시지를 요약해 줍니다. 이어서 ‘자비로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소개합니다. ‘남을 판단하지 않는 사람’, ‘남을 단죄하지 않는 사람’, ‘용서하는 사람’, ‘베푸는 사람’입니다. 물론 이러한 자질을 갖추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으나, 쉽지 않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포기하거나 체념해 버리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은혜로운 적절한 기회가 찾아와도 지나쳐 버리거나 놓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되는 더욱 큰 이유는 자비로운 하느님으로부터 우리는 늘 그러한 은혜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상에서의 시간 동안, 심판과 단죄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용서와 베풂이라는 놀라운 은총의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자비하신 하느님의 자녀 됨을 드러내 보이는 길이 남을 심판하지 않고, 단죄하지 않고, 용서하고, 베푸는 일이라면, 힘들고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그 길을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힘과 용기를 주실 것이며, 힘든 그만큼 보람도 기쁨도 클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의 자녀들 또는 영적인 자녀들이 나를 보고 자비하신 하느님의 모습을 배워나간다면,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우리 품에 담아 주실 것입니다!” 심판과 단죄를 멀리하고, 용서와 베풂을 즐기는 뜻깊은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사순 제2주간 월요일
복음: 루카 6,36-38: 남을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라는 초대이다. 자비는 하느님의 가장 고유한 속성이다. 성 그레고리오는 자비를 이렇게 정의한다. “자비란 타인의 비참함을 우리 마음 안에서 함께 아파하는 것이다.”(Moralia in Iob 10,30)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이 자비를 세상 속에서 드러내야 한다.
예수님께서 “남을 심판하지 마라.”(37절)라고 하신 말씀은 단순히 잘못을 눈감아주라는 뜻이 아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주석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심판하지 말라는 것은 결코 죄를 책망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업신여기며 교만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다.”(Homilia in Matthaeum 23,2) 우리는 형제의 잘못을 고쳐 주되, 교만한 심판자가 아니라, 사랑의 훈계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37-38절)라고 하신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기도와 자선, 용서를 연결하며 이렇게 말한다. “기도에는 두 날개가 있다. 자선과 용서다. 이 두 날개로 기도는 하늘로 날아오른다.”(Enarrationes in Psalmos 85,7) 용서와 자선은 단순히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를 하느님 앞에 올려 보내는 힘이 된다.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용서는 하느님 사랑의 신비에 깊이 참여하는 것이며, 우리가 이 사랑을 나누는 만큼 하느님께도 용서받는다.”(2840항)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의 얼굴”(Misericordiae Vultus)에서 말한다. “용서는 하느님 마음의 가장 뚜렷한 표징이다.”(9항) 따라서 용서는 단순히 도덕적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의 본성을 드러내는 성사적 증거이다.
사순 시기는 우리가 받은 자비를 세상에 흘려보내는 때이다. 우리는 미움과 보복의 유혹을 버리고, 하느님의 자녀답게 용서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의 곡간이 되어, 가진 것을 나누고 베풀어야 한다. 우리는 자비로우신 아버지를 닮아, 사랑의 얼굴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주님께서는 약속하신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38절)
사순 시기, 우리의 기도가 하늘에 닿기를 원한다면, 용서와 자선이라는 두 날개를 펼쳐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참으로 자비로운 아버지를 닮은 자녀가 되고, 주님의 파스카 신비에 참여하는 은총을 풍성히 누리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7)
이병우 신부님_제목 <사순 제2주간 월요일>
<사순 제2주간 월요일>(3.2)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루카6,38ㄷ)
'단순하게 믿고 충실하게 따라가자!'
오늘 복음(루카6,36-38)은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는 말씀과 '남을 심판하지 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남을 심판하지 말고, 남을 단죄하지 말고, 용서하라고, 주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내가 심판받지 않고, 단죄받지 않고, 또 용서를 받고,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루카6,38)
'사순시기'는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난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을 기억하고, 이 큰 사랑 안에 깊이 머물러 있는 시기'입니다. '나도 너에게 이 큰 사랑이 되려고 노력하는 아주 거룩한 시기'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함께 부활을 향해 나아가는 시기'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굳게 믿습니다. 그리고 삶의 자리에서 이 사랑이 되고자 노력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참으로 부족합니다.
오늘 독서(다니9,4ㄴ-10)에서 다니엘 예언자가 고백하고 있듯이, 우리는 이 큰 사랑 앞에서 한없이 부족한 죄인입니다. 다니엘 예언자의 이 고백은 이스라엘의 완전 패망 후 바빌론 유배지에서 주 하느님께 드리는 이스라엘의 고백입니다.
"저희는 모두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주 저희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다니9,8ㄴ-9)
우리가 이제와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길은 바로 이 '고백'이며, 이 고백을 들어주시는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6,36)
송영진 신부님_<열매를 얻기를 바란다면, 씨를 심어야 합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 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루카 6,36-38).”
1) 이 말씀은,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루카 6,31).” 라는 ‘황금률’을
구체적으로 풀이해 주신 것과 같은 말씀입니다.
‘황금률’에는 ‘네가 먼저’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것을
너희가 ‘먼저’ 남에게 해 주어라.”
남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도, 남을 용서하는 일도,
‘내가 먼저’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농부가 농사를 짓는 일과 같습니다.
‘많은 열매’를 얻기를 바란다면 ‘먼저’ 씨를 심어야 합니다.
자비와 용서를 실천하는 일은,
‘구원’이라는 열매를 얻기 위해서 씨를 심는 일입니다.
만일에 “저 사람이 하는 행동을 보고 나서 하겠다.”,
또는 “상대방이 먼저 하면 나도 하겠다.” 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즉 씨를 심는 일도 하지
않으면서 열매를 얻기를 바라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입니다.
2) ‘자비’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또는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그냥’ 베푸는 일입니다.
그래서 자비에 관한 말씀은,
루카복음 14장에 있는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루카 14,12ㄴ-14).”
이 말씀은, “보답을 받기를 바라면서, 보답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 초대하지 마라. 보답을 받기를 바라지 말고, 보답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도 모두 초대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그들이 너에게 보답을 못해도 하느님께서 보답하실
것이니 너는 복된 사람이 될 것이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
너도 의인으로 인정받고 다른 의인들과 함께 부활할 것이다.
그것이 네가 받게 될 보답이다.” 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그 보답에 비하면, 이쪽 세상에서 얻는
보답은 정말로 하찮은 것,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3) ‘심판’과 ‘용서’에 관한 말씀은,
마태오복음 18장에 있는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마태 18,32-35).”
그런데 주인이 종에게 한 말을 보면, “네가 용서받았으니
너도 용서하여라.”인데,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네가
용서받고 싶으면 너도 용서하여라.”입니다.
겉으로만 보면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모순은
아니고, “하느님께서 주신 ‘용서의 은총’은 이미 너에게
주어져 있다. 그 은총을 완전히 너의 것으로 만들려면,
네가 형제를 용서해야 한다.”로 해석됩니다.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이미 주신
‘용서의 은총’이 나에게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4) “남을 심판하지 마라.” 라는 말씀에서 ‘심판’은 하느님의
심판과 같은 일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다른 사람을
죄인 취급하면서, “너는 구원받지 못한다.” 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을 뜻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요한복음 7장에 있습니다.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요한 7,49).”
‘저주받은 자들’은, “구원받을 수 없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남의 구원 문제를 자기 마음대로 함부로 말하는 것은
하느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신성 모독죄입니다.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의 ‘심판’은
종말의 날에 이루어질 하느님의 심판을 뜻합니다.
5)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는, “받고 싶으면
주어라.”인데, “뿌린 대로 거둔다.”는 속담과 비슷합니다.
‘사랑’을 뿌리면 ‘사랑’을, ‘미움’을 뿌리면 ‘미움’을 얻습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을 보면, ‘주는 일’은 하지 않으면서,
즉 ‘이웃 사랑 실천’은 하지 않으면서,
‘하느님의 복’을 받기만을 바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이비 종교에서 그런 모습을 흔하게 봅니다.
헌금이든 무엇이든 재물이 종교 밖으로 나가지 않고(사랑
실천에 사용되지 않고) 종교의 재산 축적에만 사용된다면,
그 종교는 사이비 종교이고, 만일에 개인이 그렇게
한다면 사이비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알곡처럼 보이지만 알곡이 아닌 ‘쭉정이’가 ‘사이비’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그분께서는) ... 알곡은 당신의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버리실 것이다(루카 3,17).”>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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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이 유다처럼 죽을 처지에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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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70
김중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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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69
김중애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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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미사/2026년 3월 3일 화요일[(자) 사순 제2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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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68
김중애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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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연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3월 3일 사순 제2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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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석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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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사의 매일말씀여행(마태 23,1-12 / 사순 제2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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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66
한택규엘리사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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