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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자) 2026년 3월 6일 (금)사순 제2주간 금요일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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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신부님_2026년 가해 사순 제2주간 월요일 ? 미워하면 늑대처럼, 용서하면 강아지처럼

188261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3-02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사순 제 2주간 월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참 뼈아픈 숙제를 하나 내주십니다. "너희 아버지가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루카 6,36) 그리고 이어서 남을 심판하지 말고, 단죄하지 말고, 용서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속에서 열불이 납니다. "아니, 주님! 그 인간이 저한테 한 짓을 아시면서 어떻게 용서하라고 하십니까?"

 

사실 우리가 용서를 못 하는 이유는 도덕성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겁이 나서 그렇습니다. 저 인간을 용서했다가는 내가 손해 볼 것 같고, 또 무시당할 것 같은 생존의 두려움이 우리를 옹졸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진짜 자유가 무엇인지 한번 깊이 고민해봐야 합니다.

여러분, 집에서 키우는 개와 들판을 뛰어다니는 늑대 중 누가 더 자유로울까요? 척 보기엔 늑대가 자유로워 보이죠. 울타리도 없고, 목줄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생물학적인 수치를 보면 정반대입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늑대 연구가 짐 대처의 기록 『늑대의 지혜』를 보면, 무리의 대장인 알파 늑대는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가장 높습니다. 왜일까요? 잠시도 쉴 틈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냥에 실패하면 굶어 죽어야 하고, 다른 영역의 늑대에게 물려 죽을까 봐 잠잘 때도 한쪽 눈을 뜨고 잡니다. 늑대는 자유로운 게 아니라 생존의 공포에 사로잡힌 노예일 뿐입니다.

반면, 주인 있는 개는 어떻습니까?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지만, 이 녀석들은 세상 편합니다. 먹이 걱정 없고, 천적이 나타나면 주인이 몽둥이 들고 나와서 지켜줍니다. 개가 누리는 그 평화와 자유는 주인의 '보호' 아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영성 생활도 똑같습니다. 용서는 하느님의 보호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는 비밀번호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고 미워한다는 건, 하느님께 이렇게 선언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 제 일에 참견 마세요. 제 원수는 제가 갚겠습니다. 저는 제 방식대로 제 자존심 지키며 살겠습니다!"

그렇게 선언하는 순간, 하느님은 존중의 의미로 뒤로 물러나십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그때부터 여러분은 광야의 늑대처럼 홀로 서야 합니다. 내 자존심 내가 지켜야 하고, 내 이익 내가 챙겨야 하니 잠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미움이라는 건 결국 하느님의 보호를 걷어차고 스스로 독박을 쓰는 미련한 짓입니다. 자신의 형제를 죽인 자녀를 받아들여 보호해주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공포에서 벗어나 진짜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은 그 해답이 용서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그 사랑만이 우리 생존을 완벽하게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용서로 얻는 이 '하느님의 보호'가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주는 실화가 있습니다. 바로 성녀 마리아 고레티를 살해했던 알렉산드로 세레넬리의 이야기입니다.

알렉산드로는 감옥에 갇힌 초기 3년 동안 그야말로 '미친 늑대'와 같았습니다. 자신을 단죄하는 세상을 저주했고, 면회 온 주교님께 침을 뱉으며 난동을 부렸습니다. 누구도 그를 도울 수 없었고, 그는 차가운 독방에서 분노와 공포에 질려 홀로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보호받지 못하는 늑대의 비참한 모습 그대로였죠.

그런데 기적이 일어납니다. 꿈속에서 마리아 고레티가 나타나 백합꽃을 건네며 그를 용서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순간 알렉산드로를 옭아매던 증오의 사슬이 풀렸습니다. 그가 먼저 용서를 받아들이고 자신도 세상을 용서하기 시작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27년의 형기를 마치고 나온 이 살인범을 세상은 외면했지만, 교회가 그를 품었습니다. 마리아 고레티의 어머니는 그를 아들로 받아들였고, 카푸친 수도회는 그를 수도원의 정원사로 받아들여 평생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는 죽기 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마리아가 나를 용서했고, 교회가 나를 지켜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드로는 증오 속에 홀로 서 있을 때는 가장 비참한 죄수였지만, 용서라는 관문을 통과해 하느님의 보호 아래 들어갔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습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늑대처럼 홀로 서서 평생 공포 속에 살 것인가, 아니면 용서라는 관문을 통과해서 하느님의 따뜻한 안방으로 들어갈 것인가. 용서하는 순간 우리는 하느님의 보호라는 보험에 가입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지키고 있는 집 안에서 아기는 더 이상 사자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진짜 자유이고 평화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교부의 말씀처럼, 우리 마음이 주님 안에서 쉬기까지는 결코 평온할 수 없습니다. 오늘 하루, 내 마음의 새장을 열고 미움이라는 밧줄을 끊어버립시다. 하느님의 보호라는 거대한 바다에 나를 내던질 때, 비로소 우리는 두려움 없는 참된 생명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내가 남에게 베푼 자비의 되만큼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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