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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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72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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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사랑의 마음이요 따뜻함입니다. 측은지심의 마음입니다. 스승의 마음입니다. 누구를 보던지 ?불쌍한 마음을 가지신 분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의 지도자·백성이라 지칭하며 강력하게 경고하십니다. 이는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이 극에 달했음을 의미합니다.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단순히 성전에 나가는 종교 의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면의 악한 마음과 실제 삶의 행실을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요구하십니다. 악행을 멈추고 선행을 배워라, 신앙은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악에서 돌아서서 선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배우고 실천하는 '움직임'임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사회적 공정'의 실천으로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선행'은 막연한 친절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대상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고아와 과부와 같은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피는 것이 곧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인간의 선택에서 시비를 가려보자는 일방적인 처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을 대화의 상대로 초대하시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완전한 정화는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깊은 죄조차 눈과 양털처럼 희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은, 인간의 노력보다 하느님의 용서가 더 크다는 것입니다.
축복과 심판의 갈림길은 순종하면 좋은 생명을 얻고, 거부하면 파멸을 맞이할 것이라는 선택권을 주시며 결단을 촉구하십니다. 인간의 길은 자명합니다. 선택의 순간에 "예"할 것은 "예"라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 답을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의 마음은 겸손히 나를 낮추고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모습입니다. 입보다는 경청 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입과 귀도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듣고 다음에 입을 여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리사이의 행실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바리사이는 입이 먼저입니다. 그 다음이 귀가 나옵니다. 귀는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입을 향해 있습니다. 인간이 내 말을 잘 듣고 실천하는가 ? 라는 관리자의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느님의 음성, 영적인 음성에는 닫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락한 것입니다. 귀? 경청? 이것은 영적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음성은 영적인 것을 말하고 수덕을 쌓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세속이거나 성당이거나 할 것 없이 경청하는 마음, 영적으로 듣는 마음이 정말로 중요하고 그분과 합일의 과정, 영적으로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여기서 순종의 행실은 나는 죽고 영적으로 주님이 내 안에서 살아가시는 것입니다. 순종은 죽음과 같습니다. 육적인 나는 죽고 영적인 나가 내 안에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것의 전형적인 모습이 예수님의 죽음이요. 온전히 육신이 죽고 나서 아무 생명이 없는 육신안으로 하느님의 영혼이 들어오셔서 참된 하느님의 모습으로 변해있는 모습이 부활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예식을 한번은 격었습니다. 세례예식, 육적인 인간은 죽고 영적으로 내가 새로 태어난다는 것. 이것이 세례 예식과 같은 맥락입니다. 순종의 참 의미는 육신의 죽음입니다. 그 죽음으로써 하느님은 나를 영적으로 다시 살리십니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온전히 내가 죽으면 주님이 내 안에 임하셔서 활동하십니다. 주여 임하소.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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