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영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_3월 3일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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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73 최원석 [wsjesus] 스크랩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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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믿는 대로 실천하는 삶
오늘 복음 말씀은 마태오 복음 23장 가운데 앞부분으로서, 예수님은 이 장 전체에서 유다교 핵심 구성원들인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겨냥한 비난의 말씀들, 나아가 저주의 말씀들을 쏟아내십니다. 아마도 복음저자는 자신이 속해 있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유다교와 논쟁을 벌이는 데에 유용한 예수님의 말씀들을 한데 모아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로 소개합니다.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 최고의 입법자인 모세의 합법적인 후계자이며 해설자임을 의미하며, 따라서 예수님은 이들의 존재와 권위를 인정하고 계시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문제는 행실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예수님은 이어서 따라서 하지 말아야 할 그들의 못난 행실을 고발하십니다.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며, 무거운 짐, 곧 지키기 어려운 법 규정들을 다른 사람들 어깨 위에 올려놓고서는 정작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 못난 모습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은 그들의 행위 일체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으로 단죄하십니다. 탈출 13,1-10; 13,11-16; 신명 6,4-9; 11,13-21과 같은 율법의 핵심이 되는 성경 구절을 적은 양피지를 넣은 조그마한 ‘성구갑’과, 하느님의 계명들을 상기시키는 자주색 실 한 가닥이 끼여 있는 ‘옷자락 술’은 모든 유다교도 신자가 지니고 다녔지만, 바리사이들이 오직 드러내 보이려는 편협한 신앙심에서 이를 넓고 길게 만들어 달고 다니던 모습을 질타하십니다. 그러니 ‘윗자리’, ‘높은 자리’, ‘인사받기’, ‘스승이라 불리기’는 당연히 자신들의 몫이라 생각했습니다. 스승이라는 호칭에 대해서는 말씀을 좀 더 덧붙이십니다. ‘스승’은 ‘라삐’를 번역한 표현으로서, 현역 율법 학자를 가리키는 호칭이었으며, ‘아버지’는 과거에 존경받던 스승을 가리키는 호칭으로 여겨집니다. 여기서 ‘스승’과 ‘아버지’ 호칭 사용 금지는, 스승 또는 교리 교사의 직무 수행을 금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기에 앞서 하느님의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의 말씀 실천에 모범을 보여야 함을 일깨우시는 일종의 훈시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 말씀 실천에는 모두 다 ‘형제’라는 말씀입니다. 나아가 형제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섬김을 받으러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당신의 신원을 송두리째 드러내시는 말씀이며, 주님을 따르는 신앙인이라면 그대로 가슴에 새기고 실천에 옮겨야 할 말씀입니다.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 신앙생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는 신앙생활에는 권위가 있을 수 없으며, 기쁨과 보람 또한 함께할 수 없습니다. 말한 대로 행동하고, 아는 대로 행동하는 자세를 뛰어넘어, 우리 신앙인은 믿는 대로 행동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만나는 모든 사람과 신앙의 맛과 기쁨을 나누어, 신앙이 무엇인지를 그들이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그럼으로써 그들을 섬기는, 소중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시며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3절)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주님은 가르침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신다. 문제는 그 가르침이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대목을 해설하며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은 그들의 가르침은 받아들이게 하시면서, 그들의 행실은 따르지 말라 하신다. 진리의 말씀은 가치 있지만, 그들의 삶은 부패했기 때문이다.”(Homilia in Matthaeum 72,3) 말과 행동의 괴리는 신앙을 공허하게 만들고, 지도자의 권위를 무너뜨린다.
율법 학자들은 백성들에게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우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도와줄 마음이 없었다(4절).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런 태도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라고 가르쳤지만, 그 법의 정신인 사랑은 버렸다.”(Sermo 46,18) 사랑 없는 율법은 억압이 되고, 자비 없는 가르침은 무거운 짐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30)라고 하셨다. 그분이 지우시는 짐은 사랑과 자비이기에 우리를 해방시킨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11절). 성 그레고리오는 이렇게 말한다. “지배하려는 마음이 클수록 하느님 나라에서 작아진다. 그러나 섬김을 원할수록 참된 권위가 된다.”(Homiliae in Evangelia I,17,1) 교회의 권위는 세상의 권력과 달리, 지배가 아니라, 봉사에서 온다. 교회 안에서 직무는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며, 높아지려는 자리는 낮아져 섬기는 자리로 변화되어야 한다.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위대함은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섬김과 자기 비움으로 나타난다.”(786항)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복음의 기쁨”에서 강조한다. “권위는 섬김이 될 때만 진정한 권위가 된다.”(93항)
사순절은 우리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도록 정화하는 때다. 우리는 말로만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삶으로 복음을 증언해야 한다. 율법 학자들의 허영을 피하고, 겸손한 봉사 안에서 참된 권위를 드러내야 한다. 지도자뿐 아니라, 모든 신앙인은 서로의 짐을 나누어지며(갈라 6,2),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해야 한다(로마 13,10). 우리가 진정 낮아져 섬길 때 세상은 우리 안에서 참된 스승이신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23,11)
이병우 신부님_"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마태23,3ㄷ)
'거짓(위선)의 옷을 치워버리자!'
오늘 복음(마태23,1-12)은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그들의 위선에 대한 지적이자 꾸짖음'입니다.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마태23,2-3)
이어서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그들의 모습과 남들에게 드러내려는 모습과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하는 그들의 모습을 지적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마태23,11-12)
'위선'은 겉과 속이 다른 것입니다.
위선은 진실하게 살지 못하는 삶입니다.
위선은 예수님과 다른 모습으로 사는 것입니다.
위선은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자기 멋대로, 자기 좋을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나도 위선자'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보다 더 충실하지 못한 위선자입니다.
옳은 말은 많이 하면서도, 입으로 한 말을 보다 더 살아내지 못하는 위선자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위선의 옷, 거짓의 옷을 벗어버리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삶 그 자체'입니다.
오늘 독서(이사1,10.16-20)에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 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을 치워버려라.
오너라, 우리 시비를 가려보자. 너희의 죄가 진홍빛 같아도 눈 같이 희어지고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 같이 되리라."(이사1,16.18)
주님이신 예수님께로 나아갑시다!
그래서 위선을 치워버립시다!
거짓의 옷을 벗어버리고, 진실의 옷을 입고 다시 부활합시다!
송영진 신부님_<위선자들이 위선으로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마태 23,2-12).”
1) 이 말씀은, “위선자가 되지 마라.” 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위선자들이 ‘위선’으로 얻는 것은 무엇일까?”
자기 만족감, 사람들의 존경, 그리고 물질적인 이익 같은
것일 텐데, 하느님으로부터 얻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위선으로 얻는 것은 모두 부질없는 것,
허망한 것입니다.
하느님 없이는 모든 것이 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거짓 예언자들’에 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물 없는 샘이며 폭풍에 밀려가 버리는
안개입니다. 그들에게는 짙은 암흑이 마련되어
있을 따름입니다. 그들은 실없이 큰소리치면서,
그릇된 생활을 하는 자들에게서 갓 빠져나온
이들을 육체의 방탕한 욕망으로 유혹합니다. 그들은
그 사람들에게 자유를 약속하지만 자신들은 멸망의 종이
되어 있습니다. 굴복을 당한 사람은 굴복시킨 쪽의
종이 되기 때문입니다(2베드 2,17-19).”
이 말은, ‘거짓 예언자들’에 관해서 한 말이지만,
‘위선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2) 위선자들의 실제 삶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들의 겉모습만
보면서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존경하는 일이 많은데,
그런 경우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루카 6,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이라는 말씀에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헤로데의 이야기가 연상됩니다.
“정해진 날에 헤로데는 화려한 임금 복장을 하고 연단에
앉아 그들에게 연설을 하였다. 그때에 군중이 ‘저것은 신의
목소리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다.’ 하고 외쳤다. 그러자
즉시 주님의 천사가 헤로데를 내리쳤다. 그가 그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벌레들에게 먹혀 숨을 거두었다(사도 12,21-23).”
<헤로데는 연설을 잘했던 것 같은데, 그 자신의 위선과
교만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재능이 되어버렸습니다.>
3) 바오로 사도의 일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군중은 바오로가 한 일을 보고 리카오니아 말로 목소리를
높여, ‘신들이 사람 모습을 하고 우리에게 내려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바르나바를 제우스라 부르고
바오로를 헤르메스라 불렀는데, 바오로가 주로 말하였기
때문이다. 도시 앞에 있는 제우스 신전의 사제는
황소 몇 마리와 화환을 문으로 가지고 와서, 군중과 함께
제물을 바치려고 하였다. 바르나바와 바오로 두 사도는
그 말을 듣고서 자기들의 옷을 찢고 군중 속으로
뛰어들어 소리를 지르며 말하였다. ‘여러분, 왜 이런 짓을
하십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만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할 따름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헛된
것들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또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려는 것입니다.’(사도 14,11-15)”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라는 사도들의 말은,
“너희는 모두 형제다.” 라는 예수님 말씀에 연결됩니다.
남들보다 먼저, 그리고 남들보다 더 많이 성경과 교리를
배웠다고 해서, 남들보다 ‘위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4) 태어날 때부터 ‘위선자’인 사람도 없고, 태어날 때부터
교만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에 취해서, 또는 자기는 남들보다
잘났다는 착각에 빠져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위선자가 되고, 교만한 사람이 됩니다.
누구든지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꾸짖으신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도 처음부터
위선자였던 것은 아닐 것이고, 사람들의 존경에 취해서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성직자들과 수도자들도, 그리고 경건하고 훌륭한
신앙인이라고 칭찬을 받는 신자들도 모두 그렇게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이라는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 함정에 많이 빠지는데, 그렇게 되면
위선자가 된 줄도 모르는 채로 위선자로 살고, 자신이
교만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채로 교만하게 살면서,
자기 생각만 옳다고 믿어버리고, 남들을 가르치려고만 하고,
그러다가 결국 ‘하느님 없이’ 살게 되는, 겉은 멀쩡한데
속에는 아무것도 없는 ‘허수아비’ 같은 사람이 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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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승국 신부님_높은 자리!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 다 부질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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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근 신부님_* 오늘의 말씀(3/3) : 사순 제2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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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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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영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_3월 3일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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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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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72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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