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_송영진 신부님_3월 5일 묵
-
188310 최원석 [wsjesus] 스크랩 11:14
-
이병우 신부님_"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루카16,25)
'날마다 회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자!'
오늘 복음(루카16,19-31)은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들어 믿는 이들의 궁극적인 목적이요 희망인 '영원한 생명'과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 꼭 필요한 대전제인 '사랑 실천과 회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지금 여기에서와 저 세상에서의 부자와 거지 라자로의 처지가 완전 뒤바뀝니다. 이 세상에서 완전 풍요롭게 살았던 사람과 그런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한 삶을 살았던 불쌍한 거지의 삶이 저 세상에서는 완전히 뒤바뀝니다.
오늘 비유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16,13)는 말씀에 대한 확증입니다. 그리고 재물을 너와 나누지 않고 나만을 위한 남용이 된다면 이는 곧 멸망이요 죽음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의 목적'은 '살기 위해서'입니다.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에서와 그리고 죽음 저 너머에서 살기 위해서, 영원히 살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의 본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당신의 전부를 내어 놓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당신의 전부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었고, 이 뜻에 온전한 순종의 결과가 바로 '예수님의 부활 사건'입니다.
오늘 독서(예레16,19-31)의 말씀입니다.
"내가 바로 마음을 살피고 속을 떠보는 주님이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에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예레17,10)
예수님께로 돌아갑시다!
예수님의 모습으로 돌아갑시다!
예수님의 삶으로 돌아갑시다!
그래서 나도 인생이 역전되는 처지가 되고, 날마다 부활하고 마침내는 영원히 부활하는 처지가 될 수 있도록 '날마다 회개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조욱현 신부님_아브라함이 라자로를 품에 안고 있었다.
오늘 복음은 자주색 옷을 입고 호화롭게 살던 부자와 그의 대문 앞에서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라도 배를 채우려 했던 가난한 사람 라자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님의 말씀은 단순한 이야기나 도덕적 교훈이 아니라,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선택의 진지함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복음은 부자가 도둑질하거나 살인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의 잘못은 라자로의 곤궁을 보면서도 외면한 것이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꾸짖는다. “가난한 이를 돕지 않는 것은 단순한 인색함이 아니라, 그를 죽이는 죄이다. 굶주린 이를 방치하는 것은 살인과 다르지 않다.”(Homiliae in Lazarum, Hom. 2,5) 개들조차 라자로의 상처를 핥으며 그를 동정했지만, 부자는 그보다도 더 무자비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자비의 결핍, 곧 하느님의 마음을 닮지 못한 인간의 완고함이다.
아브라함은 부자에게 말한다.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놓여 있다.”(25-26절) 이 구렁은 하느님이 임의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삶이 만든 결과이다. 성 그레고리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자비를 거부하면, 스스로 심판을 준비하는 것이다. 지금 나누지 않은 것은 저세상에서 돌려받을 길이 없다.” (Homiliae in Evangelia, Hom. 40,3)
부자는 마지막으로 라자로를 자기 형제들에게 보내 달라고 청한다. 아브라함은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29절)라고 답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주석한다. “율법과 예언자들의 말씀을 외면한 자는, 설령 죽은 자가 부활하여 경고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Sermo 113,4) 실제로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지만, 많은 이들은 여전히 믿지 않았다. 신앙은 기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받아들이는 겸손한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너의 대문 앞 라자로는 누구인가?” 가족 안에서, 직장 안에서, 공동체 안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우리가 가진 재물과 시간, 재능을 통해 그들의 필요에 응답하고 있는가? 교리서도 이렇게 가르친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가지신다. …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은 하느님 나라의 증거이다.”(2443-2449항)
부자의 죄는 사치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랑의 부재였다. 라자로의 고통을 보고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순 시기는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고, 가진 것을 나누며, 자비의 삶으로 회개하는 때이다. 우리의 기도와 단식이 참되려면 반드시 자선과 함께 가야 할 것이다.
김건태 신부님_라자로와 함께하는 삶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바리사이들을 향합니다. 이들 바리사이를 대상으로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들려주신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이 이야기가 단순한 비유 이야기, 부자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사후 보상 이야기를 넘어, 바리사이들을 겨냥한 중요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 ‘부자’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마디로 호의호식했던 사람, 소유하고 있던 것을 마음껏 누리던 사람입니다. 물론 정당하게 번 재물이라면, 재물이나 재물 향유 자체가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짐작건대, 이 사람은 하느님과 대립관계에 있어 본 적도,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한 적도 없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다만 하느님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 ‘모세와 예언자들의 가르침’에 대해서 눈을 감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과 그것을 누리는 데 급급한 나머지, 하느님을 보지 못했고 도움이 필요했던 (‘하느님께서 도우시다’를 의미하는 이름인) 라자로를 지나쳐버렸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나아가, 지상에서의 삶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너무나도 자명한 진리까지 내다보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이 지경으로 이끈 것이 재물이었다면, 마땅히 그 굴레에서 벗어났어야 했는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느님께서 도우실 수밖에 없던 라자로를 살피는 일이었는데, 그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오늘 비유 이야기의 후반부는 모두 죽음 이후의 보상 문제를 주제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예수님이 진정 말씀하고자 하시는 바는 부자까지 포함한 모든 이의 구원입니다. 이 비유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모든 사람이, 그가 부자라면 더욱더 가지고 있는 것을 힘껏 활용하여, 이웃의 관계를 구원의 관계로 승화시킴으로써 신앙의 선조인 “아브라함의 곁에” 자리하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돋보이기 때문입니다.
지상에서의 편안한 삶이 사후에도 이어지리라 믿었던 부자와 달리, 가난한 라자로는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제1독서) 신앙 자세로 현세의 고된 삶을 극복해나감으로써 영원한 행복 속에 머뭅니다. 율법을 글자 그대로 준수하기만 하면 구원이 보장된다고 믿고 있던 바리사이들과 달리,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오로지 ‘하느님의 도우심’(=라자로)에 모든 것을 내맡기며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씀’에 따라 사는 삶, 늘 하느님을 뵙고 이웃을 살피는 삶으로 영원한 행복을 선물로 받게 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분’임이 다시 한번 선포됩니다.(마르 2,17 참조) 그러니 바리사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 앞에 의로운 사람은 없다.’ 하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일이며, 따라서 ‘구원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선물’임을 고백하는 일입니다.
세상과 인류 구원의 정점인 부활의 영광을 향하여, 오늘도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우리를 앞서 묵묵히 걸어가시는 주님의 뒤를 따라,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는 물론, 할 수 있다면 더 무겁게 보이는 이웃의 십자가를 조금이라도 나누어 짊어지고 걸어가는, 위대한 신앙인의 모습을 드러내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송영진 신부님_<“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루카 16,25-31)”
1) 여기서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라는 아브라함의 말은, “그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이미 알고 있으니, 그대로 실천하면
된다.” 라는 뜻입니다.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은 성경의 가르침을 뜻하고,
‘성경의 가르침’이라는 말은 ‘십계명’을 포함해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계명들과 가르침들을 뜻합니다.
아브라함의 말을 단순하게 표현하면, “신앙인으로서 당연히
실천해야 하는 기본적인 일들을 실천하면 된다.”입니다.
이 말에서 ‘낙타와 바늘구멍 이야기’에 나오는 부자와
예수님의 대화가 연상됩니다.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마태 19,16)”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마태 19,17).”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 왔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마태 19,20)”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
십계명을 잘 지키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예수님
말씀’과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잘 들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아브라함의 말’은, 사실상 ‘같은 가르침’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특별한 비결이나 비법 같은 것은 없습니다.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실천해야 하는
기본적인 계명들과 가르침들을 잘 실천하면 됩니다.
<신앙생활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생활입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은 누구든지
‘기본’만 잘해도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생활입니다.>
2)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라는 말은,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을 회개시키려면
어떤 특별하고 놀라운 기적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은, “기본적인 신앙생활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하고 놀라운 기적들을 보여 준다고 해도
다 소용없는 일이 될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기본적인 신앙생활은 하지 않으면서, 기적 같은 것이나
찾아서 몰려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또는 “예수님을 안 믿으려고 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부활도
안 믿는다. 그리고 그런 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다.”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3) ‘낙타와 바늘구멍 이야기’에 나오는 부자는
십계명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십계명 자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의 십계명 ‘실천’이 부족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주는 것’, 그것이
그의 ‘부족한 실천’을 ‘완전한 실천’으로 바꾸는 방법입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가 지옥에 가게 된
이유는,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는
아브라함의 말은, “너는 가난한 이들을 외면하고, 이기적으로
혼자서만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살았다.” 라는 뜻입니다.
그 ‘이기심’과 ‘사랑 없음’이 그의 죄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1코린 13,2).”, 즉 “사랑이
없으면 구원받지 못한다.” 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은,
바로 그런 자들을 겨냥해서 한 말입니다.
4)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라는 아브라함의
말과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 19,24).”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같은 가르침’입니다.
‘큰 구렁’과 ‘바늘구멍’은 부자들 자신들이 만든 것입니다.
자신의 부유함에 만족하면서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가난한 이들을 외면하고 무시하면서,
혼자서만 부유함을 누리며 즐기는 부자들......
저승에서의 ‘큰 구렁’은 이미 심판이 끝난 뒤의 일이기
때문에 아무도 바꾸지 못하지만, 이승에서의 ‘바늘구멍’은
아직 심판 전의 일이기 때문에, 회개하고 노력하면
누구든지 그 상황을 바꿀 수 있습니다.
좋은 예가 바로 ‘예리코의 세관장 자캐오’입니다.
자캐오는 부자였지만(루카 19,2), 회개하고 보속함으로써
‘바늘구멍’을 통과한 낙타가 되었습니다(루카 19,8-10).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 양승국 신부님_재물의 양면성 앞에서
-
188312
최원석
11:14
-
반대 0신고 0
-
- 이영근 신부님_* 오늘의 말씀 : 사순 제2주간 목요일
-
188311
최원석
11:14
-
반대 0신고 0
-
- 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_송영진 신부님_3월 5일 묵
-
188310
최원석
11:14
-
반대 0신고 0
-
-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
-
188309
최원석
11:14
-
반대 0신고 0
-
- [매일미사 묵상] 진실을 알지 못하면 의지하지 못한다
-
188308
미카엘
11:06
-
반대 0신고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