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묵상 : 고독사 한 사람들이 느끼는 외로움을 통해 신앙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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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19 강만연 [fisherpeter] 스크랩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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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와 이번주에 걸쳐서 두 번의 고독사 현장을 찾았습니다. 이번 건도 개신교 봉사하는 팀들과 함께했습니다. 그땐 천주교 신자라서 부탁을 했고 이번에는 저번에 했던 걸 계기로 해서 같이 할 수 있으면 해달라고 부탁을 해 어떻게 시간을 내 같이 했습니다. 할아버지 한 분과 아주머니 한 분 이렇게 두 분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불교 신자였던 것 같습니다. 불교서적이 많이 있는 걸로 봐서는 그런 모양입니다. 아주머니는 종교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평범했던 보통의 사람 같았습니다. 제가 이 봉사를 개종하기 전에 우연한 일 때문에 하게 됐습니다. 지금 기억으로는 한 스물다섯 번 정도 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 세 번 하면 아마 도합 스물 여덟 번 정도 유품정리 봉사를 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 이 일을 하게 됐을 땐 겁이 많이 났습니다. 몇 번 하다 보니 언제부턴가는 겁은 없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세상에서 봉사라고 한 건 재해나 산악 인명 구조 봉사를 많이 한 것이 대부분이고 또 독거노인 도시락 배달 같은 게 거의 대부분이었습니다. 적십자 회원 자격으로 했던 것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봉사를 하게 되면 보람이 많이 있고 뿌듯한데 이 봉사는 그렇지 못합니다. 찝찝하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했다면 애시당초 하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하고 왔을 때 마음이 많이 아프다는 것입니다.
유품을 정리하다 보면 그냥 그게 유품이긴 한데 그 유품 하나 하나가 마치 슬픈 사연이 다 있는 것처럼 말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이게 무슨 느낌인지 잘 와 닿지 않을 것입니다. 예전에 개신교에 있었을 때 했을 때 처음엔 잘 몰랐는데 이게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처음 몇 번은 고인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모른 상태에서 가 봉사를 했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턴가는 어느 정도 정보를 알고 갔습니다. 그렇다고 깊은 정보까지는 아닙니다. 하다 보면서 유품이 말은 하지 않지만 무엇인가 말을 하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조금 감수성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이건 같이 봉사를 하는 분 중에 개신교 자매님도 계십니다. 그분들이 예전에 그랬습니다. 제가 유품을 정리하면서 그 유품에 대해 어떤 감상을 말하면 상당히 공감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번에는 천주교 신자라서 요청한 것도 있지만 사실 이번에 들었는데 앞으로는 고인되신 분의 종교와 상관없이 같이 봉사를 했으면 좋겠는데 하고 부탁을 해서 할 시간이 있거나 여건이 되면 해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이게 단순히 그냥 물건을 치우고 버리는 문제면 간단한데 생각보다는 그런 게 아닌 면이 있습니다. 직업적으로 하는 곳도 있지만 이곳은 종교적인 신념 때문에 하는 봉사 단체라서 단순히 쓰레기 정리를 하는 그런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맨처음 할 때 이에 대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쓰레기나 물건을 치우는 그런 개념으로만 생각하면 봉사를 할 수 없습니다. 제가 개종하기 전에는 거의 다 개신교 신자 위주로 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개종 후에는 하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에는 특별한 경우에는 개신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했던 적이 좀 있었다고 했습니다. 예전에 했던 거는 제가 기록으로 많이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냥 봉사를 했다는 그 사실로만 만족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하면서 나름 묵상한 게 있습니다. 또 연락을 받고 나서 약속된 시간이 올 때까지 고독사에 대햔 자료도 많이 찾아봤습니다. 또 이번 두 분의 고독사 현장을 다 정리하고 난 후에 같이 봉사를 했던 분들과 많은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해봤습니다. 그분들은 개신교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이건 개신교 천주교 신앙 이렇게 양극단 대립적인 종교로써 바라볼 문제가 아닌 것을 느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라는 큰 틀에서 생각을 공유해도 전혀 문제가 될 게 없었습니다. 최근에 세 번 하고 또 이분들과 같이 봉사를 한 후에 나눈 나눔을 통해 새로운 관점에서 신앙을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이 점을 여러분과 함께 잠시 나누고 싶습니다. 저번에 천주교 신자인 자매님 유품을 정리했을 땐 전체가 형제들로만 구성됐습니다.
이번에는 자매님 두 분이 계셨는데 다행히 두 분다 예전에 같이 했던 분들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반가웠습니다. 보통 보면 이 봉사를 꺼려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어서 동참하는 분이 잘 없다고 했습니다. 근데 자매님들은 이 봉사가 보람이 많이 있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게 궁금해 여쭤봐도 딱히 설명을 잘 해 주시지는 못했지만 보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조금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보람보다는 가슴이 아프다는 게 전부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고독사를 하게 되면 명백히 구분되는 특징이 몇 가지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결과는 동일한데 그 과정에서 차이가 나는 게 있습니다. 만약 질병으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해도 차이 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모든 남여가 다 그렇다는 건 아닌데 제가 그동안 해 오신 분들의 경험담과 제가 그동안 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차이점이 오늘 제가 글을 올려서 공유하고자 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바로 '외로움'입니다. 사람은 혼자라면 누구나 또 나이가 들어가게 되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건 고독사라는 차원에서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지금은 이 현실이 더 절실하게 느끼는 현 시대적인 문제로 대두되는 사회현상입니다.
원래 성비를 보면 남자가 훨씬 고독사 사망이 더 많은 게 사실입니다. 근데 최근 몇 년간 새로운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50대 중반에서 60대 중반 여성의 고독사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원인 중 하나가 질병이 있어서 질병으로 인한 고독사보다 외로움으로 인한 고독사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어제 오늘 이런 방면 자료를 찾아보기 위해 특이한 통계 자료도 봤는데 이게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 연령층만 딱 놓고 봤을 때 이때까지 미혼인 여성과 기혼인 여성이었는데 어떻게 이혼을 했다든지 아니면 상처를 했다든지 해서 혼자서 살게 된 경우로 나누어서 보면 특이한 특징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고 합니다. 사별이나 이혼한 여성이 더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는 것입니다.
저는 결혼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오히려 정반대가 타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게 사실입니다. 이건 실제 이 봉사를 오랬동안 해 온 개신교 자매님들의 전언을 통해서 들어보면 거의 확실한 것 같습니다. 이 사실보다도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분들 같은 경우는 신앙이 없는 경우를 말합니다. 만약에 그럼 신앙이 있는 경우라면 과연 결과가 어떨까요? 이건 종교가 어떤 것인지는 상관없다는 걸 전제로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이분들은 개신교 신자들을 많이 상대로 했기 때무에 그간 제가 14년 정도 가톨릭에 있었기 때문에 그 사이에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했을 겁니다. 그중에는 개신교 신자도 있었을 겁니다. 이를 토대로 해서 말씀을 하시는데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진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신앙을 가져도 그 외로움을 신앙으로 채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해는 되지만 씁쓸한 현실 같습니다. 이게 남자와 여자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합니다.
남자는 신앙의 유무와 상관없이 그냥 그 자체로 외로움이 있어도 그냥 마치 운명인 것처럼 생각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높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외롭긴 하지만 다른 대체적인 것으로 어느 정도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기질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번에 새로운 것을 느꼈습니다. 남녀 성별을 불문하고 이런 상황도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그것도 신앙이 있다면 다 신앙으로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실제 현실과는 너무나도 다른 결과였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고독사 하면 경제적인 결핍도 고독사의 원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도 원인이 되는 사람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경제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도 고독사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본 게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이라는 게 무조건 죽어서 나중 우리가 가는 영혼의 세계인 본향에 초점을 두는 건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도 중요하지만 이젠 이 문제보다는 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한 후에 이 문제는 차후 문제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요 요즘은 남녀가 결혼을 해 가정을 가지고 살아도 이혼이나 사별 같은 게 있기 때문에 이런 게 현실적으로 일어난다고 했을 때에도 어떻게 신앙으로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미리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남자도 해당되고 여자도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평균적으로는 남자가 먼저 빨리 하늘나라 가지만 어떤 경우는 자매님이 빨리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영세를 받고 나서 레지오를 했는데 얼마 안 있어서 한 1년 정도 됐을 때 한 형제님의 자매님이 선종을 했습니다. 형제님이 기가 많이 쳐졌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성당에 나오셨는데 또 레지오 회계도 맡고 하셨습니다. 물론 연세가 상당히 많으셨는데 그만 자매님이 선종하신 충격으로 언제부터 그냥 냉담을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어떤 경우라도 재혼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반드시 그런 상황이 발생하게 되더라도 자신만의 신앙적인 결심을 평소에 가지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걸 평소에 생각하지 않으면 그런 상황이 현실적으로 닥쳤을 땐 소위 말해서 멘붕이 올 것입니다.
만약 재혼이 불가능하다면 생각해봐야 할 게 있습니다. 평소에 신앙으로 이런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자기만의 힘인 내공을 키워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독사는 둘째치고 남은 여생을 신앙보다는 오히려 외로움에 더 지쳐 신앙을 등지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신앙과 먼 생활을 하면서 남은 생을 보내게 될 경우가 더 많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부로 살든 독신으로 살든 마지막 인생 여정에는 다 혼자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시간이 닥치게 될지 아니면 안 닥칠지는 자신의 운명이겠지만 그 운명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게 신앙 안에서는 또 하나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결국 신앙의 길을 가도 외로움과도 싸워야 하는 건 누구나 걷게 되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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