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 제2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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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26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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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준 선생님의 구약성서의 인물을 잘 듣고 있습니다. ‘엘리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구약성서에는 ‘예언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언자는 미래를 알려주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뜻을 알려주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알려주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구약성서의 예언자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고대 근동에 있었던 나라의 예언자를 함께 살펴보면 좋습니다. 이집트에도 ‘신관’이 있었습니다. 이집트의 예언자는 ‘사후예언(事後預言)’이 많았습니다. 지금 왕의 업적과 능력을 예전에 있었던 예언의 결과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언이 있었기에 결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드러내기 위해서 예언을 지금 만드는 것입니다. 아카드에도 ‘신관’이 있었습니다. 왕의 후계자를 위해서 ‘신탁’을 받았습니다. 신탁이 좋지 않으면 다른 후계자를 내세워 후계자를 죽이고, 다시 신탁받았습니다. 신탁이 좋게 나오면 그때 비로소 왕의 아들을 후계자로 세웠습니다. 이집트와 아카드의 예언자는 모두 정권과 함께하는 예언자였습니다. 정권의 통치 수단으로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는 정권의 비판을 이야기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정의를 이야기하였습니다. 왕일지라도 하느님의 뜻을 어긴다면 과감하게 비판하였습니다. 구약성서에 있는 대부분의 예언서가 그렇습니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예언서가 구약성서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망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빌로니아로 유배를 갔습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왜 이스라엘이 망했는지 성찰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벌하셨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주변의 나라가 강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권에 반하는 이야기를 했어도 구약성서의 예언서는 지금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아합왕은 바알과 야훼 신을 함께 섬기려고 했습니다. 마치 한국이 미국과 중국과의 외교를 균형있게 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엘리야 예언자는 ‘정치는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신앙은 그렇게 할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하느님을 ‘반(半)’만 믿는 것은 하느님을 ‘반역(反逆)’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왕과 권력이 약자의 것을 빼앗고 생명을 짓밟을 때, “당신이 살인하고 그 땅을 차지하지 않았느냐”고 외치며 권력 앞에서 침묵하지 말라고 말하였습니다. 아모스는 나라가 번영하고 종교의식이 화려할수록 가난한 이들이 짓밟히는 현실을 고발하며, 하느님께서는 제사와 축제가 아니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원하신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성전과 제도, 신앙의 외형에 안주한 백성에게 “주님의 성전이라는 말로 자신을 속이지 말라”고 외치며, 회개 없는 신앙은 오히려 하느님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이사야는 군사력과 외교 동맹에 의지하려는 정권을 향해 말과 병거가 아니라 하느님을 신뢰하라고 외치며, 참된 평화는 힘의 균형이 아니라 하느님의 정의에서 온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이야기했습니다.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고, 사자와 어린아이가 함께 뛰노는 세상이 온다고 했습니다. 여인이 아이를 가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아이는 ‘임마누엘’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라는 뜻입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우리에게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아픔을 없애시는 분. 네 목숨을 구렁에서 구해 내시고, 자애와 자비의 관을 씌우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돌아온 아들을 용서하시는 아버지의 자비를 이야기하셨습니다. 신앙이 없는 과학과 이성은 목적지를 잃어버린 배와 같습니다. 신앙이 없는 물질과 자본은 많은 사람의 희생을 요구할 뿐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기만 하면,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기만 하면, 하느님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진홍같이 붉어도 양털처럼 희게 하고, 눈처럼 희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돌아온 둘째 아들을 대하는 큰아들을 봅니다. 큰아들의 가장 큰 잘못은 선과 악을 스스로 판단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동생을 받아들이고 아낌없는 사랑을 주시는 것, 그와 같은 판단을 하는 분도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오늘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큰아들처럼 하느님을 우리의 기준으로 규정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하느님을 따르면서 나의 모든 것을 하느님의 선하심에 맡겨드릴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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