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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자) 2026년 3월 11일 (수)사순 제3주간 수요일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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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3월 10일 사순 제3주 화요일

188407 박양석 [pys2848] 스크랩 2026-03-10

2026년 3월 10일 사순 제3주간 화요일

 

 

많은 이가 애완견을 키웁니다. 그런데 왜 키울까요? 예전에는 개를 키우는 이유가 분명했습니다. 도둑 들어올 것을 걱정해서 개를 키우기도 했고, 또 잡아먹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이유가 아닙니다. 사실 이 애완동물이 나가서 돈을 벌어오지 않습니다. 또 나의 일을 대신 해 주지도 않습니다. 나의 일만 늘어납니다. 시간 맞춰서 밥을 줘야 하고, 산책도 시키고 같이 놀아주기도 해야 합니다. 이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야 하고, 때 되면 예방접종까지 맞춰야 합니다. 그런데도 가족처럼 생각하고 좋아합니다.

 

아마 내 기분과 상관없이, 또 내 성취와 상관없이 주인이라면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상처 준 말을 마음에 담지도 않고, 또 복수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좋아할 뿐입니다. 자기가 받은 사랑만큼만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애완견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을 합니다. 그래서 주인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법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상대방의 성취와 상관없이, 어떤 말과 어떤 행동을 해도 자기 할 수 있는 사랑에 최선을 다한다면 누구나 나를 좋아하고 사랑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늘 이유를 붙이면서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특히 세상의 기준을 더 해서 사랑하지 못하는 것, 미워하고 단죄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사랑받을 수 없으며, 특히 주님의 은총 안에 머물지 못하게 됩니다.

 

베드로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마태 18,21)라고 묻습니다. 당시 유다교 랍비는 3번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의 일곱 번은 나름대로 관대함의 표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횟수 세는 것 자체를 멈추라는 것입니다. 무제한적이고 완전한 용서, 용서를 계산의 대상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매정한 종의 비유 말씀을 해 주십니다.

 

임금이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의 빚을 탕감해 줬는데,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감옥에 가두는 매정한 종에 관한 비유입니다. 만 탈렌트는 한 국가의 1년 예상 이상의 액수로 천문학적인 돈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하느님 앞에서의 우리 죄의 크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백 데나리온은 노동자 100일 치 임금으로, 적지 않아도 충분히 갚을 수 있는 금액입니다. 이웃이 나에게 지은 죄(잘못)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받은 은총의 크기를 망각하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주님의 자비를 누리며 살고 있는데, 동료의 작은 잘못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탕감받은 것을 오히려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은총 안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용서는 은총의 열매라고 합니다. 따라서 용서하지 않는 삶은 은총을 거부하는 것이 됩니다.

 

 

오늘의 명언: 싸우지 않는 대화의 첫걸음은 상대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선 자신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야마사키 히로미).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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