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 제3주간 수요일 : 계명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묵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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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25 강만연 [fisherpeter] 스크랩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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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계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계명이나 율법을 왜 지켜야 하는지 누군가 질문을 한다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답변은 아마 그래야 하느님께 칭찬 받을 수 있고 또 장차 천국에 갈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 법도 마찬가지이고 하느님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이라는 걸 지키면 그건 서로를 위해 좋은 일입니다. 원래 법의 순기능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측면이 많습니다. 제가 법을 우연히 몇 년간 공부한 계기가 목사님 때문입니다. 목사님 자료를 번역하는 걸 도와드리다가 어떤 경우는 흥미로운 게 많고 또 관심을 가지다 보니 공부를 하게 됐습니다. 무엇보다도 범죄심리학 분야이다보니 어떻게 또 범죄는 아니더라도 심리학에 흥미를 가지게 돼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저는 오늘은 다른 측면에서 계명을 왜 지켜야 하는지 그 이유를 한번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계율을 잘 지켜서 천국에 가려고 한다는 그런 것보다는 같은 의미이지만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또 하나는 자신의 영혼을 거룩하고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영혼을 지키는 길입니다.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 하듯이 우리의 영혼도 깨끗한 영혼이 되기 위해 마치 운동과 같은 게 바로 계명입니다. 운동이라는 걸 하면 다 몸에 유익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 알긴 하지만 알아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운동이라는 건 재미 측면에서 보면 재미는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 개인마다 운동이 재미있는 것도 있습니다. 가령 구기 종목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좋다는 건 알지만 잘 하지 않는 이유가 됩니다. 계명도 이와 같습니다. 계명을 잘 지키면 하다 못해 이런 생각은 다 할 것입니다. 안 지키는 것보다는 복을 받아도 더 많이 받을 거라는 생각은 다 할 것입니다. 세상 법도 그렇고 하느님 법도 그렇습니다. 원래 법이라는 건 지키면 상대적으로 그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좋은 결과가 있어야 하는데 사실 상응하는 좋은 메리트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상적인 표현으로 보면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히려 법을 지키는 게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탈법과 위법을 하는 게 인간적으로 덕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건 법을 악용한 사례입니다. 세상 법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보상도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상법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느님 법은 다릅니다. 하느님의 법도 어떤 경우는 지키면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그걸 많이 경험합니다. 제가 하느님을 믿지 않았더라면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고 또 이렇게 해도 세상 도덕에도 전혀 영향을 미치지는 않기 때문에 굳이 하느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행하지 않아도 될 경우도 있지만 설령 그럴 경우라도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고 확신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설령 현세에서는 세상적으로는 손해가 되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지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잠시 소풍을 온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는 우리 영혼의 고향인 본향으로 가야 합니다. 그때 하느님께서 분명히 셈을 잘 해주실 것입니다. 그곳에서의 셈법은 정말 이상한 셈법이 될 것입니다. 오히려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사랑해서 하느님 말씀대로 살게 돼 손해가 됐다면 그 손해만큼 역으로 손해가 이익으로 정산될 것입니다. 그것도 더 후하게 복리로 따라오게 될 거라 확신합니다.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다 성경에 그 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 사기를 친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또 사실 하나 간관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사실 이런 게 그때 과연 그렇게 될까 하는 의문입니다. 물론 아직 그때가 되지 않아서 아무도 잘 모르는 것은 맞습니다. 그렇다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신앙과 맏음은 불확실한 상황 같은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신뢰를 해야 그 믿음이 진정한 믿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건 우리의 성조 아브라함 할아버지와 사라 할머니가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사라 할머니는 아들을 가지게 해 주신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경으로 들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이미 경수가 끊긴 몸이기 때문입니다. 허풍으로 들렸을 겁니다. 성경에는 경수가 나와 다시 자손이 생기게 된다는 내용은 없지만 결국은 아들을 가지게 됐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지만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게 하느님이 경수가 없으면 자식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시는 분일 것입니다.
왜냐하며 하느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기 때문에 더 잘 아실 겁니다. 그런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을 땐 그런 상황에도 그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가 모르는 뭔가 초월적인 하느님의 권능적인 힘으로 그걸 가능하게 해 주시기 때문에 가능하게 되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걸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실을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믿음은 인간의 이성을 초월해야만 될 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경우라도 이성을 뛰어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 셈법도 이와 같은 이치가 적용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하신 말씀은 다 오늘 복음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면 아버지가 하신 말씀을 믿어야 하는 것처럼 하느님 말씀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는 이해득실을 따지지 말고 그저 하느님 말씀이기 때문에 어떤 조건도 따지지 말고 순수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입으로는 누구나 하느님을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행동으로 말씀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로 혹시 경수의 뜻을 모르는 분이 계실 수 있을 것 같아 알려드립니다. 이건 주로 한의학에서 부인과 영역에서 언급되는 표현입니다. 원래는 한 달에 한 번 여성들이 마법에 걸리는 그걸 말할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연세가 많은 분에게 혹여 해당될 경우에 격식을 갖추어 표현할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현대인은 잘 모르는 경우도 있을 거라 부연 설명 드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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