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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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54 최원석 [wsjesus] 스크랩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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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요즘에 멘붕에 빠졌습니다. 일주일인가 아마 그정도쯤 되었을 것입니다. 라이문도 신부님 형수님으로 부터 전화를 받았어요. 어제 나눈 연장 선상인데요..주변의 지인들을 통해서 그분이 어떤 사정인지 알고 부터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이를 어쩌나? 신부님과 저는 가족이었기에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마음이 아파요. 신부님의 형님의 사정을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아신다면 가슴이 무너지고 아니 저런 십자가가 ? 그런 마음입니다. 아니 하느님은 어디에? 그런데 그것이 그분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그분이 감당하기에 넘 큰 십자가입니다.신부님의 형님이 연세가 92입니다. 그런데 얼굴에 핏빛이 없습니다. 너무 괴로운 상황이라.. 그래서 어제는 신부님 수도회 신부님에게 이 소식을 알리고 기도를 청했습니다. 너무 힘든 상황이라 그런데 그 원인이 인간의 죄로 발생한 것은 아니고 어찌하다 보니 무거운 십자가가 그분에게 온것입니다.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질머지고 가시는 그 아저씨 위해서 기도 하는것이 저의 할 몫입니다. 따님이 큰 수술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누님 같은 분입니다. 그분의 병고에 시달리는 그 아픔을 치유 은혜를 주님께 청합니다. 신부님의 형님의 상황이 오늘 복음에서 결단을 촉구하시는 주님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예수님이 병자를 살리사는 장면이 나오는데 하느님의 힘으로 병자를 고치는데 그것이 마귀의 힘을 빌어서 병자를 고치는 것으로 오도합니다. 성경을 묵상하고 관상도 없이 단순한 언어로 받아들이고 상상의 영역으로 해석하다 보니 주님의 말씀과 힘을 오도하는 것입니다. 서글픈 현실입니다. 앞서 신부님의 형님의 가정 상황이 가히 감당이 않가는 상황을 마귀의 상황으로 오도하여서 극단으로 행동한다? 이것은 마귀가 좋아하는 상황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운명과 같이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상황이 왔을때 그것을 절망으로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죽음으로 받아 들이셨습니다. 왜? 이것도 지나가는 것이지 그것이 영원한 것은 아니기에 .. 영원한 것은 하느님의 선이고 하느님의 영광안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안에 머물기 위해서는 우리가 깊은 묵상과 관상안에서 가장 낮은 모습 속으로 나를 찾아 오시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도 십자가 죽음을 맞이하시는 순간에도 주님은 외딴 곳에서 기도를 하신 분입니다. 그 기도 안에서 나를 내어 맡기는 그런 수동적인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느님께 나를 내어 맡기는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주님은 그 참혹한 죽음을 맞이 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상황이더라도 우리가 해야 할것은 기도입니다. 기도가 선행되고 그분 안에서 죽어야 부활의 기쁨도 같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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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근 신부님_* 오늘의 말씀(3/12) : 사순 제3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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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56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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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_송영진 신부님_3월 12일 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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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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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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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도문과 말씀, 어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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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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