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_송영진 신부님_3월 12일 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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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55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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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힘센 하느님 나라
오늘 예수님은 당신의 능력과 권위에 도전장을 내미는 사람들, 특히 바리사이들을 향하여 명쾌한 논리로 응답하십니다. 대다수 군중처럼 그러한 능력과 권위 앞에 마땅히 “놀라워해야” 하지만, 바리사이들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는 모독적인 언사를 마다하지 않는가 하면, 아직도 미심쩍어하는 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합니다. 표징을 요구한다는 것, 보고서야 믿겠다는 것은 실은 아직도 믿음이 없음을 드러내는 증표입니다. 따라서 반대편에 서 있는 바리사이들이나, 미심쩍어하는 사람들 모두 “내 편에 서지 않는 나를 반대하는 자들”,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흩어버리는 자들”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벙어리 마귀를 쫓아낸다는 바리사이들의 중상 앞에 서십니다. 베엘제불이라는 이름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아무튼 예수님은 마귀들에 대해 아무런 권능도 지니지 못하고, 다만 그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조종할 뿐이라는 억지 주장입니다. 성부의 뜻에 따라 성령의 도움으로 악마의 세력을 제압하여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을 모독하는 극언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모독하기 위해 내세운 이러한 논리는 바리사이들의 세계를 궁지에 빠뜨리는 자기모순이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너희의 아들들’, 곧 바리사이들 가운데는 일부도, 특출한 능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 사람들도 마귀를 쫓아내는 구마(驅魔) 의식을 거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특별한 능력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그들조차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을 궁지에 빠뜨리리 위해 온갖 궤변과 억지를 서슴지 않는 이들 바리사이들과의 논쟁을 깔끔하게 정리하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 나라 건설만이 그분의 최종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라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사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반대 세력의 도전에 크게 개의치 않으시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십니다. 하느님 나라 건설에 다소의 불편함을 줄 수는 있어도,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깊이 의식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시선은 당신의 권위 있는 말씀과 행적 앞에 놀라워하던 군중처럼 우리를 향하십니다. 저 많은 반대 세력과 그들의 집요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정의와 진리와 평화보다는 불의와 거짓과 불목이 난무한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 건설은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으로 다소 소심해진 우리 앞에 예수님은 ‘힘센 분’으로 서십니다. 반대 세력의 증대가 우리에게 ‘희망 없음’의 예표로 다가올 때가 있어도, 우리 주님은 힘센 분임은 우리에게 ‘희망 있음’의 강력한 증표로 길이 머뭅니다.
이번 사순시기, 내적 또는 외적인 반대 세력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주님과 함께 모아들이는 신앙인’의 삶을 더욱 다지고 실천에 옮기는 소중한 시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거짓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고, 불의가 아니라 정의를 실천하며, 불화가 아니라 평화를 이루어내고자 노력할 때마다, ‘힘센 분’이 세우시는 하느님 나라는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건설되어 나갈 것입니다!
조욱현 신부님_ “나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는 장면을 본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분의 권능을 인정하지 않고,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15절)라고 말한다. 이것은 곧 하느님의 구원 행위를 왜곡하는 죄이자, 성령의 활동을 거슬러 대적하는 불신앙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답하신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20절). 여기서 “하느님의 손가락”은 성령을 가리킨다.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말한다. “성부께서는 말씀과 성령, 곧 두 손을 통해 모든 것을 행하신다.”(Adversus Haereses IV, 20,1) 즉, 그리스도와 성령의 활동은 분리될 수 없다. 예수님의 기적은 단순한 능력의 과시가 아니라, 성령의 현존 안에서 하느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드러내는 표징이다.
예수님은 또 비유로 말씀하신다.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21-22절). 여기서 “힘센 자”는 세상의 지배자 사탄을 의미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보다 더 힘센 분이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해석한다. “더 힘센 분이 들어오셔서, 악마의 사슬을 풀고 사로잡힌 이들을 해방시키셨다.”(Enarrationes in Psalmos 124, 7)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이미 사탄의 권세를 꺾으셨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죄와 죽음의 속박에서 해방된 새로운 백성이 된 것이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말씀하신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버리는 자다.”(23절). 여기에는 중립이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모으는 자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흩어버리는 자일 뿐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말한다. “중간에 서 있으려는 자는 비록 드러내어 싸우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은 대적자다.”(Homilia XLIII in Matthaeum) 사순 시기를 지내는 우리도 이 말씀 앞에 서 있다. 나는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편에 서 있는가? 아니면 무관심과 타성 속에서 사실상 그분을 외면하고 있는가?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예수님의 마귀 쫓아내심은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당신 안에 와 있음을 드러내며, 십자가의 승리로 그 나라가 결정적으로 시작될 것을 예고한다.”(550항) 따라서 예수님의 기적은 단순한 표징이 아니라, 구원의 질서가 시작되었음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마귀를 쫓아내신 것은 곧,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보여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순 시기에 더욱 깨어, 주님의 편에 서야 한다. 중립은 없다.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성령 안에서 죄의 유혹과 어둠을 물리치며, 그리스도와 함께 모아들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병우 신부님_"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5,17)
'형식이 아닌 본질에 충실하자!'
오늘 복음(마태5,17-19)은 '예수님과 율법'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마태5,17-18)
그리고 이어서 '지금 여기에서 내가 먼저 계명들을 잘 지키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쳐야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으로 불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본질에 충실하자!'
참으로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바쁨이고, 이 바쁨이 어디를 향해 있는 바쁨인지에 대한 가끔씩의 되돌아봄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수님과 끝까지 대립각을 세웠던 율법 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은 율법 그 자체, 율법의 형식이라는 것에 집착을 했고, 반면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본질인 사랑(가엾은 마음)을 향해 있으셨습니다.
우리는 율법 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을 쫓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율법의 본질이시며 이를 향해 있었던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율법의 본질인 사랑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바쁨이 형식에 얽매이는 바쁨이 되지 말고, 본질에 충실한 바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미사를 했네 안했네도 중요하지만, 기도를 했네 안했네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사와 기도의 본질인 사랑(Agape)'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사랑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너무 형식을 따라가지 말고, 작은 본질들 안에 머물러 있도록 합시다! 그래서 마침내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 됩시다!
송영진 신부님_<“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마귀가 나가자
말을 못하는 이가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군중이
놀라워하였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루카 11,14-23)”
1) 예수님께서 ‘게라사인들의 지방’에서 마귀를 쫓아내신
이야기는, ‘예수님과 마귀의 관계’를 잘 나타냅니다.
“그가 예수님을 보고 고함을 지르고서 그분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말하였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당신께 청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에게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마귀들은
예수님께 지하로 물러가라는 명령을 내리지 말아 달라고
청하였다(루카 8,28-29ㄱ.31).”
주 예수님은 마귀들을 인간 세상에서 쫓아내시는 분입니다.
마귀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합니다.
만일에 복종하기를 거부한다면? 그러면 마귀들은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는데, 지옥은 마귀들을 가두어 놓는 감옥이고,
마귀들은 지옥에 가는 것을 대단히 두려워합니다.
2) 마귀들이 예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 자체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하는 ‘표징’입니다.
신앙생활은 마귀를 쫓아내시는 예수님 편에서 살아가는
생활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기를 거부하는 것은
마귀들 편에 서는 것과 같은 일이 되어버립니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 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안 믿는 것은 마귀들과 같은 편이 되는 것이라는
뜻이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버리는 자”
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기를 거부하는
것은 스스로 멸망을 향해 가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과 마귀들의 싸움에 ‘중립’은 없습니다.
하늘나라의 ‘안’이 아니면 ‘밖’입니다.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구원이 아니면 멸망입니다.
나중에 종말이 되면, 마귀들과 지옥은 영원히 소멸되는데,
마귀들 편에 선 자들도 함께 소멸됩니다.
“바다가 그 안에 있는 죽은 이들을 내놓고, 죽음과 저승도
그 안에 있는 죽은 이들을 내놓았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죽음과 저승이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 이 불 못이 두 번째 죽음입니다.
생명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묵시 20,13-21,1).”
3) 그런데 인간 세상의 실제 현실을 보면, 예수님을 믿는
것도 아니고 마귀들 편에 선 것도 아닌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그 사람들을 향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본인들은 자기들이 절대로 마귀들 편에 선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겠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단호합니다.
지금은 마귀들 편에 서 있지 않더라도, 끝까지 예수님 편에
서기를 거부한다면, 마귀들과 함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부정한 것은 그 무엇도, 역겨운 짓과 거짓을 일삼는 자는
그 누구도 도성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오직 어린양의 생명의
책에 기록된 이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묵시 21,27).”
“오직 어린양의 생명의 책에 기록된 이들만”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단순하고 명확한 말입니다.
<마귀들은 인간들을 유혹할 때 이렇게 유혹할 것입니다.
“우리 편에 서지 않아도 된다. 예수 편에만 서지 마라.
그러면 너는 네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즐기면서 살 수 있다.
예수 편에 서지 않는다고 해서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사탄이 하와를 유혹할 때 했던 말을
조금 각색한 것입니다.
유혹이란 그렇게,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인 것처럼
꾸며서 속이는 짓입니다.>
4) 이미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고 신앙인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확실하게 예수님 편에 서지 않고,
또 예수님의 뒤를 따르지 않고, 자꾸만 다른 마음을 품고,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를 나타내는 말이 바로 ‘미지근함’입니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묵시 3,15-16).”
무슨 큰 죄를 짓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열성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아닌 ‘미지근함’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멸망 쪽으로 끌려가는 것이기
때문에, 죄보다 더 위험한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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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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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64
김중애
202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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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미사/2026년 3월 13일 금요일[(자) 사순 제3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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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63
김중애
202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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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3.금 / 한상우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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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62
강칠등
202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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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묵상 : 인간의 욕망과 죄, 과연 욕망이 죄가 될까? 글이 아주 깁니다. 긴 글 싫어하시는 분은 패스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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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61
강만연
202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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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의 가슴에 상처주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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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숙
2026-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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