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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자) 2026년 3월 15일 (일)사순 제4주일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이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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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간 토요일

188468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26-03-13

긁어 부스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처를 건들면 덧난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가끔 손톱 주변에 피부가 일어나는 때가 있습니다. 가위나 손톱깎이로 잘 잘라내면 좋은데, 성격이 급해서 참지 못하고 잡아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일어난 피부뿐만 아니라 그 아래 붙어있던 피부까지 떨어져 나와서 생손앓이를 하곤 합니다. 며칠 지나면 상처가 아물어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그때까지는 불편을 감수하게 됩니다. 컴퓨터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광고성 프로그램이 깔려서 신경 쓰였습니다. 차분하게 방법을 찾거나, 컴퓨터를 잘하는 청년에게 부탁하면 되는데 조급한 마음에 이것저것 만지다 보면 혼자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본당 청년이 와서 숨어 있던 광고성 프로그램을 제거했습니다. 저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곳에 있었습니다. 제가 건드렸던, 그래서 평소와 달라진 컴퓨터의 환경도 제자리로 돌려놓았습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신앙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제사라는 형식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번제물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신의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느님을 아는 예지라고 하십니다. 신자로서 주일미사에 참례하고, 본당의 재정에 관심을 두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그렇게만 해도 남들 보기에 모범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입니다. 깨달은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에 관해 물었던 율법 학자에게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율법을 아는 것과 율법을 실천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하느님께 사랑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참된 신앙생활과 그릇된 신앙생활에 관해서 비유를 통해서 이야기하셨습니다. 하나는 바리사이의 헌금과 가난한 과부의 헌금입니다. 헌금의 액수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헌금은 자신을 드러내는 바리사이의 헌금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헌금은 정성 된 마음으로 봉헌하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신 바리사이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였습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기도는 자신을 드러내는 바리사이의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기도는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세리의 기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겸손을 강조하셨습니다. 기도할 때도, 단식할 때도, 자선을 베풀 때도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게 하면 이미 상을 받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모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숨은 일도 아시는 하느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상대적입니다. 한국에서 제일 부유한 사람도 미국에서 제일 부자인 사람에 비하면 가난한 것입니다. 희생과 겸손의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성인들의 삶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것입니다. 키가 180인 사람도 2미터인 사람들 앞에서는 작은 것입니다. 우리는 상대적인 세상에서 너무 쉽게 좌절하기도 하고, 교만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상대적으로 평가하거나, 순위를 정하시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우리들의 모습을 사랑하시고, 인정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희망이란 무엇입니까 희망은 신앙과 같은 말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거짓 희망을 보게 됩니다. 물가가 안정되고, 경제가 좋아지고, 국민 소득이 늘어날 것이라고 하는 말들은 진정한 희망이 아닙니다. 참된 희망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희망은 기도와 실천을 통해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언젠가 하느님께서 선하고 착한 사람들은 거두어 주신다는 확신을 통해서 현실의 아픔과 고통까지도 이겨내는 것이 참된 희망입니다. 다시 말해서 희망은 신앙과 같은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희망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입니다. 부활에 대한 희망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많은 박해와 고통을 참고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배가 항해할 수 있는 것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살이 빠지면 건강하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건강하면 살이 빠지고 행복해진다고 말합니다. 생활이 안정되면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면 생활도 안정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행동 없는 희망은 진정한 희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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