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삼용 신부님_2026년 가해 사순 제3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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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75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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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임 신부를 미워는 신자가 성당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오늘 복음에서 한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마르 12,28)라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말씀하시고, 이를 잘 알아들은 율법 학자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마르 12,34)라고 칭찬하십니다.
여러분, 하느님 나라는 죽어서만 가는 곳이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곧 행복입니다. 그런데 왜 계명의 핵심, 즉 사랑의 순서를 알면 행복해질까요? 행복은 관계에서 오는데, 모든 관계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질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좌 신부를 할 때 주임 신부님보다 인기가 더 좋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둘이 같이 떠날 때 전별금을 보니 주임 신부님의 반밖에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신자들은 아무리 보좌가 잘나도 주임 신부님이 아버지입니다. 그러니 보좌는 행복하려면 주임 신부님을 먼저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밖에서 주임 신부님을 흉보면, 신자들은 수긍할 수 있어도 결국 ‘하느님이 주임 신부님으로 삼아주신 분도 공경하지 못하는 보좌 신부’로밖에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도저도 안 되고 행복을 잃습니다.
본당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사목을 하면서 참 안타까운 분들을 봅니다. 신부님이나 수녀님을 습관적으로 험담하는 신자들입니다. "우리 주임 신부님은 이게 문제야, 수녀님은 저게 탈이야." 이렇게 동료 신자들끼리 모여 성직자를 안줏거리 삼아 씹어댑니다. 그러면 그 순간은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고 자기들끼리 똘똘 뭉친 것 같아 행복해 보이죠?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다른 신자들은 속으로 생각합니다. '저 사람은 하느님이 보내신 목자도 저렇게 깎아내리는데, 나중에 내 욕은 얼마나 할까?' 결국 그런 분은 공동체 안에서 누구에게도 진심 어린 사랑을 받지 못하는 외톨이가 됩니다.
주변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어느 본당이나 '트러블 메이커'가 있습니다. 대개 성직자와의 관계가 뒤틀린 분들입니다. 반대로, 신부님께는 지극정성인데 형제 신자들에게는 안하무인인 분들도 있습니다. 이 또한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느님은 당신 자녀들이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시는데, 아버지는 사랑한다면서 그 자식들은 구박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진짜 사랑이라 하겠습니까?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곳에는 질서가 없고, 질서가 없는 곳에는 평화가 깃들 수 없스니다. 성당에서 신부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연습을 하는 것은 단순히 그 신부님이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그분이 하느님의 대리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경외심'의 훈련입니다. 이 훈련이 된 사람은 사회에 나가서도 상사를 존경할 줄 알고, 부하 직원을 아낄 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위와 옆에서부터 사랑받기에 행복해집니다.
성녀 가타리나 시에나는 주님으로부터 놀라운 계시를 받았습니다. 당시 교회가 부패하고 성직자들이 타락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설령 지옥의 악마라 할지라도, 너희는 그들을 존경해야 한다. 그것은 그들 개인의 인품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내 아들의 피를 다스리는 권한을 받았기 때문이며, 나에 대한 공경 때문이다." (『대화』 중에서)
성녀는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교황님과 주교님들을 '지상에 계신 그리스도'라 부르며 사랑했습니다. 그 결과 성녀는 교회 역사를 바꾸는 위대한 일꾼이 되었고, 영혼의 지복을 누렸습니다.
역사 속의 위대한 인물들도 이 원리를 알았습니다. 영국의 위대한 수상 윈스턴 처칠은 정적들과는 치열하게 싸웠지만, 국왕 앞에서는 언제나 가장 겸손한 신하의 예를 다했습니다. 그는 국가의 정점(Vertical)에 대한 예우가 무너지면 나라의 근간(Horizontal)이 흔들린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십자가의 두 기둥을 기억하십시오. 수직의 기둥이 먼저 세워져야 수평의 기둥을 얹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이 세우신 권위를 인정하십시오. 성당에서 신부님과 수녀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연습을 하십시오. 그것이 곧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연습입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제에 대한 공경이 사라진 곳에서는 신앙의 기쁨도 사라진다."
'뿌리 깊은 나무'는 가뭄이 와도 마르지 않습니다. 여기서 뿌리는 하느님과 윗사람을 향한 수직적 사랑입니다. 그 뿌리가 튼튼해야만 가지와 잎이라는 형제적 사랑이 무성하게 자라나 맛있는 열매인 행복을 맺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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