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 제3주간 토요일 : 의로움은 상대적인 비교로 결정되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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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79 강만연 [fisherpeter] 스크랩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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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서울에서 개신교 신앙생활을 할 때 매달 마지막 토요일에는 서울과 수원 근교 윤락가로 전도를 하러 갑니다. 요즘도 이런 걸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기억으로는 한 세 번 정도는 수녀님들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수녀님들은 아마 선교를 하러 오신 건 아닌 것 같고 어떻게 보살핌 이런 목적으로 오신 것 같았습니다. 그냥 서로 좋게 "수고하세요"라고 인사만 하고 헤어지는 그런 모습만 가졌습니다. 상당히 힘든데 어쩌다가 어렵게 그 일을 청산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도록 교회가 많은 도움을 주려고 애를 많이 씁니다. 정확한 통계는 잘 모르지만 생각보다는 어느 정도 완전 그 일에서 손을 떼고 미용기술을 배워 미용실 쪽으로 취업을 알선해 새로운 인생을 사는 분도 있습니다. 새로운 인생을 살다가 다시 그 쪽으로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그분들이 그 일을 그리워해서 그 쪽으로 다시 간 게 아닙니다.
성당도 마찬가지이지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성숙한 인간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 상황에서는 인간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어렵게 어떻게 전도를 해서 예수님을 믿고 새롭게 출발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보면 그런 생활을 하며 살은 인생을 인간적으로 측은하게 생각하고 예수님 마음으로 그분들을 바라봐야 하는데 사실 그렇게 하려고 실천하려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자기는 뭐 대단히 깨끗한 사람인 양 그 여성분들을 마치 벌레처럼 생각하는 인간도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제가 아주 오랜 세월 전이었지만 한 신자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아니, 멀쩡한 사람을 데려와도 되는데 굳이 저런 사람을 왜 전도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공동으로 같이 모임을 하는 자리에서 그 여성분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불쾌감을 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리는 식사 모임이었습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교회 식당에서 같이 하는 자리인데 그때 그 소리를 듣고 한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자리를 뜬 것입니다. 교회도 일처리를 조금 못한 게 있습니다. 멍청하게 그런 사람들은 어느 정도 비밀을 지켜줘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됐던 것입니다. 제가 엄청 강조했는데 잘 안 됐습니다. 남자들은 사실 그런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것을 알아도 모른 체 하는데 어찌 된 판인지 여자들이 더 예민하게 반응을 하는 경향이 더 많습니다.
저는 속으로 그런 걸 티내는 여자들을 볼 때 말은 하지는 않지만 경상도 사람이라 경상도 말투로 " 지는 얼마나 깨끗하다고 참 정말 못 봐주겠네" 하고 궁시렁 궁시렁합니다. 그 여자들이 하는 형태가 바로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바리사이의 모습과 완전 똑같습니다. 과거 그 여자분들이 했던 직업을 문제 삼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 생각에는 그 직업여성들과 같이 어울리고 모임을 하는 것도 불쾌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또 지가 헌금을 하면 얼마나 한다고 그 여성분들이 다시 샤회에 적응하고 일어설 수 있도록 교회에서 재정적인 지원을 하는데 그 돈이 자기가 헌금한 것으로 한다고 해 그것도 불만인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할 것 같으면 " 헌금도 하지 마라"고 내뱉습니다.
저도 부족한 인간이라 그런 판단을 하면 안 되는데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 진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나 같으면 언니처럼 동생처럼 그렇게 연민으로 돌볼 텐데 그것도 같은 여자 입장에서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자기가 그렇다고 많은 돈을 헌금을 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으면서" 하는 판단하고 단죄까지는 아니더라도 약간 단죄 아닌 단죄하는 듯한 판단을 한 건 사실입니다. 개신교에 있었을 때는 이런 것을 죄라고 인식을 잘 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같으면 이런 걸 넓은 범주 안에서는 죄로 여기기는 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이 내용은 워낙 어떤 내용인지 다 잘 아시는 내용입니다.
바리사이가 한 결정적인 잘못은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 한번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그런 비교를 통해 자기의 의로움을 드러낸다고 했을 때 그 기도가 오늘 복음에서는 기도의 형식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건 맞습니다만 이게 기도가 아니고 그냥 단순히 마음속으로 하는 비교라고 하는 가정을 해서 한번 생각을 해보고자 합니다.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면 그건 백 번 양보해 이해를 해 줄 수도 있다고도 하겠지만 성전에서 그렇게 기도를 한 것은 마음속으로 그냥 비교를 해 무시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것은 외형상은 기도의 모습을 취했지만 그건 제대로 된 기도가 아닌 것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라는 것은 '하느님과 우정어린 대화'라는 그런 기본적인 뜻 안에서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기도가 과연 우정어린 대화가 맞을까요? 아니요. 예수님이 그 기도를 들어신다면 아주 슬퍼하실 것 같습니다. 바리사이는 자신이 세리와 비교를 해 상대적으로 자신이 세리보다 더 의롭다는 것을 예수님께 어필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설사 드러낸다고 해도 비교를 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자신이 가진 의로움을 드러냈으면 그나마 좀 나은 것인데 그것도 솔직히 예수님 시각으로 보면 의로움이라고 하는 측면에서 본다고 해도 도토리 키재기와 같은 것인데 자기는 마치 엄청 의롭다는 걸 과시하는 그런 모습을 보시면 얼마나 가소로우실지 그런 생각을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 의로움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비교 우위로써 자신의 의로움이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의로움은 '낭중지추'처럼 그렇게 드러나도 드러나야 할 것입니다. 숨긴다고 숨겨도 어쩔 수 없이 뿜어져 나오는 그런 의로움이라야 진정한 의로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 보통의 사람인 신앙인들이 착각하는 게 있습니다. 자기가 뛰어나다든지 아니면 봉사를 열심히 한다든지 하는 것처럼 뭔가를 했을 때 남들보다 더 많이 했거나 아니면 남들보다 더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가 마치 엄청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생색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는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실 겁니다. 도찐개찐이라고 말입니다.
개신교 그 집사는 만약 오늘 복음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만약 개신교에서 하는 자유기도를 예수님 가르침대로 제대로 한다면 하더라도 이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 저 자매는 우리가 모르지만 어떤 이유로 그런 일을 하게 된 것인지는 모릅니다. 저도 만약 그의 처지에 있었더라면 그 길을 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그 자매보다도 더 나은 사람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그를 측은히 여기시여 어떻게 해서든지 과거의 일을 잊고 예수님 안에서 다시 새로 우리와 함께 예수님을 따르는 같은 형제자매로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옵소서. 예수님" 하고 이렇게 하면 얼마나 예수님께서 좋아하시겠습니까? 그래야 그게 과연 기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주변 사람들과 비교해 자신이 좀 더 신앙적으로 열심한 신자라든지 하는 우월감 같은 것은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런 우월감은 하느님 나라가는 데 짐만 될 것입니다. 그 짐을 가지고 가려고 하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또 가더라도 늦게 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짐 때문에 말입니다. 그걸 내려놓으면 홀가분하기 때문에 천국에 가도 빨리 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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