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 제3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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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94 박영희 [corenelia] 스크랩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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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간 토요일] 루카 18,9-14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은 이들에게서 드러나는 영적 품격을 ‘의로움’이라고 합니다. 그런 참된 의로움을 지닌 이들은 심판의 순간 하느님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지요. 그리고 우리는 그런 자격을 갖추기 위해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하느님께 기도한다는 건 그분 앞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떠드는’ 일이 아니라, 먼저 하느님 말씀을 귀기울여 ‘듣고’ 그분 뜻에 합당한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과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함으로써 그분의 뜻을 헤아리고 따르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자분들 중에는 이런 기도의 목적과 의미를 잘 모르는 체, 그저 입으로 열심히 떠들기만 하면 기도를 잘 하는 것으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바리사이의 모습이지요. 이 바리사이는 자신이 율법을 철저히 따르고 재계를 지키며 자선을 실천함으로써, 또한 죄인들과 자신을 철저히 분리함으로써 이미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기도를 한다고 하면서도 하느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분 뜻을 헤아리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인지를 자랑처럼 늘어놓을 뿐입니다. 자신이 남들보다 낫다는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자기보다 못한 이들을 심판하고 단죄할 뿐입니다. 이처럼 ‘자기자랑’과 ‘뒷담화’만 하고 있으니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들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는 성전에 올라갔을 때의 상태 그대로,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거짓과 위선이 가득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갑니다.
반면, 이렇게 말씀하시는 신자분들도 있습니다. ‘아이고 신부님, 사는 게 다 죄입니다. 더 죄를 쌓기 전에 하느님께서 빨리 저 좀 데려가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세리의 모습이지요. 이 세리는 자신이 생각과 말과 행위로 하느님 뜻을 거슬러 그분 마음을 아프게 만든 ‘죄인’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죄 많은 자신이 하느님 앞에 서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지만, 부족하고 약한 자신은 하느님의 은총과 보살핌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단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을 지언정 하느님에게서 떨어져나가지는 않았습니다. 부끄러움과 송구함에 하느님 앞에서 고개조차 들 지 못했지만, 통회의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치며 하느님께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청했습니다. 이처럼 진실된 마음으로 하느님께 기도한 결과, 성전에 올라갔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하느님을 닮은 거룩하고 의로운 자녀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집으로 돌아갑니다.
기도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남들을 비난하고 심판하며 단죄하기 위해, 즉 ‘남의 가슴을 치기 위해’ 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오히려 내 안에 죄만 더 쌓게 되지요. 기도는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자기 삶을 돌아보며 자기 죄를 통회하고 다시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되새기기 위해, 즉 ‘내 가슴을 치기 위해’ 하는 겁니다. 그런 진실한 ‘세리의 기도’만이 우리를 참된 회개로 이끌어 줍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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