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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자) 2026년 3월 18일 (수)사순 제4주간 수요일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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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관리의 2% 부족한 믿음

188520 강만연 [fisherpeter] 스크랩 2026-03-16

 

오늘 복음을 묵상해봤을 때 조금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믿음을 이야기하실 때 표징이나 기적을 언급하시면서 그와 관련해 어떤 믿음이라는 것의 성적과 같은 걸 의미하시는 내용을 언급하신 적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보다는 순수한 믿음을 더 좋게 보신다는 의미입니다. 남녀간 사랑에도 그런 게 있습니다. 뭔가 사랑한다는 걸 표현해야 정말 사랑하는 줄 아는 것처럼 말입니다. 굳이 나쁜 것이라고 말하긴 좀 그렇지만 꼭 그렇게 하지 않고서도 정말 자신을 사랑하는지를 알 수 없다고 한다면 그 사람과 자신과의 관계를 사랑하는 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조금은 의문이 듭니다. 

 

진정한 사랑은 그런 것이 없어도 느낄 수 있어야 그게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뭔가 보여지고 또 결과를 확인하고 봐야만 믿을 수 있는 건 제대로 된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제대로 된 믿음은 보고서 믿는 것보다는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확고한 확신을 가지는 게 그게 진정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불확실하다는 의미는 이루어지는 가능성이 불확실하다는 게 아니고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그게 납득이 되지 않는 그런 상황에서도 말입니다. 여기서는 신앙과 믿음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말하는 믿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신앙 안에서 통용되는 의미로서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런 믿음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왜 그럼 그런 믿음을 요구하는지도 사실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차피 어떤 결과를 성취하게 해 주실 것 같으면 말입니다.가령 여기서는 복음의 상황을 가지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 여러 곳에서 행하신 기적을 놓고 봤을 때 말입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으신지 하는 의문이 들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말씀하신 까닭이 무엇일까 그걸 잘 묵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건 얼마나 예수님을 우리가 믿는 데 있어서 절대적인 믿음이 중요한가를 오늘날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당대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와 같은 것이라고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 이유는 남녀간의 사랑에서처럼 어떤 조건을 달면 그 조건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로 조건 때문에 사랑한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조건 없는 사랑이 더 위대한 사랑인 것처럼 믿음도 그런 원리인 것입니다. 기적이나 표징을 통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예수님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왕실 관리의 믿음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그 사람은 기적과 무관한 상태에서 예수님의 말씀 그자체만으로 예수님께 신뢰를 드렸다는 점에서는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있는데 여기서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정말 그 정도로 생각했으면 물론 낫기는 나았습니다. 아들의 병이 말입니다. 

 

왕실 관리가 조금 부족한 게 자기 종에게 아들이 열이 내린 시간을 확인한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 시간과 에수님께서 말씀하신 시간과 일치 여부를 보고서 예수님의 말씀이 치유를 일으키는 기적으로 이해를 했다는 걸 암시하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나오지는 않지만 그럼 역으로 복음의 행간의 의미를 좀 더 살펴보면 이런 의미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만약 시간의 차이가 많은 갭이 있었다면 믿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도 담고 있습니다. 복음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런 뉘앙스도 있습니다. 

 

물론 복음에서는 오늘 이 사건이 아쉽다는 그런 내용은 없지만 우리가 객관적으로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예수님의 가르침에 근거하면 조금은 아쉬운 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어떤 점을 오늘 복음을 통해 알아야 할 게 있느냐 하면 바로 설령 그런 게 있다고 해도 결과가 나온 후에 나중에 "아? 예수님께서 그때 말씀하셨을 때 나았구나" 하고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그때 감격해도 늦지 않다는 것입니다. 결과는 동일하지만 의미는 완전 다릅니다. 왜 그럴까요? 이미 그 결과를 순수하게 믿었느냐 하는 게 관건입니다. 나중에 그렇게 한 것은 어쩌면 그 사실을 통해서 더 믿음이 단단해 질 수 있는 순수한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동기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 결과만을 놓고 보면 절대 오늘 복음을 이해하는 데에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 정도의 의미라면 굳이 성경에 오늘 이 복음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이 사실을 알고 난 후에 사실 오늘 복음이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그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게 말로 전달하면 내용을 쉽게 전달할 수 있는데 글로 표현하다보니 한계가 있긴 합니다. 천천히 잘 고민하며 보시면 조금은 이해가 되실 겁니다. 좀 더 쉽게 전달해드리지 못한 점은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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