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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자) 2026년 3월 17일 (화)사순 제4주간 화요일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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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_송영진 신부님_3월 16일 묵

188531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3-16

김건태 신부님_믿고 떠나갔다.”

요한 복음서를 읽다 보면, 지리 문제에서 마르코 복음서를 중심으로 한 공관 복음서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공관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갈릴래아를 중심으로, 한두 번에 걸쳐 이방인 지역을 방문하기도 하여, 복음 전파 사명을 수행하시다가, 마지막 시간에야 비로소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나, 요한 복음서에서는 최소한 세 차례에 걸쳐, 역시 파스카 축제를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것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복음 저자들의 신학적 저술 차원에서 이와 같은 차이가 빚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인 요한복음에서 그 구체적인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도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님께서 축제 때에 그곳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이다.”

 

 

 

오늘 예수님은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신 카나를 다시 방문하십니다. 거기서 왕실 관리, 곧 (추정컨대 헤로데 대왕의 아들 헤로데 안티파스의) 왕족 가운데 한 사람 또는 왕을 모시는 사람을 만납니다. 예수님께 화급한 볼일이 있던 사람입니다. 카파르나움에 살고 있는 아들이 죽음 직전의 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갈릴래아 지방이라 하더라도, 카나에서 카파르나움까지는 왕복 이틀 간의 거리였으니, 예수님께 그곳을 직접 방문해 달라는 부탁은 다소 결례처럼 보이면서도 그만큼 절박함을 대변하는 요청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하는, 어찌 보면 소극적인 거부의 표현에도 불구하고, 왕실 관리는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 하고 다시 청합니다. 결국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하는 구원의 말씀이 선포되며, 이 말씀을 믿고 바로 떠납니다.

 

 

 

가는 도중에 아이의 치유에 관한 소식을 접하고서, 관리가 보인 첫 반응은 아이 치유가 정확하게 언제 일어났는지 알아보는 일이었습니다. “어제 오후 한 시”라는 대답에, 바로 그 시간, 예수님이 아이의 구원을 선포하신 그 시간임을 확인합니다. 예수님이 선사하신 이 시간은 아이는 물론 왕실 관리와 온 집안을 위한 구원의 시간이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믿고 떠나는 사람들에게 모든 시간은 예수님이 배려하시고 마련하신 시간으로 다가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그 어떠한 시간 속에서도, 중대한 질병, 때로 가정의 평화를 깨뜨리는 고통스러운 문제, 경제적인 어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같은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분이 마련하신 섭리의 길을 걸어갈 줄 아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신앙의 자세를 다시금 점검하고 다짐하고 실천에 옮기는 사순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물론, 하느님께서 늘 우리 편에 서 계신다는 믿음, 우리의 청원을 당신의 뜻대로 꼭 들어주신다는 믿음으로, 오늘 하루 마음 든든하고 활기찬 신앙의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오늘 복음은 갈릴래아의 카나에서 일어난 치유의 사건을 전한다. 카파르나움의 왕실 관리가 예수님께 와서 죽어가는 아들을 살려 달라고 간청한다. 그는 높은 지위를 가졌지만,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목수 출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는 이미 그 마음에 겸손과 믿음의 씨앗이 심겨 있었음을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50절)라고 말씀하신다. 그 순간 관리의 아들은 치유되었고, 그와 온 가족이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 관리의 믿음은 처음부터 완전하지 않았다. 그는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라는 기대 수준에서 예수님을 찾았다. 그러나 말씀의 실현을 경험하면서, 그의 믿음은 표징에 의존하는 믿음에서 예수님 자체를 믿는 믿음으로 성숙하게 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예수님께서는 그 아버지가 표징만을 바라는 믿음에서 말씀을 통한 믿음으로 이끌어 올리신다. 치유는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그에게 참된 믿음을 가르치려는 것이었다.”(In Ioannem Homiliae, Hom. 35,1)

 

 

 

예수님께서는 직접 아이를 찾아가시지 않고, 단지 말씀 한마디로 치유하신다.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이 말씀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창조 때 “빛이 생겨라.”(창세 1,3)라고 하셨던 하느님의 말씀처럼 실제를 일으키는 능력의 말씀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묵상한다. “하느님의 말씀은 보이지 않는 손과 같다. 예수님께서는 거리를 두고 계셨으나, 그분의 말씀은 멀리 떨어진 아이에게 다가가 치유하셨다.”Tractatus in Ioannem, Tract. 16,2) 말씀은 하느님의 생명을 전하는 힘이다. 관리 한 사람의 믿음은 결국 온 가족의 믿음으로 확산하였다. 한 사람의 체험과 고백이 공동체 전체를 변화시킨 것이다. 교리서도 이렇게 가르친다. “믿음은 개인적인 행위이지만, 결코 고립된 행위가 아니다. 아무도 홀로 믿지 않는다. 우리는 교회를 통하여 믿음을 받으며, 교회를 통하여 그 믿음을 살아간다.”(166항) 한 사람의 신앙이 가족, 공동체, 교회 전체를 새롭게 할 수 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나는 예수님을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으로만 믿고 있는가, 아니면 “나의 삶을 이끄시는 주님”으로 믿고 있는가? 믿음은 단순히 기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그분 안에 머무는 것이다. 사순절은 불완전한 믿음에서 성숙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여정이다. 과거에 우리가 받은 은총을 기억하며, 지금 내 삶 속에서 예수님을 어떤 자리에 모시고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 왕실 관리가 겸손히 예수님을 찾았을 때, 그의 아들과 그의 믿음이 함께 살아났다. 이처럼 우리도 사순 시기에 마음을 낮추고,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믿음을 증거해야 할 것이다.

 

 

이병우 신부님_"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요한4,50ㄴ)

 

'말씀을 따라가자!'

 

오늘 복음(요한4,43-54)은 '예수님께서 왕실 관리의 아들을 살리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카나에서 '첫 번째 표징인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표징'에 이어서, '두 번째 표징(기적)인 죽어가는 왕실 관리를 살리시는 표징'을 일으키십니다.

 

병으로 죽어가는 아들을 둔 왕실 관리가 예수님께 다가와 죽어가는 자기 아들을 고쳐 주십사고 청합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십니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요한4,48) 그래도 왕실 관리는 예수님께 청합니다.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요한4,4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요한4,50ㄴ)

 

왕실 관리는 이 말씀을 믿고 떠나갑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바로 그 시간에 왕실 관리의 아들이 다시 살아납니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온 집안이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믿음에서 오는 간절한 청원이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어떤 기적이나 표징을 따라가는 믿음보다, '예수님의 말씀에 무조건적인 신뢰(믿음)'가 병자의 치유를 가져오고, 우리의 영육의 건강을 낫게하는 기적을 만들어 낸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따라가는가?'

'기적을 따라가고 있는지? 아니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가고 있는지?'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 나의 모습을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꾸짖음에도 왕실 관리는 흔들리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랐습니다. 그 믿음이 자기 아들을 살렸고, 또한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는 또 다른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기적의 원천인 말씀을 따라가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주님, 33주기 기일을 맞이한 이종만 마태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송영진 신부님_<예수님을 믿는다면, 당연히 예수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적이 있는

 

갈릴래아 카나로 다시 가셨다. 거기에 왕실 관리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카파르나움에서 앓아누워 있었다.

 

그는 예수님께서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와, 자기 아들이 죽게 되었으니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시어 아들을 고쳐 주십사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 왕실 관리는 예수님께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그가 내려가는 도중에

 

그의 종들이 마주 와서 아이가 살아났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가 종들에게 아이가 나아지기 시작한 시간을 묻자,

 

‘어제 오후 한 시에 열이 떨어졌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 아버지는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로 가시어

 

두 번째 표징을 일으키셨다(요한 4,46-54).”

 

 

 

1)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기적만 바라지 말고,

 

먼저 나를 믿어라.” 라는 뜻입니다.

 

왕실 관리는 아들을 살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아오긴 했는데,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믿음이 없으면서도 왜 예수님을 찾아왔을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잘 고쳐 주신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메시아이신 분’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병을 잘 고치는 의사를 찾아온 것입니다.

 

왕실 관리의 간절함에 초점을 맞추면, 그의 심정은

 

마르코복음 9장에 나오는 어떤 아버지의 심정과 비슷합니다.

 

“‘...이제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고 말씀하시자,

 

아이 아버지가 곧바로,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외쳤다(마르 9,22-24).”

 

왕실 관리의 경우에도 믿겠다는 말을 했을 것입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믿겠습니다.

 

그러니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

 

“혹시 간절함 때문에 믿겠다는 말을 그냥 한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예수님께서 그의 청을 들어 주신

 

것을 보면, 믿음도 없이 믿겠다고 말만 한 것은

 

아닐 것이고, 진심으로 믿으려고 노력하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간절함 때문이든지 다른 무슨 이유 때문이든지 간에

 

진심으로 믿으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면,

 

‘믿음의 단계’에 들어선 것입니다.

 

사실, 믿음이란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2)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씀 자체는 요한복음 2장 23절-25절에 연결됩니다.

 

“파스카 축제 때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는 동안,

 

많은 사람이 그분께서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고 그분의

 

이름을 믿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신뢰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다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분께는 사람에 관하여 누가 증언해 드릴 필요가 없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사람 속에 들어 있는 것까지

 

알고 계셨다(요한 2,23-25).”

 

이 말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들을 보고

 

많은 사람이 열광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믿음으로 인정하지 않으셨다.” 라는 뜻입니다.

 

오늘날에도 기적만 찾아다니면서 예수님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고, 예수님의 가르침은 실천하지 않으면서

 

기적만 바라는 경우도 있습니다.

 

 

 

3)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라는 말은,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말입니다.

 

그 왕실 관리는 아직 아무 일도 안 일어났는데도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언제’가 없다는 점입니다.

 

바로 그 부분이 ‘믿음’과 ‘의심’의 갈림길이 됩니다.

 

안 믿으려고 하는 사람은 너무 막연한 말씀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믿는 사람은 주님께서 ‘가장 좋은 때’에 간청을

 

들어 주실 것이라고 믿고, 기다리면서, 인내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당연히 예수님의 말씀도 믿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청을 언제, 어떻게 들어 주실지 알 수

 

없더라도, 아니 알 수 없으니까, 더욱더 믿으려고

 

노력해야 하고, 기다려야 하고, 인내해야 합니다.>

 

‘카나’와 ‘카파르나움’ 사이의 실제 거리는 26Km 정도인데,

 

일반인의 걸음으로는 여섯 시간 정도 걸릴 것입니다.

 

‘말씀’만 믿고 돌아가는 왕실 관리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걸어가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고,

 

불안감과 의심 등이 그를 계속 유혹했을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모두 극복해야 믿음이 성숙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아무 노력도 없이 저절로

 

성숙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53절의 “믿게 되었다.” 라는 말은, ‘안 믿고 있다가

 

믿게 되었다.’가 아니라, “자신의 믿음이 옳았음을

 

확신하게 되었다.”입니다.

 

<지금 내가 원하는 그것을 당장 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은

 

기도를 하는 것은, 믿음 없는 태도이고, 무례한 태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주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때’에, ‘당신의 방식’으로 주신다고 믿어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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