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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자) 2026년 3월 17일 (화)사순 제4주간 화요일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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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3월 17일 사순 제4주 화요일

188542 박양석 [pys2848] 스크랩 05:57

2026년 3월 17일 사순 제4주간 화요일

 

 

어느 작가가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단어라며, ‘본느’를 말합니다. 무슨 말인가 했습니다. ‘본드’인가? 아니면 예전 영화 007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를 말하는가 했는데, ‘본느’라고 합니다. 그 단어는 줄임말이었습니다.

 

‘본느는 본 대로 느낀 대로의 줄임말’

 

이렇게 풀이를 보니 꽤 멋진 말입니다. 본 대로 느낀 대로 산다는 것은 정말 멋집니다. 그렇게 살고 싶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듭니까? 보고서도 모른척하고, 느낀 것을 감추려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식적인 삶도 많이 보입니다. 솔직하지 못하고, 보이기 위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본 대로 느낀 대로 솔직하게 사는 삶이 필요합니다. 거짓과 위선의 삶이 아닌 진실된 삶이 필요합니다. 남 눈치 보는 삶이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게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쁘게 살 수 없게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 뜻에 늘 집중하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 외의 것은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할 뿐입니다.

 

오늘 복음은 벳자타라고 불리는 못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벳자타는 ‘자비의 집’, ‘은총의 집’을 뜻합니다. 즉, 물이 철렁거릴 때 가장 먼저 못에 들어가는 한 사람이 낫는다는 전설이 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름과 달리 자비가 없는 경쟁의 장소가 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서로를 짓밟고 먼저 못에 들어가려는 심한 경쟁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희망을 잃고 체념하기에 충분한 시간일 것입니다. 이런 그에게 예수님께서 다가오셔서 “건강해지고 싶으냐?”(요한 5,6)라고 물으십니다. 보통 환자가 의사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가십니다. 이렇게 늘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아무튼 예수님의 질문에 병자는 “저를 못 속에 넣어줄 사람이 없습니다.”(요한 5,7)라고 말합니다. 타인과 환경을 원망할 뿐입니다. 생명의 주관자가 앞에 계시는데도, 단순히 물이 출렁이는 그 순간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요한 5,8)라고 하십니다. 어떤 행동도, 심지어 신체적 접촉도 없었습니다. 오직 말씀만으로 치유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난리가 납니다. 안식일 법을 어겼다는 이유입니다. 안식일에는 물건을 다른 장소로 옮기는 것이 불법이었기 때문입니다(들것을 옮김).

 

38년 만에 한 생명이 회복된 엄청난 기적과 기쁨은 보지 못하고, 오직 ‘규정 위반’이라는 종교적 잣대만 들이댑니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중요할까요? 지금도 주님께서 먼저 다가오십니다. 그런데 엉뚱한 것만 바라보고, 또 엉뚱한 것만 청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는 우리가 아니었을까요? 세상의 뜻보다 하느님의 뜻을 먼저 바라봐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이 세상에서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죽음과 세금뿐이다(벤자민 프랭클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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