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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자) 2026년 3월 17일 (화)사순 제4주간 화요일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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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묵상 : 내부의 유혹과 외부에서 오는 유혹

188544 강만연 [fisherpeter] 스크랩 07:08

 

심리학 관련해 공부와 자료를 보면서 묵상한 게 바로 유혹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고만 생각을 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유혹이라는 건 세상에 수많은 게 있습니다. 제가 나중에 한번 기회가 되면 올리겠지만 '은총은 왜 그땐 은총이었는지 왜 몰랐을까?'하는 주제입니다. 바로 제가 목욕탕 청소 잠시 했을 때 그걸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나중에 지나서 그걸 알았습니다. 정말 저한테는 좋은 체험이었던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여자에 대한 환상이 많이 무너졌던 걸 저는 하나의 은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옛날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지만 제가 코로나 이전에 갔던 사우나 같은 목욕탕은 1층을 통과해 나오면 여탕 목욕탕 위 창문으로 여자들 소리가 엄청 크게 나옵니다. 이상한 상상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때 그런 소리를 들으면 여자들은 목욕을 해도 솔직히 물론 상상이지만 영화 같은 곳에서처럼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우아한 백조처럼 그렇게 우아하게 목욕할 것만 같았는데 우와하고는 완전 거리가 멀었습니다. 완전 멍멍이판이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가 여자가 청소를 할 때에는 전혀 하지 않았는데 남자인 저가 할 때는 제가 가기 전에 어느 정도 탕을 기본적으로 정리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너무 충격이 될 것 같아 그렇게 한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 상황이 더 충격이었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그 현장을 보면 정말 이게 지금 21세기 현대인이 사용하는 대한민국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엉망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제가 공개를 차마 할 수 없는 그런 것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 때문에 제가 엄청 많은 것을 묵상한 게 제 신앙에 아주 도움이 될 줄은 전혀 예상을 못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는 하나의 은총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보편적으로 보면 여자가 더 깨끗하다는 편견 아닌 편견을 가지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습니다. 제가 사실 그 사우나만 그럴까 생각했는데 제가 잘 아는 사우나 사장님이 있습니다. 이런 일을 한 경혐을 이야기한 적이 있어서 우연히 연락이 왔습니다. 혹시 하루만 자기 사우나 청소를 해 줄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청소를 하는 분이 집안에 급한 일이 있어서 하루 부득이 부탁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부탁을 수락한 것도 있긴 하지만 제가 아주 궁금했던 게 있어서 수락했습니다. 사실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어떤 게 궁금했냐하면 제가 잠시 한 사우나만 혹시 유별난 사우나여서 그랬는지 그게 궁금했던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사우나 역시도 여탕은 정말 엉망이었습니다. 그때 완전히 알았습니다. 이건 단순히 어떤 한 사우나의 문제가 아니고 원래 여탕은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확실히 알게 된 것이죠. 

 

여탕과 남탕을 청소하다 보면 여탕은 아주 힘든 게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떤 경우는 유혹 아닌 유혹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청소를 한 것과 안 한 것 차이를 못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다 보면 그런 게 있습니다. 그때 그런 유혹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제가 만약 하느님을 믿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아마 저도 그런 유혹에 넘어갔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인이 없기 때문에 잘 모르고 그냥 했는지 안 했는지 잘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해 보면 그런 유혹에 충분히 빠질 수 있는 것입니다. 저도 하느님을 믿는 상태에서도 그런데 믿지 않으면 당연히 그럴 겁니다. 만약에 한두 번은 모르겠습니다. 그게 잘 구분을 못할 수 있는데 아마도 세 번도 그렇게 한다면 그땐 차이가 분명히 날 수 있습니다. 목욕탕을 오래 한 주인은 금방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청소하는 사람들은 주인이 잘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해 그만 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유혹에 넘어갈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런 유혹에 넘어간다면 왜 넘어가는지 그 동기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청소를 해도 안 해도 주인이 모를 수 있을 거란 생각입니다. 이 생각 때문에 넘어갈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모를 수 있다고 하는 그 생각이 중요한 것입니다. 바로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이건 외부에서 오는 유혹이 아닙니다. 바로 자신이 스스로 만든 유혹이라고 보면 됩니다. 왜냐하면 이런 생각을 초래한 것은 본인의 생각이었거든요. 또 더 나아가 하나 생각할 게 그렇게 또 생각을 한 것의 계기기 어디인가 하는 게 중요합니다.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건 자기의 착각일 수 있습니다. 대충 보면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은데 예민한 사람이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결국은 자기가 둔하기 때문에 발생했을 수 있다는 겁니다. 결국 자기가 예민한 사람이라면 그런 판단을 하지 못했을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유혹도 그렇습니다. 죄라는 것과 유혹이라는 것이 얼마나 좋지 않은 것인지 여기에 대해 평소 예민한 감각이 없다면 그런 거에 대한 감각이 둔하기 때문에 그에 대해 죄책감이나 또 유혹에 넘어가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는 것입니다. 죄로 한정해서 이야기한다면 죄에 대한 감각이 없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저번에도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전에 그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죄를 인식할 때 그 죄가 얼마나 더러운지 그걸 아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때는 말씀을 드리지 않았는데 한 번은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죄라는 것에 대해 심도있게 묵상해보려고 테스트를 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청소를 할 때 고무장갑을 끼고 청소를 합니다. 사실 배수구거름망에 쌓여 있는 때 같은 경우 여탕 같은 경우는 어떤 경우는 그게 계속 뜨거운 물이 배수구를 통해 흐르기 때문에 원래는 약간 덩어리처럼 처음엔 쌓였겠지만 흐르는 물 때문에 이게 마치 죽처럼 옆에 진득하게 붙어 있을 때도 있습니다. 보통은 물을 쏘아서 머리카락과 함께 제거를 하는데 원래 이걸 할 때는 사실 눈으로 보는 것도 역겹는데 실제 제가 정말 더럽다는 게 어떤 느낌일지 한번 알고 싶고 또 이것도 이런 기회가 아니면 할 수 없을 것 같아 실제 장갑을 벗고 그걸 세척해봤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직접 손으로 그걸 만지게 된 것이죠. 그때 그걸 만졌을 때 기분이 정말 몸에 소롬이 돋을 정도로 아주 안 좋았습니다. 그때 엄청난 좋은 체험을 한 게 무엇이냐 하면 우리의 죄도 그럴 것 같다는 것입니다. 마치 그럴 것 같다는 것입니다. 

 

때라는 것은 죄로 생긴 결과물처럼 대입해 묵상한 것이죠. 우리 영혼의 때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영혼을 만지거나 촉감을 통해 알 수 없습니다. 만약 이걸 이처럼 이렇게 느낄 수 있다면 정말 끔찍할 것입니다. 

 

이제 결론입니다. 우리는 제가 여기서 유혹과 관련해서는 생략을 했는데 유혹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도 마치 이와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유익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영혼에 때가 있다면 그 때가 얼마나 더러운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걸 자꾸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돼지가 자기 몸에 안 좋은 배설물을 묻히고도 그게 더러운 것인지도 모르고 계속 비비고 하면서 생활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비유가 좀 그렇지만 마치 돼지처럼 그렇게 생활하고 있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정말 끔찍할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유혹이라는 게 얼마나 우리의 영혼을 갉아 먹을 수 있는지 이런 걸 묵상해보면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유익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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