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_송영진 신부님_3월 19일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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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88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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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하느님의 계획에 순종하는 삶
[말씀]
■ 제1독서(2사무 7,4-5ㄴ.12-14ㄱ.16)
힘 있는 임금이 되어 다윗은 새로 정복한 수도 예루살렘에 주님의 성전을 세울 계획을 세우나, 예언자 나탄은 그에게 하느님의 뜻, 곧 하느님은 사람의 손으로 세운 집을 원하지 않으신다는 뜻을 전합니다. 하느님은 다윗의 집안을 견고하게 하실 것이며 자손을 번성케 하여 그의 왕위를 영원히 보장하실 것입니다. 이 약속은 선택된 백성의 메시아적 희망의 출발점이 됩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이 약속은 요셉의 협조로 다윗의 후손이 되신 예수님 안에서 완성됩니다.
■ 제2독서(로마 4,13.16-18.22)
사도 바오로는 율법에 대한 성실성을 통해 하느님께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을 거슬러 저항합니다. 사도는 아직 모세 율법을 알지 못한 상태의 아브라함이 믿음을 통하여 의롭게 되었음을 상기시킵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을 향한 마음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서 성조의 참된 후손들은 육에 따른 후손들이 아니라, 영에 의한 후손들입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계획에 온전히 순종하며, 세속적인 모든 희망을 거슬러 희망하면서 하느님 백성 탄생의 길을 이어갑니다.
■ 복음(마태 1,16.18-21.24ㄱ)
요셉을 통하여 하느님의 약속은 실현됩니다. 예수님은 요셉을 통해 다윗의 혈통 안에 자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제 펼쳐질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온전히 잊히기를 수용합니다. 완성되어 나가는 것은 인간의 사정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입니다. 아버지에게 전적으로 유보되어 있던 아기의 이름 선택 역시 요셉을 벗어나 있습니다. 이처럼 요셉은 오로지 하느님의 계획에 순종하며 그대로 따라 사는 삶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새김]
다소 보수적이며 배타적이었던 유다교 공동체 안에서 ‘의’(義)라는 개념은 우선 율법 준수로 좌우되는 개념이었으며, 따라서 “의인은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이”(루카 1,6)를 가리켰습니다. 바리사이들이 의인으로 자처했던 것은 스스로 율법 준수에 충실하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아마도 이러한 의미의 의인이었다면,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 응당한 대가를 치르도록 했을 것입니다(신명 22,23-24 참조).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요셉에게서 우리는 완전한 의인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율법 준수에 매몰되어 있던 ‘의 개념’, 단죄하고 응징하는 개념을 뛰어넘어, ‘생명을 위한, 구원을 위한 의 개념’을 보여주고 실천에 옮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완전하고 적극적인 의인 요셉에게 임마누엘 하느님,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하달되며, 요셉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마리아의 수용에 이어 요셉이 하느님의 계획을 수용함으로써,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으로 영원히 머무시게 된 것입니다(마태 28,20).
요셉이 마음에 품었던, 그리고 그대로 실천했던 이 의(義) 개념은 바로 우리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의 개념과 일치합니다. 의로우신 하느님이시지만, 자비로움과 너그러움이 늘 함께하는 하느님이시기에, 비로소 우리는 구원에 대해 말할 수 있고 희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율법 준수를 통해 구원을 획득할 수 있다고 믿었던 바리사이들과 달리, 구원은 오로지 하느님 자비의 결과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저자는 “주님, 당신께서 죄악을 살피신다면,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시편 130,3) 하고 읊었던 것입니다.
사순 시기는 우리와 함께하시고자, 정확하게 말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고, 말씀과 행적, 끝내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구원을 완성하신 주님의 파스카 대축제를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면서도, 이웃과의 관계에서 너그러움을 잃지 않는 여유 있는 하루, 하느님의 자비를 본받아 실천에 옮기는 가운데 구원의 세계를 미리 맛보는 은혜로운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 “요셉은 천사가 일러준 대로 하였다.”
1. 요셉의 믿음과 순종
마태오 복음은 요셉을 “의로운 사람”(19절)이라 소개한다. 이는 단순히 율법을 지켰다는 뜻을 넘어,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맡긴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요셉은 자신의 이해를 넘어서는 신비를 받아들여, 마리아를 보호하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협력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요셉의 의로움은 그가 스스로의 판단보다 하느님의 뜻을 우선시한 데 있다. 이는 곧 참된 신앙과 순종의 본보기이다.”(Enarrationes in Psalmos 108,5) 이처럼 요셉의 믿음과 순종은 구원의 신비를 역사 속에 열어 놓은 중요한 협력의 행위였다.
2. 순종과 불순종의 대조: 아담과 요셉
교부들은 종종 아담과 요셉, 하와와 마리아를 비교하였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은 죽음의 문을 열었지만, 마리아와 요셉의 순종은 생명의 문을 열었다. 성 이레네오는 말한다. “아담의 불순종은 죽음을 불러왔지만, 마리아의 순종은 생명을 가져왔다.”(Adversus Haereses III,22,4) 여기에 요셉은 남성의 자리를 채우며, 불순종한 아담과 달리 순종으로 하느님의 계획에 동참한 ‘새로운 의인’의 모습을 보여 준다.
3. 예수님의 이름과 구원 사명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21절) 예수라는 이름은 ‘야훼께서 구원하신다.’는 의미이다. 요셉은 이 이름을 받아들이고, 아버지로서 예수님을 양육함으로써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실제로 봉사한다.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예수님의 아버지인 성 요셉은 예수와 마리아를 보호하였고, 구원 역사에 협력한 의인이다.”(532항) “성 요셉은 교회가 신뢰할 수 있는 보호자로서, 모든 신앙인의 모범이 된다.”(교리서 533항)
4. 요셉의 모범과 오늘 우리의 삶
요셉의 삶은 말보다 행동으로 하느님을 증거하는 신앙의 모범이다. 복음은 단순히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24절)라고 기록한다. 짧지만 그의 순종과 실천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요셉은 하느님의 비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함으로써 구원의 길을 마련했다. 우리도 그 믿음을 본받아야 한다.”(Homilia in Matthaeum 37,3) 우리도 순간순간의 선택과 행동을 통하여 주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고,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작은 협력자가 되어야 한다.
5. 결론
성 요셉 대축일은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요셉의 침묵 속의 순종, 눈에 보이지 않는 충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우선하는 삶을 본받도록 초대하는 날이다. 교황 레오 13세는 회칙 Quamquam Pluries(성 요셉 공경에 관한 회칙)에서 이렇게 말한다. “성 요셉은 그리스도의 집을 맡은 충실한 종이자 교회의 수호자로서, 언제나 신자들에게 보호와 모범을 주는 분이다.” 우리도 요셉 성인의 보호와 전구에 의탁하며, 그의 믿음과 순종을 본받아 하느님의 구원 계획안에서 충실히 살아가도록 기도해야 하겠다.
이병우 신부님_<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3.19)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마태1,24)
'성 요셉의 모습을 닮자!'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며, '성가정의 수호자'이고, '임종하는 이의 수호자'이며, '거룩한 교회의 보호자'인 '성 요셉 대축일'입니다.
먼저 오늘 영명축일을 맞이한 모든 분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복음(마태1,16.18-21.24)은 '마태오 복음 사가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예고'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예고'는 루카 복음(1,26-38)에서도 전해지고 있는데, 루카 복음에서는 '마리아의 순종'이 중심이라면, 마태오가 전하는 예수님의 탄생 예고는 '요셉의 순종'이 중심입니다.
마리아와 약혼한 의로운 요셉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잉태를 하자,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합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잠자고 있는 요셉에게 보내어 이렇게 말하게 하십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마태1,20ㄴ-21)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 이들을 보면, 영적으로 새로이 탄생할 때 받은 이름인 성인 성녀들의 모습을 닮아 있다고 생각되는 이들을 종종 봅니다.
'요셉의 모습'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겸손하고 충실하게 마리아를 보필하는 모습'입니다. 한 가정에서 어머니를 보필하면서 묵묵하게 가정을 이끌어 가는 이들이 성 요셉을 닮은 이들입니다.
이 땅에 요셉을 닮은 이들, 요셉을 닮은 남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약속은 믿음에 따라 이루어지고 은총으로 주어집니다."(로마4,16)
오늘도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의로움의 요셉을 닮도록 합시다!
송영진 신부님_<“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마태 1,16.18-21.24)”
1)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요셉의 이야기들에서 두드러지게
눈에 뜨이는 것은, ‘천사의 나타남’입니다(마태 2,13.19-20).
요셉에게 나타난 천사는 요셉의 수호천사, 또는 성가정의
수호천사였을 텐데, 천사가 나타나서 요셉이 해야 할 일을
미리 알려 준 것은, ‘하느님의 특별한 보호’를 나타냅니다.
하느님께서는 요셉에게 아기 예수님과 마리아를 보호하라는
임무를 맡기고 내버려두신 것이 아니라, 그가 그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직접 도와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천사의 나타남’은 요셉도 마리아처럼 ‘하느님과
함께 사는’ 신앙인이었음을 나타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요셉이 천사를 천사로 바로 알아본 것도, 또 천사의 지시를
믿고 그 지시에 그대로 순종한 것도, 평소에 늘 하느님과
함께 사는 신앙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사는 사람이라면, 천사가 나타나도
천사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천사의 말을 믿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천사가 나타난 일 자체를 부정합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선택하실 때,
그냥 마리아가 아니라,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를 선택하셨습니다(루카 1,27).
이 말은, 하느님께서 ‘마리아만’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요셉도 함께 선택하셨음을 뜻합니다.
하느님께서 요셉을 선택하신 것은
그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요셉의 이야기들은, 요셉 자신만
알고 있는, 그 혼자만의 체험을 기록한 이야기들입니다.
복음서 저자는 그 일들을 어떻게 알고 복음서에 기록했을까?
요셉 자신이 직접 마리아에게 증언했을 것이고,
나중에 마리아가 약간의 보충 설명을 덧붙여서
사도들에게 전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의 이야기들은, 누가 옆에서 보고 객관적으로
기록한 이야기가 아니라, 요셉 자신이 자기가 체험한
일들을 주관적으로 증언한 것을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복음서에는 3인칭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요셉 자신의 말로,
즉 1인칭으로 바꿔서 읽으면, 더욱 생생하게 당시 상황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천사의 나타남’은 기록되어 있는 대로 천사가 나타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요셉이 어떤 환시 체험이나
특별한 계시 체험을 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집트로 피신하는 과정에서의 일은, 마음 착한 누군가가
요셉과 성가정을 도와준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천사가 사람에게 나타날 때에는 대부분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가끔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3) 요셉의 이야기들을 겉으로만 보면, 요셉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천사의 지시를 받은 다음에야 행동한
것으로, 즉 요셉을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으로
생각하기가 쉬운데, 전후 상황을 잘 생각해 보면,
요셉이 먼저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천사가 그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준 것으로 생각됩니다.
원래 수호천사는 인간에게 일을 시키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하는 일을 도와주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아무것도 안 하면 천사의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어떻게든, 무엇이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천사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4) 19절의 ‘의로운 사람’이라는 말은, 여기서는
‘자비로운 사람’으로 해석됩니다.
이 말에서 예수님의 다음 말씀이 연상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마태 12,7).”
‘법’보다 ‘자비’가 위에 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를 믿었고, 마리아의 ‘죄 없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법’이 아니라 ‘자비’를 선택했습니다.
남모르게 파혼하려고 한 것은, 마리아를 버리려고
한 일이 아니라 ‘지키려고’ 한 일입니다.
‘남모르게’ 파혼하면, 파혼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기의 아버지는 요셉’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그러면 마리아와 아기 예수님이 안전해집니다.
왜 굳이 파혼하려고 했을까? ‘성령 잉태’를 믿었기 때문에,
그래서 ‘아기의 아버지는 하느님’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자기는 뒤로 물러나려고 한 것입니다.
그 시점에서 천사가 나타난 것은, 올바른 방향을
알려 주기 위해서이고, 또 하느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을 보증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어렵고 힘든 상황을 만나더라도, 하느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면, 그 믿음을 통해서,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출처] 성 요셉 대축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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