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묵상 : 인품 없는 신앙은 허수아비 신앙과 같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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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12 강만연 [fisherpeter] 스크랩 202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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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최근에 카톡을 통해 예비 수녀님이 되시려는 자매님과 신앙 관련 다양한 영성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성소 식별 과정에 있습니다. 2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상당한 신앙 관련 영성지식이 놀라울 정도로 많이 가지고 계시는 걸 보고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 톡으로 이야기하면서 가진 느낌을 지난 글에서도 언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성미가 뿜어져 나오는 걸 말씀드렸습니다. 첫날 이후에도 간간이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젠 화장장에서 연도를 하고 있는데 톡이 왔습니다. 그땐 복음에 나오는 성경 영어에 관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마태오복음 1장 19절에 나오는 내용을 질문하셔서 중간 중간 설명해드렸습니다. 어제 오전에도 좀 많이 톡을 했습니다. 어젠 제가 자매님께 진심어린 칭찬 정확하게 말하면 격찬과 찬사를 드렸습니다. 오늘 묵상글 제목을 어떻게 정할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원래 생각한 게 있었는데 변경했습니다. 저는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건 자매님과 다양한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걸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저보다 나이 어린 사람을 두고 존경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우린 보통 존경을 표할 때 대부분 원래는 나이와 상관없지만 통상 그래도 나이가 자기보다 좀 더 많은 사람이 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만약 나이가 어리면 이럴 땐 '대단하다'라고 주로 많이 표현합니다. 저 역시도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근데 이번에 이 자매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까지의 제 신념과 신조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것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파격적입니다. 정확한 나이를 언급하시지 않았습니다. 90년 초반이라고만 하셨습니다. 약 세 살이 에누리가 있어서 저랑 정확한 차이를 모릅니다. 아무튼 그렇다고 해도 최소 20년은 어립니다. 이 정도 나이를 가진 자매님께 제가 지금까지 누군가에 대해 찬사를 드렸어도 이렇게 과하게 찬사를 드린 건 처음입니다. 제가 존경스러울 정도로 찬사를 보내드렸습니다. 첫날 이야기했을 땐 지성미에 놀랐지만 그 이후에 이야기했을 땐 인품에 놀라웠습니다. 감히 인품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자매님을 통해 인품을 많이 묵상해봤습니다. 또 하나 놀란 것은 겸손이었습니다. 겸손도 그냥 단순한 겸손이 아닌 그야말로 완전히 몸에 배여 있는 어떻게 생각을 하고 이성적으로 판단을 해서 이럴 땐 이렇게 내가 대처를 해야겠다고 인식해서 행동으로 나오는 그런 겸손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자연반사적으로 당연히 나오는 겸손이었습니다. 그래서 엄청 놀랬던 것입니다. 어제는 더 놀나웠던 게 사실 저는 자매님을 향해 어떤 부분에 대해 대단한 면을 칭찬을 했는데 자매님은 그 칭찬을 대화중에 나온 다른 분이 있었는데 그분을 제가 칭찬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대화를 하는데 좀 어색한 부분이 있어서 가만 보니 자매님이 제가 자기를 향해서 하는 줄 모르셔서 다시 그 질문에 대한 답장을 톡으로 표시해 " 이 대답은 자매님께 대한 답변"이라고 했습니다. 그제서야 놀라워하시면서 "과찬이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정말 자신을 칭찬하는 걸 정말 몰랐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겸손했습니다. 그외에도 겸손이 묻어나는 게 많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 봤을 때 신앙에 입분한 나이와 또 세상 나이를 감안한다면 요즘 현 시대에 정말 보기 드문 신앙인이라고 확신이 들 정도로 감탄을 해 제가 존경을 한다고 표현했었지만 그 상황에서도 정말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묵상한 게 이런 인품은 신앙으로 길러지는 것인가입니다. 이걸 묵상하기 앞서 자매님이 영세를 받으신 시간을 먼저 보면 이제 겨우 2년 반 남짓된 것입니다.
사실 이 정도의 시간이면 운전으로 말하면 초보신앙의 수준에 머물 수 있는데 사실 지식이 신앙을 판별하는 건 아니지만 지식만 본다고 해도 가톨릭에서 평생을 한 보통의 평범한 사람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솔직히 평생을 해도 이 자매님 반의 반도 안 되는 사람 수두룩합니다. 그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그걸 우쭐해하지 않고 담담히 상대로 하여금 위축이 되지 않게끔 배려를 하면서 궁금한 사항을 질문하는 모습에서 다시 한 번 더 감탄했습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에서는 은연중 그런 걸 통해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고 싶은 욕망도 있기 때문입니다. 전혀 그런 게 없었습니다.
이건 인품도 인품이지만 사실은 지혜롭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겸손과 인품을 갖추었다고 그렇게 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겸손은 한데 지혜롭지 못하면 이게 어떤 경우에는 자신도 모르게 교만의 모습으로 비추어질 때도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아무리 겸손 있게 처신을 해도 지혜롭지 못하면 그만 겸손은 어쩌면 위장된 겸손으로 비추어질 때도 있다는 걸 보면 정말 지헤는 단순히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만 필요한 게 아니고 자신의 인격을 대변하는 척도인 겸손과도 관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앙생활을 하면 그냥 할 게 아니라 항상 지혜롭고 슬기롭게 매사 모든 행동에 신중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그 자매님을 통해 새롭게 인식하게 됐습니다.
이 자매님이 신앙생활을 한 기간만 놓고 판단했을 때 인품이라는 건 신앙의 시간으로 신앙이란 걸 통해 길러질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운다면 그 가설은 거짓 가설이 될 것입니다. 이 자매님의 경우를 보면 신앙에 의한 것보다 신앙 이전에 원래 가지고 있는 자신의 삶에 대한 인생관과 또 그동안 세상에 살면서 가진 가치관,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정에서 어릴 때부터 성장하면서 부모님으로부터나 그외 다른 외부적인 환경으로 인해 훈육된 교육, 이런 전반적인 결과물로 이루어진 결정체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생각을 해보면 똑같이 신앙을 시작해도 이런 게 준비가 된 사람과 이런 게 상당히 부족한 사람이 같이 신앙을 시작했다고 하면 시작은 같지만 성장 속도는 완전히 차이가 나게 되는 게 바로 이런 점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인의 인격은 신앙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만 성장하려고 하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이건 바로 신앙 이전에 우리는 신앙과도 별개인 것에서 신앙을 잘 성장시킬 수 있는 인품이 되도록 신경을 써야 그나마 좋은 신앙인으로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보나 세상 사회학에서 보나 인품의 결정은 어떻게 발생되는지에 관한 학문적인 자료는 학자마다 견해가 다 다르지만 바로 방금 언급한 이 사실은 어느 쪽이나 다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결론입니다. 중요한 것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게 우리가 단순히 믿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신자, 그 신자도 다름 아닌 제대로 된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냥 일반적인 신자의 형태인 주일미사 참례, 신심단체활동 그리고 신자로서 지켜야 하는 교회가 권장하는 규범, 그와 같은 것만 해서는 훌륭한 인품을 소유한 신앙인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했다고 해도 자칫 허수아비 신자로 살아가는 신앙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신앙인이라도 단순한 신앙인이 아니고 품격 있는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을 해야 그 사람이야말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뿜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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