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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묵상 : 화려한 부활과 실패한 부활

188694 강만연 [fisherpeter] 스크랩 2026-03-25

 

23년 전에 다녔던 서울 개신교 교회에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산부인과 교수임이시고 은퇴를 앞두고 다시 영국으로 석좌 교수로 임용돼 3년간 계셔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영국에서 의대를 다녔습니다. 미국에서 교수를 하다가 한국에서 후학을 양성했습니다. 영국에 가셔서 강의를 할 자료를 한국에서 제작하는 데 제가 참여했습니다. 특별히 영국 비비씨 방송팀이 촬영을 하고 편집은 한국 방송 제작 프로덕션이 했었죠. 저는 자막 처리와 삼차원 영상 그래픽으로 처리하는 부분과 동시 더빙을 해야 돼서 참여한 것입니다. 생명 탄생의 신비를 6개월간에 걸쳐 촬영을 하고 90분짜리 dvd 30장에 다 담았습니다. 내용이 방대합니다. 무려 약 45시간 정도의 분량입니다. 임신 3주차부터 출생 후 3주까지를 그린 것입니다. 이걸 제작하는 데 참여하면서 처음엔 제작하면서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보통의 출산을 그린 건 그렇게 트라우마가 되지 않았는데 난산일 때는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산모가 내지르는 고통 소리는 한 2년 정도 트라우마로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자막에 그 고통을 표현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엄청 고민했습니다. 장로님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 성경의 관점으로 표현하려고 하셨습니다. 팁을 하나 주셨습니다. 오랜 현장 경험 끝에 산모의 출생을 예수님의 수난에 비유하셨던 것입니다. 그땐 어린 나이라 그게 뭔 내용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설명을 들었습니다. 정말 기가 막힌 내용이 있었던 거죠. 오늘은 그 내용과 함께 제가 묵상한 내용을 가미해서 한번 우리가 지금 보내고 있는 이 사순시기를 좀 더 은혜롭게 보냈으면 합니다. 

 

교수님은 산모의 진통을 예수님께서 골고타를 오르실 때 흘리신 피와 땀에 비유하셨습니다. 산고 끝에 탄생한 태아의 생명을 우리가 성경에서 말하는 부활과 같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산모의 산고와 매치가 되는데 태아의 탄생은 부활과 좀 연결이 잘 안 됐던 거죠. 저는 전문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그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겁니다. 의사의 눈으로 보면 부활과 완전 동일하다고 합니다. 왜 그런지 한번 보시겠습니다. 남자의 몸에 있는 거 다 아시는 거 있죠. 그게 살아 있는 생명이 되는 데에는 결국 한 개체만 생명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여자의 몸에서 말입니다. 그 만남의 과정에서는 치열한 고통이 수반된다고 합니다. 

 

생물학적으로나 의학적으로나 그냥 결과만 보면 별로 신비롭지 못합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서 결국 최종 승자만이 생명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다 온전히 엄마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다 나오는 게 아닙니다. 산도를 잘 타고 나와야 하는데 이게 경우에 따라서는 어려운 길입니다. 쉽게 표현해 산도가 잘 나 있는 산도가 있고 좀 난해한 산도가 있다고 합니다. 장로님은 이걸 비포장도로로 비유했습니다. 잘 나 있는 산도는 부드러운 흙길로 비유하셨습니다. 이건 정말 태아의 운명입니다. 이 길을 잘 걸어야만 세상에 잘 나갈 수 있는 것이죠. 산도가 부드러우면 산모는 순산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나마 이게 정말 난도가 되면 난산이 된다는 것이죠. 요즘은 의학이 발달해서 그렇지만 예전에 원래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는 생명으로 탄생이 되느냐 마느냐는 여기서 결정이 되게 되는 것이죠. 

 

조선시대 같은 자료를 보게 되면 역사적 사료도 이런 부분에 관한 것은 연구를 한다고 합니다. 저는 의사가 아니라 잘 모르는데 여기에 아주 신비한 게 있다고 합니다. 엄마의 산도를 따라 나올 때 그 고통을 잘 이겨낸 놈만이 생명으로 탄생된다는 것입니다.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면 결국은 탄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개념 때문에 출산을 하나의 부활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부활을 묵상하다 보니 그런 묵상을 하는 것입니다. 엄마 씨와 아빠 씨가 만나 생명이 수정되는 그 치열한 과정과 또 산도를 잘 통과해야 하는 그 어려운 산고 끝에 생명이 탄생하는 것인 거죠. 우린 다 이렇게 해서 이 세상에 나온 사람들입니다. 수많은 고난을 뚫고 승리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새로운 생명으로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을까요? 그 해답은 어머니 태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한번 묵상해보겠습니다. 

 

어머니의 태를 따라 나오는 그 산도가 바로 우리가 걸어가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입니다. 바로 이 십자가가 난산이 되느냐 순산이 되느냐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산도의 표면이 흙처럼 부드럽느냐 아니면 비포장이냐인데 말입니다. 재미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이 비포장 같은 산도를 잘 달린 태아는 생명 탄생의 기쁨을 맞이할 확률이 아주 높다고 합니다. 부드러운 흙길 같은 산도를 따라 나온 태아는 어머니는 순산을 하긴 해서 좋지만 그렇게 해서 탄생한 태아는 건강 면에서 보면 유전자로 비유했을 때 좋은 건강한 유전자가 되지 못한다고 합니다. 결국 결론은 이렇게 내릴 수 있습니다. 건강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려면 이미 엄마의 뱃속에서 이 세상에 나올 때 험난한 산도가 있으면 그 산도를 잘 이겨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좁은 산도를 통과하려면 말입니다. 바로 우리의 부활도 이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가는 인생 여정, 신앙의 길은 어머니의 태를 통과하는 산도와 같은 것입니다. 이 산도는 무난한 산도가 아닙니다. 울퉁불퉁 비포장도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찰이 생겨서 아프고 고통이 따르는 것이죠. 이 비포장도로가 우리가 지고 가는 십자가의 인생과 아주 흡사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 길을 잘 통과했을 때 세상에 첫 신고식을 하는 게 바로 태아는 울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게 되는 것이죠. 제대로 부활하기 위해서는 그런 고통을 잘 이겨내야만이 화려한 부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부활을 해도 건강한 부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골골한 몸이 될 것입니다. 아까 표현한 것처럼 건강한 유전자를 가지지 못하면 말입니다. 건강한 유전자는 그런 놈만이 가질 수 있는 거죠. 정말 감동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런 부활을 맞이 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원한 몸을 입을 수 있습니다. 부활을 해도 완전한 부활을 하지 않으면 그건 또 고통이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부활한 몸으로 영원을 산다고 생각하면 그건 얼마나 고통이겠습니까? 그 고통은 영원할 것입니다. 그런 고통을 맛보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이 현세에서 마치 엄마 뱃속에서 험난한 산도를 통과해야 하는 것처럼, 잘 이겨내야 비로소 완전한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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