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양성모성지 이상각 신부님 - 빛을 보고도 불편해지는 마음, 그 이유를 복음이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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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62 이윤경루카 [achim9202] 스크랩 2026-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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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A 앙리 마티스 Dance / 사진 이상각오늘 제 마음에 머문 복음은,
좋은 일을 보고도 온전히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조용히 돌아보게 합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이상한 순간이 있습니다.
분명히 좋은 일인데
마음이 불편해지는 순간입니다.
누군가 잘되는 모습을 보면
함께 기뻐해야 하는데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습니다.
이유를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을 향해
선뜻 따뜻한 마음이 올라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참 좋은 일이네요.” 하고 말하면서도
마음속에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이
바로 그런 사람의 마음을 보여 줍니다.
사람의 마음은 때로
참 무섭습니다.
좋은 일을 보고도
좋다고 말하지 못하고,
빛을 보면서도
그 안에서 어둠을 찾아내기 때문입니다.
라자로가 살아났습니다.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보다 더 분명한
하느님의 표징이 있을까요.
그런데 사람들은
감사하지 않습니다.
찬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
기적 앞에서도
사람은 계산합니다.
은총 앞에서도
자기 자리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결론을 내립니다.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
이 말은
참으로 무섭습니다.
겉으로 보면
공동체를 위한 말 같고,
현실적인 판단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시기와 두려움,
그리고 자기 보존이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더 마음이 아픈 것은
이 말을 한 사람들이
백성의 지도자들이고,
하느님의 일을 맡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느님을 말하던 사람들이
정작 하느님께서 하신 일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왜일까요.
사람은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보다
먼저 자신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나도 저 사람만큼 하는 것 같은데…”
“나도 나름 애쓰고 있는데…”
“나도 말 잘 못하는 사람은 아닌데…”
“왜 사람들은 다 저 사람 이야기만 하지…”
이런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그저
조금 서운한 정도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그대로 오래 두면
점점 시기와 질투가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좋은 점보다
못마땅한 점이 먼저 보이기 시작합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보다
어딘가 흠을 찾고 싶어집니다.
조금이라도 깎아내리면
내 마음이 덜 불편할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좋은 일도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괜히 비판하고 싶고,
괜히 문제를 찾고 싶고,
괜히 한마디 덧붙이고 싶어집니다.
빛을 보고도
기뻐하지 못하고
어둠의 말로 반응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의 사람들도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도
그 기적 자체를 보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 하신 일을 보기보다
그 일로 인해
자기들이 무엇을 잃게 될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가는 것이
불편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더 주목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입니다.
자기들이 누리던 자리,
자기들이 붙잡고 있던 권위,
자기들이 익숙하게 지켜 오던 것이
흔들릴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표징을 보고도
기뻐하지 못합니다.
은총 앞에서도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
하는 자리까지 나아갑니다.
이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내 안에도
이 마음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보다 더 빛날 때
누군가가 더 사랑받는 것처럼 보일 때,
누군가가 더 인정받는 것 같을 때,
함께 기뻐하기보다
마음이 불편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 사람을 축복하기보다
조용히 밀어냅니다.
작게는 외면하고,
조금 더 나아가면 판단하고,
더 깊어지면 미워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나는 왜 불편한가.
나는 왜 저 사람을 인정하지 못하는가.
나는 왜 좋은 일을 좋게 보지 못하는가.
그것을 조용히 바라보아야
어둠이 더 깊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너는
좋은 일을 보고 기뻐할 수 있느냐.
너는
다른 사람에게 내린 은총을
함께 기뻐할 수 있느냐.
너는
빛을 보고도
어둠의 말로 반응하고 있지 않느냐.
오늘
혹시 내 마음 안에
누군가를 향한 불편함이 있다면,
누군가를 향한 시기와 질투가 있다면,
그 사람을 깎아내리는 말 대신
짧게라도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주님,
저 사람을 축복해 주십시오.
그리고 제 마음도 깨끗하게 해 주십시오.”
그 기도가
내 안의 어둠을 몰아내기 시작할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때로 참 무섭습니다.
좋은 일을 보고도
나쁘게 말할 수 있고,
빛을 보고도
어둠으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은총은
그보다 더 큽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다시
깨끗한 마음을 청할 수 있습니다.
좋은 것을 보고
좋다고 말할 수 있는 마음,
다른 사람의 은총을 보고
함께 기뻐할 수 있는 마음,
빛을 보고
빛이라고 말할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을
주님께서 다시 우리 안에 살려 주시기를 청합니다.
위의 글은 이상각 신부님의 블로그 글입니다.
[출처] 빛을 보고도 불편해지는 마음, 그 이유를 복음이 묻습니다 /요한 11,45-56|남양성모성지 이상각 신부 블로그https://blog.naver.com/rsony4u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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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성모성지,이상각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