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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6년 4월 2일 (목)성주간 목요일 - 성유 축성 미사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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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간 월요일

188767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26-03-29

변진섭공연을 보고 왔습니다. 저는 변진섭의 노래를 좋아했습니다. ‘희망 사항, 새들처럼은 밝고 신나는 노래입니다. 홀로 된다는 것은. 너에게로 또다시는 감미롭고 서정적인 노래입니다. 관객들도 좋아했고, 가수도 2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무대를 이끌었습니다. 가수 변진섭은 본당 교우분의 동생이기도 합니다. 공연은 달라스를 시작으로, 뉴욕, 애틀랜타, LA에서 있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니 저도 매주 공연하는 사제입니다. 주일이면 어김없이 교우분이 성당으로 오십니다. 가수는 노래로 공연하지만, 저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공연합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가수는 같은 노래를 몇십 년 공연할 수 있지만, 저는 매주 다른 말씀으로 공연합니다. 제 공연의 주인공은 제가 아니고,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000년 동안 같은 이름으로 이렇게 매 주일 공연이 이루어지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하십니다. 예수님의 공연은 4막으로 되어있습니다. 대림 시기로 시작되는 예수님의 탄생, 연중 시기로 시작되는 예수님의 공생활, 사순 시기로 시작되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 시기로 이루어지는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 강림입니다. 세상의 어떤 공연보다 멋지고, 장엄하고, 아름다운 공연입니다.

 

지난 사순 특강을 해 주었던 신부님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신부님의 이야기도 한편의 멋진 공연 같습니다. 교구 사제로 있다가, 지금은 수도회 사제가 되었습니다. 교구 사제로 열심히 살았다고 합니다. 주어진 직책에 성실했고,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었고, 늘 바쁘게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이 있었다고 합니다. 연극이 끝나고 텅 빈 객석에 앉아 있는 배우처럼 허전함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어느 날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절벽 위에 있었고, 뒤로는 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차가 날아와서 태우고 갔습니다. 내려 보니 넓은 잔디가 있었고, 집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모두 같은 곳을 보고 있었습니다. 바라보니 성모님이 계셨습니다.” 그 뒤로 성지순례를 갔고, 그곳에서 성모님을 보았는데 꿈에서 본 그 모습이었습니다. 후원자들도 있었고, 꿈에서 본 것처럼 집을 지어서 어머니의 마을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제법 큰 땅도 마련되었습니다. 성지순례를 다녀온 분들이 계속 기도할 수 있도록, 성지순례를 가지 못한 사람들은 성모님을 느낄 수 있도록 마을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열심히 홍보하였고, 많은 독지가의 도움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하듯이 어머니 마을의 꿈은 욕심에 물든 사람들에 의해서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원망도 있었고, 꿈이 틀린 것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기도 중에 성모님이 원한 집은 세상에 마련되는 집이 아님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성모님의 원하는 집은 기도의 집이었다. 예수님께서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무너져가는 내 집을 세워다오.’라고 하셨던 것도 눈에 보이는 집이 아니었습니다. 영성과 기도의 집을 세우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교황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수도회의 인준을 받았습니다. 가난과 나눔의 영성으로 프란치스코 성인은 무너져가는 하느님의 집을 다시 세울 수 있었습니다.

 

연이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은 연을 움직이게 하는 줄이 있기 때문입니다. 줄이 끊어진 연은 곧 땅으로 추락하게 됩니다. 우리를 절망에서 희망으로 이끌어 주시는 분, 슬픔에서 기쁨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분, 어둠에서 빛으로 향하게 하시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신앙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맺어주는 줄입니다. 그 줄을 놓지 않는다면 우리는 구원을 향해서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습니다. 마음이 순수한 사람은 자신을 돌아볼 때, 하느님이 보입니다. 하느님께서 삶의 중심이 되는 사람은 지금 여기에서 부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삶의 중심에 자신의 욕심과 야망이 보이면 그는 지금 살아있지만 죽음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온 마리아는 순수해져서 자신을 돌아볼 때 예수님이 보였습니다. 이제 그녀는 모든 것이 우선순위가 예수님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수난을 기억하는 성주간 월요일입니다. 예수님 십자가를 지고 갔던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예수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드렸던 베로니카 성녀처럼 그렇게 주님과 함께 아름다운 공연을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잊지 않고 초대했던 라자로처럼,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발라 드린 마리아처럼 주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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