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양성모성지 이상각 신부님 - 성지주일, 우리는 그날의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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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82 이윤경루카 [achim9202] 스크랩 202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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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을 지나면, 우리는 그날 안으로 들어갑니다.”
사진 이상각
우리는 재의 수요일에 이마에 재를 얹고 사순절을 시작했습니다.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여라.”
그리고 또 이런 초대를 받았습니다.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그렇게 조금 더 조용히 살고,
조금 더 기도하고,
조금은 달라지기를 바라며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사순절의 절정,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성주간 안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환호 뒤에 올 배신을 아시고,
사랑 뒤에 올 외면을 아시고,
생명이 아니라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그 길을 피하지 않으십니다.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걸어가십니다.
사람들은 옷을 길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외칩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
모두가 기뻐하고 모두가 환호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환호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며칠 뒤 사람들의 입에서는 전혀 다른 외침이 터져 나옵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같은 사람들입니다.
같은 입입니다.
같은 도시입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이렇게 바뀌는 것일까요.
유다인들은 강력한 메시아를 기대했습니다.
칼로 싸워 로마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켜 줄 해방자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희생하심으로써 파스카를 완성하십니다.
힘으로가 아니라 사랑으로,
폭력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고통과 죽음 속에 버려두지 않으시기 위해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 위에 매달리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그런데 이 기억은 단순한 과거의 회상이 아닙니다.
전례 안에서의 기억은
그 사건을 지금 여기에서 다시 살아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날의 사람들 가운데, 나는 누구입니까.”
사진 이상각
예루살렘 거리 한쪽에 서서 종려 가지를 흔들고 있는 사람,
혹은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사람,
혹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나는 사람.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어쩌면 십자가를 외치는 그 무리 안에 서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한 주간은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성주간의 복음은
그저 그때 사람들의 변덕을 보여 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 마음을 비추는 거울에 가깝습니다.
내가 기대한 방식의 메시아가 아니면 돌아서고,
내 뜻과 다르면 실망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어느 순간 외면해 버리는 마음,
그 마음이 우리 안에도 있기 때문입니다.
수난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유다를 만납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끝내 그분을 온전히 깨닫지 못한 사람입니다.
메시아에 대한 자기 기대와 선입관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스승을 넘겨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을 배반하는 유다를 향해
“벗이여” 하고 부르십니다.
배반하는 그 순간에도 그를 친구라고 부르십니다.
이 한마디가 참 마음을 멈추게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배반하는 순간에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벗이라고 부르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빌라도도 만납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을 구해 보려 하지만
끝내 자신의 지위와 평판 때문에
주님을 희생시키는 사람입니다.
옳은 것을 알면서도
위험을 감수하지 못하고
손을 씻고 돌아서는 사람입니다.
그 모습도 우리 안에 있습니다.
병사들도 만납니다.
아무런 저항 없이 잡혀온 예수님을
모욕하고,
침 뱉고,
매질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입니다.
조금의 자비도 없이 마구 다루는 사람들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
사랑이 없는 인간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먼 옛날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또 시기심과 증오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하는 사람들도 나옵니다.
우리 역시 시기심에 사로잡혀
나쁘게 말하고,
헐뜯고,
어떻게든 남을 곤경에 빠뜨리고 싶어 한 적이 없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군중도 만납니다.
“바라빠를 놓아 주시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군중심리에 휩쓸려 외치는 사람들입니다.
그 모습 또한 우리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주님, 제 마음이 움직이게 하소서.”
사진 이상각
그런데
그 길 위에는
다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키레네 사람 시몬,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린 베로니카,
십자가 밑에 서 있던 어머니 마리아와 여인들,
그리고
“이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
하고 놀라며 고백한 백인대장.
그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수난의 이야기는
그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곧 나의 이야기라는 것을.
내 마음 안에는
때로 유다도 있고,
베드로도 있고,
빌라도도 있고,
군중도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시몬도,
베로니카도,
마리아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주간은
하나의 질문을 우리 마음 안에 남깁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내 마음은 이 사람들 가운데 누구와 닮아 있는가.
이 성주간 내내
이 질문이 우리와 함께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제 마음이 움직이게 하소서.”
사진 이상각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묵상할 때
수사들이 울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올해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선종 800주년이어서
이 이야기가 더 마음에 머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 앞에
감격하는 마음이 있는지요.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믿음은
더 이상
십자가를 통해 나타나는 하느님의 사랑에 놀라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이란
하느님의 사랑에 감동되고,
놀라워하고,
감격하는 것입니다.
성주간 동안 우리의 눈을 들어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수난의 길을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성주간 한 주간 동안 나의 모습을 들여다봅시다.
그리고
십자가에 매달리시는 주님의 사랑에
감동하며 감격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
주님의 십자가에 우리의 눈길을 두는 성주간이 되도록 합시다.
"그날은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진 이상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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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성모성지,이상각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