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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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98 박영희 [corenelia] 스크랩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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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간 월요일] 요한 12,1-11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어제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미사를 기점으로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성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본격적으로 수난의 길을 걸으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평소 아끼며 가깝게 지내던 지인들을 찾아가 함께 시간을 보내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힘들고 괴로운, 그래서 감당하기 버거운 십자가를 눈앞에 두고, 그것을 지고 갈 힘을 얻으시기 위함이었겠지요. 그런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라자로와 마르타, 마리아 남매는 예수님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한 잔치를 베풉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마리아는 평소 예수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기만 하던 소극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그분을 향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합니다.
마리아는 힘들고 괴로운 십자가의 길을 걸으셔야 할 예수님께 힘과 용기를 드리기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드릴 수 있을지를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그분께 내어드리기로 결심하지요. 그것은 바로 ‘순나르드’ 향유였습니다. 삼백 데나리온, 오늘날 우리 화폐가치로 약 삼천만원정도 하는, 그녀가 가진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것을 예수님의 발에 아낌없이 쏟아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립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치유하며 마귀를 쫓아내기 위해 여러 고을을 쉴 새 없이 돌아다니시느라, 더러워지고 상처나며 지친 예수님의 발을 정성스럽게 어루만져 드린 겁니다. 예수님을 존경하며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박해의 위험을 무릅쓰고 죽은지 나흘이나 지난 오빠를 살려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라도 기꺼이 내어드릴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군중들은 물론이고, 그분과 동고동락하는 제자들마저 자기가 그분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만 생각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해드릴 수 있을지를 고민하여 최선을 다한 그녀의 정성은 지친 예수님의 마음에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두렵고 산란해진 예수님의 마음에 큰 용기를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는 마리아가 비싼 향유를 ‘낭비’했다며 아까워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원하는 걸 얻어낼 생각만 하면서, 그분을 위해 나의 것을, 나의 시간과 노력과 정성을 내어드리는 걸 너무나 아까워하며 인색해지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면서 그런 자기 모습을 ‘합리’와 ‘효율성’이라는 그럴듯한 핑계로 합리화하려고 들지요.
하지만 사랑은 원래 비합리적입니다. 참된 사랑은 ‘효율’을 따지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에게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주어도 하나도 아깝지 않지요. 사랑하는 이에게 나를 내어주는 그 행동을 통해 나 자신이 큰 기쁨과 행복을 얻기 때문입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보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나는 아직 참된 사랑을 하고 있지 못한 겁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것도 그분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겠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원하는 걸 얻어낼 생각만 하지 말고, 그분을 이용하려고만 들지 말고, 내가 그분을 위해 무엇을 해드릴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해드려야겠습니다. 사랑에서 우러난 그 정성을 통해 주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어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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