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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우상숭배는 ... 송봉모 신부님

189069 이정임 [rmskfk] 스크랩 2026-04-14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우상숭배는 ...


송봉모 토마스모어 신부 ㅣ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바오로는 베로이아에서 아테네로 이동하면서, 고대 세계의 사상과 학문의 중심지, 문화와 예술의 도시를 직접 보게 된다는 기대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여행객이 아니었다.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였고, 유일신 신앙에 투철한 유다인이었다. 그렇기에 아테네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충격 그 자체였다.

 

"도시가 우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사도 17,16)

 

   바오로 시대에서 약 50년 후, 그리스 지리학자 파우사니아스는 아테네를 방문하고 이런 말을 남겼다. "아테네에서는 사람을 만나기보다 신들을 만나기가 더 쉬울 것이다." 과장이 아니었다. 당시 아테네 인구는 대략 만 명 정도였는데, 신상만 삼만 개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오로는 거리마다 늘어선 신전과 제단, 수없이 세워진 신상들, 상점 선반에 모셔진 수호신들을 바라보며 깊은 격분을 느꼈다. 그의 내면에서 일어난 감정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파록쉬노'는 내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강렬한 분노를 뜻한다. 영어 'paroxysm(돌발적인 격렬함. 급작스러운 감정의 폭발)'이 여기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칠십인 역 성경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에 빠졌을 때 하느님께서 느끼신 진노를 표현할 때 쓰였다. (신명 9,18; 32,16-19; 시편 106,29; 이사 65,3; 호세 8,5) 따라서 바오로의 분노는 단순한 인간적인 분노가 아니었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의로운 격분이었다.

 

   그가 격분한 이유는 하느님만이 찬미와 경배를 받으실 분인데, 사람들이 손으로 만든 우상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참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헛된 우상에 매여 참된 생명과 구원을 누리지 못하는 아테네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바오로의 분노는 단죄가 아니라 연민 때문에 비롯된 거룩한 분노였다.

 

   이 격분은 바오로를 행동하게 만든 원동력이 된다. 그는 아테네 회당에서 유다인들과 하느님 경외자들과 토론하고, 날마다 광장(아고라)에 나가 만나는 사람들과 토론을 이어갔다.

 

   2천 년 전, 우상숭배의 온상이던 아테네 거리를 거릴며 격분했던 바오로가 오늘의 한국을 걸었다면, 그의 가슴은 얼마나 더 타올랐을까? 아테네 사람들은 돌로 깎은 신상 앞에 무릎을 꿇었지만, 우리는 형태만 바뀐 다른 우상들 앞에 고개를 숙인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주저함 없이 젊은 연예인들을 '아이돌.idol' 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단어는 본래 '우상'을 뜻한다. 십계명에서 하느님께서는 우상숭배를 단호히 금지하셨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용어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면서, 실제로 연예인들을 열렬히 추종하고 때로는 맹목적으로 숭배하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미모의 여성 연예인을 '여신goddess' 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대학교 여신, 야구 여신, 아나운서 여신' 등 각 분야에서 남발되고 있다. 예전 같으면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감히 입에 담지도 않았을 표현들을 이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심지어 유명인을 하느님에 빗대어 '유느님' , '연느님' 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는 단순한 유행어를 넘어, 외모와 인기, 성공을 신격화하는 우리 사회의 병리 현산을 드러낸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우상숭배는 외모 지상주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현대의 우상은 물질적, 정신적, 사회적 영역 전반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우리 삶을 점령하고 있다. 재물, 권력, 성공, 건강, 쾌락, 알코올, 마약, 게임, 도박 등 수많은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이들이 주는 만족과 안락함에 의존하며 살아간다. 겉으로는 '하느님'이라 부르지 않지만, 실제로는 이 모든 것을 하느님처럼 여기며 섬기고 있다.

 

   이처럼 온갖 우상숭배로 가득 찬 사회에서, 우리는 중심을 잃고 혼란과 불안 속에 살아간다. 예이츠W. B. Yeats의 시처럼.

 

만물이 허물어져 간다.

중심을 잡을 수가 없다.

온 천지에 종잡을 수 없는

난장판이 펼쳐질 따름이다. ●

 

* 출처 : 예수회 후원회 이냐시오의 벗들 2026.3  (☎ 02- 3276-7777)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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